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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다큐]새로운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와 아트 다큐멘터리의 시대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양적 질적으로 폭이 넓고 다양해졌다. 매해 30~40편 이상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 개봉과 다양한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그외 다양한 공간에서 꾸준히 소개된다. 이들 영화는 다채로운 소재와 주제만큼이나 폭넓은 표현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전통의 현실 기록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에서부터 극영화적 관습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미디어아트 등 타 장르의 수사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활용, 재언어화한다. 작품을 만드는 감독 기반으로 살펴보면,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전통을 이어받은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부터, 미술의 미디어아트 기반의 작가가 만든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 방송의 관습을 차용한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 저널리즘의 화법을 빌린 영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이 글은 동시대 다큐멘터리 영화를 네 영역으로 분류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감독과 매체를 고려한 분류다. 1부는 현장 기록에 기반을 둔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와 미술의 미디어아트 기반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2부는 방송에 기반을 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다.
윤리와 미학을 동시에 지고 가는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액티비즘에서 출발했다. 국가 공권력과 사회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는 태생부터 지금까지 ‘기록투쟁’이 주요한 임무이자 특성이다.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영상을 매개로 한 사회운동으로 공권력의 방어막이며 연대의 매개자이고, 주류 미디어가 외면하는 현장을 기록하고 알리는 대안 미디어다. 대안 미디어로서 액티비즘은 나아가 제작뿐 아니라 미디어 교육과 상영 활동까지 겸하고 있다. 사회 활동이자 대안 미디어, 영화작품으로 일인 다역을 수행하는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들 사이의 긴장감과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사회운동의 산물로 현장성을 담보하고, 공동체와 관계망을 형성하고 연대하며, 공동체 안과 밖에서 동시에 소통해야 한다. 대안 미디어로서 주류 미디어와 다른, 그러나 더욱 대중적으로 소통할 영상 언어를 지속적으로 실험해야 한다. 또 동시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다층적 속성 또한 함께한다. 상업적인 소비재로서의 역할과 대중매체로서의 역할에 더해 시장의 논리를 초월한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동시대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의 현주소이며 당면한 과제다.
동시대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들 미션을 크게 두 축으로 풀어가고 있다. 한 축은 사회 이슈에 개별적으로 동참하고 연대해 만든 개인 작품이고, 다른 한 축은 미디어 활동가들 간의 일시적 연대로 제작한 프로젝트 작품이다. 먼저 개인 작품으로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장에서 대상(들)과 장기간의 관계 맺음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철거민들과 3년 동안 생활하며 제작한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1988)에서 출발해 2년 동안 시골 초등학교 통폐합 반대투쟁을 기록한 <두밀리-새로운 학교를 열다>(홍형숙, 1995), 12년간 장기수와 맺은 관계를 담아낸 <송환>(김동원, 2004) 등 이미 다수의 작품이 선행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개인 작업을 하되 서로를 지원하는 1인 제작 시스템의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집단이 다수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푸른영상, 연분홍치마, 오지필름을 들 수 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푸른영상은 평택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담은 <대추리 전쟁>(정일권, 2006)과 <길>(김준호, 2008), 4대강 반대투쟁을 담은 <촌, 금가이>(강세진, 2012) 등 각 사회 현안을 주제로 현장과 연대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연분홍치마는 성소수자 인권을 다룬 <3xFTM>(김일란, 2008), <레즈비언 정치도전기>(홍지유•한영희, 2009), <종로의 기적>(이혁상, 2010)을 비롯해, 용산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두 개의 문>(김일란•홍지유, 2011)과 <공동정범>(김일란?이혁상, 2016), 해직 노동자 투쟁을 다룬 <안녕, 히어로>(한영희, 2016)와 <플레이온>(변규리, 2017)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오지필름은 핵발전소 반대에 연대해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투쟁을 다룬 <밀양전>(박배일, 2013)과 <밀양 아리랑>(박배일, 2014), 생탁 노동자들의 2년간 투쟁을 다룬 <깨어난 침묵>(박배일, 2016), 4대강 문제를 집요하게 담아낸 <기프실>(문창현, 2017), 사드 배치 반대투쟁을 담은 <소성리>(박배일, 2017) 등 현장과 연대해 작품을 꾸준히 만들고 있다.
또 다른 방식은 프로젝트성 작업이다. 현안에 대해 미디어 활동가들이 일시적으로 연대해 기록 투쟁이자 작품 활동을 함께 하는 ‘공동제작?배급 방식의 프로젝트’ 작업이다. 사건 현장에 결합한 감독들의 다양한 시각을 모아내는 프로젝트 작업은 2004년 이후 본격화된다. 발전소 해외 매각 저지 투쟁을 위해 민영화 저지 미디어 활동단이 만든 <2002 발전노조 싸움을 다시 보다>(2004), 같은 해 제작된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에 참여한 주민들과 전북인터넷 신문 참소리와 개인 영상활동가들이 연대한 <부안 주민들, 카메라를 들다>, 2003년 378일 동안 진행된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천막 농성을 11명의 감독이 다룬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2004) 등이 시발점이다.
이 시기 프로젝트 작업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다. 2005년 16명의 다큐멘터리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가 공동 참여한 이 작품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 한미 FTA 체결, 새만금사업, 줄기세포 논란, 비정규직 증가, 양심적 병역거부 등 당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들을 각각 10분 이내 길이의 영상으로 제작해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옴니버스 형태의 다양한 프로젝트 작품이 제작된다. <독립영화인 국가보안법 철폐 프로젝트>(2004), <비정규직 완전 철폐를 위한 영상 프로젝트>(2005)를 시발로, 2010년대 들어서 옴니버스식 프로젝트 작업은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4대강 살리기 <강(江), 원래>(2011),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다룬
(2011), 세월호를 둘러싼 쟁점을 7편의 영상에 담은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2017) 등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미디어로 행동하라> 프로젝트는 다양한 미디어 영역의 활동가들이 일정 기간 삼척, 밀양, 충북 지역에 머물며 사회 이슈를 기록하고 풀어낸다.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삼척>은 원전에 반대하는 주민투표 결과를 기록하고,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밀양>은 ‘밀양에 미디어로 농활 가자’는 콘셉트로 4박5일 동안 총 45명의 활동가가 결합한 프로젝트다.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충북>은 ‘미디어로 노동하자’는 콘셉트로 역시 4박5일 동안 유성기업, 청주노인병원, 피엘레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프로젝트는 짧은 기간에 기획부터 제작 및 상영까지 마무리하는 일종의 제작 워크숍 개념이기도 하고, 단기간이라도 현장에 결합하고 연대하기를 유도하는 사회 활동이기도 하다. 물론 프로젝트 작업 속에서 개별 작품이 함께 진행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오지필름의 <밀양이야기>와 <밀양아리랑> <소성리>는 <미디어로 행동하라>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진행한 개인 작품이다. 이처럼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장과의 연대만큼이나 영상 활동가들의 연대를 통해 개별적으로, 단체로, 프로젝트 기반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 여건을 만들어간다. 이들은 여전히 사회 부조리에 맞서는 투쟁 현장의 기록, 미디어의 수평적 권력,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하면서 제작에서부터 배급, 나아가 교육까지 펼쳐나가고 있다.
미술과 영화를 넘나드는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
2000년대 후반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를 ‘미학적 시기’로 명명한다. 이 시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만큼이나 말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시기다. 이 시기 새로운 경향으로 등장한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는 미술과 영화를 넘나들면서 상영과 전시를 아우른다.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1인 제작 방식이 현장성이나 기록성보다 자기표현성으로 발현되면서 미술 영역과 접속한 경우다. 이로 인해 미디어아트와 다큐멘터리 영화가 교차하고 겹치고 심지어 겸업하는 현상이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로 구현된다. 장편 작품으로 <비념>(임흥순, 2013)과 <만신>(박찬경, 2013), <논픽션 다이어리>(정윤석, 2013), <철의 꿈>(박경근, 2014), <위로공단>(임흥순, 2014),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정윤석, 2017) 등이 있고, 이 작품들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고, 극장 개봉을 진행하는 동시에 미술관 전시를 함께 한다.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는 상영 공간 혹은 전시 공간에 따라 다양한 형식적 실험이 시도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면, <철의 꿈> 경우는 미술관 버전과 극장 버전이 각기 다르다. 일명 ‘철의 꿈 프로젝트’로 명하는 일련의 전시 버전은 각각의 전시 공간에 맞게 다채널 영상에서 싱글 채널 설치까지 다양하게 연출하고, 영화 버전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기입해 내러티브를 구축해낸다. 반면 <위로공단>은 미술관 전시용 버전과 장편영화 버전을 동일하게 만들어 같은 상영 방식을 취한다. 세계 3대 미술 비엔날레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받은 은사자상은 동일한 버전으로 수상한 것이다. 미술과 영화의 접점을 전면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 공간의 호환 가능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낸 사례로는 <토탈리콜>전을 들 수 있다. <토탈리콜>전은 2014년 일민미술관, 한국영상자료원, 문지문화원 사이 세 기관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동시대에 위기를 논하는 매체인 미술(관)과 영화(관) 그리고 출판(사)이 공동으로 기획한 점이 의미심장하다. <토탈리콜>전은 기록과 기억을 키워드로 전시 공간과 영화관을 넘나들면서 두 공간의 장소와 방식의 차이를 질문하는 동시에 교차하는 지점을 전면화한다.
한편 미술 기반에서 다큐멘터리 영역을 넘나드는 방식이 아니라 전통적인 액티비즘 기반에서 미술로 영역을 확장한 흥미로운 작품으로 <거미의 땅>(김동령?박경태, 2012)이 있다. <거미의 땅>은 기지촌 활동가이자 감독으로 기지촌 공간과 인물을 밀도 있게 다룬 작품이다. 작품은 야마가타영화제를 비롯해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극장 개봉하는 동시에 다른 작가들과 협업해 <경기북부 고스팅> 전시를 개최한다. 영화를 기본 텍스트로 하되 매체에 구속되지 않는 방식으로 영화 속 각 인물을 질료로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 전시 상영을 하면서 기지촌 공간에 대한 활동을 확장한다. <거미의 땅>의 경우는 미술관으로 전시 상영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 플랫폼의 확장을 넘어서 운동의 확장인 것이다.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와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를 넘나드는 지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모두 한국 근현대사의 정치적?역사적 사안에 천착한다는 점이다. 다만 액티비즘이 현실 사안을 기록하고 알려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는 다루는 대상과 의미 사이에 주어진 (관습적)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경향이 강하다.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가 액티비즘적 특성을 품는 동시에 현대미술에서 재현 체계에 대한 회의를 담고 있는 지점이다.
이처럼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아트 다큐멘터리 영화는 한국 근현대사를 소재로 미술과 영화를 횡단하고 교차하고 융합하면서 미술관과 영화관을 넘나들고 있다. 각 작품들은 공간의 특성을 기반으로 때론 다른 버전으로, 때론 확장된 버전으로, 때론 동일한 버전이지만 다른 해석과 감각을 유발하면서 실험하고 있다.
by.
이승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