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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 투 더 다모아극장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 수입을 업으로 하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볼 기회가 많았다.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 무협영화부터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어린이는 못 보는 액션영화, 갱스터와 누아르까지 좀 센 영화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큰딸을 데리고 다니며 참 많은 영화를 보여주셨다.
당시에는 매주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늦은 밤 방영하는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를 볼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동생들은 못 끼는 첫째 딸만의 특권이었는데 상영시간이 다가오면 간식을 준비해서(주로 고래밥 과자) 부모님 사이에 누워 오프닝 화면을 기다리곤 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이불 안에 쏙 숨어 그 장면이 지나 가길 기다렸고 가끔 살짝 야한 장면이 나오면 서로 민망해하며 영화를 지켜봤다. 그때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아직도 떠오른다.
그동안 참 많은 영화를 보고 참 많은 장소에서 영화를 봤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 영화 관람이 나에겐 영화를 제대로 즐긴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시간이 흘러 그 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방영한 영화들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이를 먹고 감성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만 왠지 내가 봤던 그 재미있고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가능한 한 당시에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은 TV에서 상영을 해도 다시 보지 않는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첫사랑을 지금 다시 만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무엇이든 첫 기억은 강렬하고 소중하다. 어른들과 동행하지 않고 내 의지로 선택해서 본 첫 번째 영화는 바로 <빽 투더 퓨쳐 3 Back to the Future III>(로버트 저메키스, 1990)였다. 경기도 성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 나에게 서울이란 곳은 어른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아주 먼 곳이었다.
여름방학이 한창이던 어느 일요일 오후, 방학 숙제를 핑계로 모여서 빈둥거리던 나와 친구를 보다 못한 아버지는 친구가 운영하는 극장에 가서 영화나 보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빈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안 그래도 너무 심심했던 우리는 영화에 대한 기대와 예상치 않은 일탈에 온몸이 짜릿해져서 당장 가겠다고 대답했다. 설레는 마음 한 켠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만만치 않았다. 그전까지는 둘 다 어른과 동행하지 않고 서울에 가본 적이 없었고 이미 오후라서 영화를 보고 나면 해가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 밤에 과연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걱정을 다 이겨내고 소심했던 우리가 영화를 보러 간 건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정말 어지간히 심심했고, 진짜 가고 싶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용기를 낸 어린 시절의 내가 기특하기까지 하다.
반대할 게 분명한 엄마에겐 말씀을 안 드리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 핑계를 대기로 합의를 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동생이 자기도 껴주지 않으면 엄마한테 바로 이르겠다고 협박하는 통에 할 수 없이 셋이 서울로 극장 여행을 나서게 됐다. 그리하여 소심한 세 명의 어린이는 45번 좌석버스를 타고 지금의 논현역 근처에 있던 ‘다모아극장’에 <빽 투더 퓨쳐 3>를 보러 가게 되었다.
이후 서너 번은 다시 봐서 그때의 감흥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객석 뒤편 두툼한 문을 당겼을 때 새 나오던 그 빛과 소리, 셋이 나란히 앉아 홀린 듯 스크린을 바라보던 기억, 마이클 J. 폭스가 드로리안을 타고 날아가는 장면에서 서로 감동의 신음을 냈던 기억 등, 세 소녀에겐 정말 잊을 수 없는 값진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화의 감동을 안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집에 돌아오니 집 앞에 경찰차가 서 있었고 주위가 어수선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들어가보니 각자의 집에서 난리가 나 있었다. 우리가 말없이 사라져 실종신고가 되어 있었고, 엄마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아버지 핑계를 대기도 전에 액션영화처럼 신나게 맞은 기억, 더불어 셋이 타고 가던 45번 좌석 버스의 퀴퀴한 냄새, 집에서 멀어질수록 두려워졌던 마음, 그렇지만 왠지 큰일을 한 듯한 성취감, 돌아오는 길에 느낀 좀 더 성숙해진 느낌. 흡사 영화 <스탠 바이 미 Stand By Me>(롭 라이너, 1986)의 소년들처럼 반나절 일탈했던 우리는 좀 더 성숙해졌고 이 과정이 한 편의 영화처럼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른이 되어 강남에 직장을 잡고 매일 그 앞으로 출근하면서 다모아극장의 변화를 지켜보게 되었다. 뤼미에르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리사이클시티(강남구 재활용센터)로 바뀌더니, 터 자체를 허물고 새 빌딩이 지어지는 바람에 이제 예전 극장의 흔적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만약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어린 시절 그 많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분명 나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은 DVD로 추억의 <빽 투더 퓨쳐 3>를 다시 꺼내 봐야겠다.
by.
김민색(디자인 色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