자기만의 첫 번째 극장,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누구나 자기만의 첫 번째 극장이 있다. 내게 첫 극장은 2004년 3월의 소격동 아트 선재센터다.
고백하자면 영화학과에 들어오기 전까지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난 애니 덕후였지 시네필은 아니었다. 시네필이란 단어도 스무 살 상경 전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2004년 3월 아트선재센터에서 구로사와 기요시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맨날 침 튀기며 ‘빨아재끼는’ <큐어 CURE>(1997)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영화인지 궁금했다. 그냥 그 영화만 보고 집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큐어>를 끊고 간 김에 하나 더 봐야지 하는 생각에 <뱀의 길 蛇の道, Serpent’s Path>(1998) 표도 끊었다. <뱀의 길> 오프닝 시퀀스는 좁고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진 주택가 도로를 자동차 시점 숏으로 따라간다. 어디로 나를 데려가는지 알 수 없는 그 오프닝 시퀀스처럼 나는 그날 이후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트선재센터로 출근했다. 한 감독의 작품만을 틀어주는 극장이 있다는 건 멀티플렉스에 영화를 보러 갈 때와 기분이 달랐다. 이 영화를 보러, 이 감독을 더 알고 싶어서 어디선가 몰려든 이름 모를 사람들과 함께 두 시간 동안 컴컴한 동굴 속에 들어가는 건 어딘가 마약과 비슷한 중독성이 있었다. 설혹 영화가 조금 별로였더라도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이름은 모르지만 매일 출근한 덕에 낯익은 동지들을 보면 왠지 위안이 되었다. ‘우리가 같은 것을 봤다’라는 기분이 거기에 분명히 있었다.
극장이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있었기에 영화가 끝나고 지상으로 올라올 때의 맛은 각별했다. 대낮에 들어가서 밤이 되어 나올 때의 생경하고 아직 차가운 봄 공기가 코끝을 시리게 만들었다.
학교에선 쉬이 말을 붙이지 못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와 마주친 선배들 얼굴을 보면 괜히 용기가 나서 커피 한잔 사달라고 엉겨 붙었다. 술자리에서 만난 호탕한 선배들보다 그렇게 자판기 앞에서 커피 컵 을 들고 궁색하게 방금 본 영화를 놓고 떠듬떠듬 의견을 말하는 선배들이 나는 좋았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면 그 장소는 아트선재센터 커피 자판기 앞일 것이다.
2004년 여름,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 다녀와보니 아트선재센터 서울아트시네마는 낙원상가 건물로 이전해버렸다. 그때의 황망함이란. 첫사랑이란 원래 그런 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는 다시 낙원상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낙원상가는 내 두 번째 극장이 되기에 손색없었다. 은밀하고 사색적인 분위기의 아트선재센터와 달리 낙원상가는 떠들썩하고 오래되고 냄새나는 세상과 어울려 있었다. 어찌 보면 영화를 대하는 내 태도나 관념은 서울아트시네마의 변천사에 큰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군대를 다녀와서 졸업하고 영화를 업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을까 불안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그럴 때 낙원상가 인근에서 저렴한 선지해장국을 먹고 고대하던 프로그램 한 편 때리고 극장 앞마당에 나와 나른해진 채로 하늘을 보고 있으면 ‘아무렴 어때 영화는 좋아’라는 생각에 취해서 하루를 넘겼다. 시간이 흘러 이제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극장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나에겐 세 번째 극장, 그러나 지금 열병에 들뜬 어느 누군가에겐 첫 번째 극장이 되리라 상상해본다.
by.홍석재(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