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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다큐]민중운동에서 미학성으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흐름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독립 다큐멘터리의 태동기다. 사회변혁을 향한 분명한 목적의식이 이 시기 다큐멘터리를 이끌었다면, 1990년대 초반에 도래한 두 번째 시기의 화두는 ‘정체성’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세 번째 변화는 다큐멘터리의 미학화 추세다. 계몽성, 정체성, 미학성은 필자와 이승민, 정민아, 조혜영이 함께 집필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오늘: 장르, 역사, 매체」 (본북스, 2016)에서 한국 다큐멘터리의 시기를 구분할 때 핵심적인 개념이 된다. 이 글의 상당 부분은 이 책의 서문을 축약하고 보충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소규모 영상집단들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 실천이 시도되었다. 이 시기 제작자들은 기층민중의 삶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민중운동을 기록했다. 이 기록 영상물은 지역사회 공동체를 통해 상영됨으로써 사회민주화의 당위성에 대한 토론을 유도했다. 이 영상물들은 관객이 은폐된 현실을 인지하고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도록 촉구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지니고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계몽적이다.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1988), <노동자 뉴스>(노동자뉴스제작단, 1989), <전열>(다큐멘터리작가회의, 1991) 등이 대표작이다.
두 번째 시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일어났다. 영상활동가로 자신을 지칭하던 제작자들은 다큐멘터리 전문제작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1980년대 사회운동의 사상적 기반이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시민사회가 도래했다. 영화계에서는 한국영화 제작?유통 측면에서 질적 개선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영화제가 등장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다큐멘터리 재현 양식에 대한 자의식이 싹텄다. 제작자들은 카메라를 든 자신의 위치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했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작품 안과 밖에 기입하기 시작했다. 제작 주체가 현실에 개입하고 다큐멘터리의 대상과 상호작용하면서 다큐멘터리 서사에 ‘감독인 나’가 등장했다.
이렇게 제작자가 성찰적 위치를 취하면서, 거대 서사에서 벗어나 자신과 가족을 다룬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 붐이 일었다. <가족 프로젝트>(조윤경, 2001), <나의 아버지>(김희철, 2011) 등이 대표작이다. 특히 <고추 말리기>(장희선, 1999)와 <평범하기>(최현정, 2002) 같은 영화는 픽션과 논픽션을 접목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계를 확장했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애국자 게임>(경순?최하동하, 2001),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최진성, 2001), <우익청년 윤성호>(윤성호, 2004)는 신랄한 정치 풍자와 유머, 실험적인 재현 양식을 조화시켰다.
또 2000년대 중반부터 다큐멘터리가 극장에 진출하고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면서 ‘다큐멘터리 영화’의 위상이 높아졌다. 선댄스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수상하며 화제가 된 <송환>(김동원, 2003)은 다큐멘터리의 극장 배급을 개척했다. 방송용으로 기획되었던 <워낭소리>(이충렬, 2008)의 대대적인 극장 흥행은 다큐멘터리의 시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고 각종 사전제작 지원 규모가 커지고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서 현재에 이르는 세 번째 시기는 ‘다큐멘터리의 미학화’로 변별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무색투명한 기록물이 아니라 제작자의 시선과 논평을 담은 ‘조립된 기록물’임을 더는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기록의 의미가 이전과 달라졌고, 다큐멘터리의 다른 잠재성과 가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용산 참사를 다룬 탐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김일란?홍지유, 2011)과 휴먼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진모영, 2014)가 발신하는 정치적 파급력은 전혀 다르지만, 양자 모두 엄청난 대중적 호응을 불러왔다.
더불어 이른바 ‘예술가 다큐멘터리’의 등장은 제작자의 위상이 ‘예술가-감독’으로 본격 이동하고 있음을 알렸다. <거미의 땅>(김동령?박경태, 2012), <논픽션 다이어리>(정윤석, 2013), <위로공단>(임흥순, 2014) 등이 대표작이다. 이 작품들은 극장뿐만 아니라 전시 공간에서 상영함으로써 영화와 미술의 영역을 교차하고 확장했다. 넘쳐나는 영상 기록을 재활용해 역사 다시 쓰기를 행하는 다큐멘터리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바람과 불>(김경만, 2011), <백년전쟁>(민족문제연구소, 2012)과 같은 편집 다큐멘터리는 사회적•영화적 논쟁을 일으켰고, 다큐멘터리의 플랫폼에 대한 고민을 야기했다.
현재 한국에서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전통적인 기반이던 지역 공동체뿐만 아니라 극장, 온라인, 미술관에서 다큐멘터리가 범람하며,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제작 및 공개 과정이 일깨우듯, 진실 규명과 사회 정의를 향한 열망은 여전히 다큐멘터리 제작 기획의 중요한 동기다. 반면 <버블 패밀리>(마민지, 2017)나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정윤석, 2017) 같은 작품은 한국 사회의 집단적 멘털리티를 더 깊숙이 통찰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완연히 다른 감수성과 미학적 접근이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국면은 다큐멘터리의 개념, 윤리, 담론, 양식, 시장, 플랫폼, 제작자의 정체성 등에 걸쳐 다시 전면적인 검토와 사유, 논쟁을 요청한다고 하겠다.
by.
남인영(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