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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질문하는 영화
내게 <밀양>(이창동, 2007)은 ‘묻는 영화’다. 영화를 볼 때마다 겹겹이 깔린 질문들이 삶의 어떤 면에 대해 말을 걸어온다. 모든 걸작이 그렇듯 언제 보더라도 시의성이 강한 <밀양>은 계속 우리에게 묻는다. 삶을 다시 시작하는 기획은 가능한 일일까, 불가해한 고통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용서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이고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두세 발짝 뒤에서 따라오며 한사코 곁을 지키는 사람은 사랑일까…. 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밀양>은 그 각각의 질문에 대한 영화이자 그 모두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도입부에서부터 <밀양>의 주제는 직설화법으로 전달된다.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밀양에 온 신애(전도연)는 자동차 고장으로 만난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에게 밀양의 뜻을 아냐고 묻고, 종찬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어디 뜻 보고 삽니까. 그냥 살지예.”
‘그냥 사는’ 사람인 종찬과 달리 신애는 ‘뜻 보고 사는’ 사람이다. 남편의 바람기와 사고사를 비롯해 이미 몇 고비의 불행을 통과해온 신애는 자기 현실을 지우고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비밀의 햇볕’인 밀양(密陽)을 찾아온다. 하지만 현실을 내 뜻대로 기획해보려는 의지를 단박에 무너뜨리는 고통은 재난처럼 느닷없다. 일상의 허리를 뚝 부러뜨리고 폭력적으로 들이닥치는 고통에도 의미가 있을까. 예상치 못한 고통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은 “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이 답을 구하려는 고통과의 싸움은 백전백패다. 그러나 신애는 뜻을 찾으려는 오기로 똘똘 뭉친 여자다. “눈에 보이는 것도 믿지 못한다”던 신애는 반대의 극단으로 달려가 광신적 믿음 속에서 아들을 잃은 고통의 의미를 찾는다. 고통의 의미를 완결 짓기라도 할 기세로 신애는 가해자를 용서하러 교도소에 찾아가지만, 신애가 용서하기도 전에 가해자는 “하느님에게 용서받았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용서하기도 전에 하늘이든 국가든 누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 이 대목에 이르면 2017년 8월의 시점에도 여전히 광주를 떠올리게 된다. 가해자 전두환은 여전히 광주 시민을 폭도라고 모욕한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도청 앞 집단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피해자와 고통만 남고 가해자가 사라져버리는 상황은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피해자의 고통이 여전한데, 누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숨기는가.
용서할 수 있는 선택적 권리마저 신에게 빼앗긴 신애는 신을 엿 먹이려는 그야말로 집요한 한판 승부를 벌인다. 뜻을 찾기 위한 신애의 안간힘은 지독하고 무모하지만 그 싸움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사람은 그것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니까. 결국 신애의 ‘자해복수극’에서 광기와 발작을 뚫고 뛰쳐나온 것은 살려고 하는 욕구다. 고통의 의미를 끝내 찾지 못한 사람의 내면에서 의도치 않게 튀어나온 처절한 애원을 들으며 나는 언젠가 읽은 알버트 슈바이처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인,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살아가기 위한 어떤 ‘뜻’을 찾아내지 못해도 사람 안에는 살려고 하는 생명이 있다. 밀양, ‘비밀의 햇볕’은 어쩌면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끝날 때에도 신애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미쳤다”는 말을 하며 이웃 여인과 함께 웃을 수 있게 됐다. 한결같이 신애의 곁을 지켜온 종찬은 밀양이 “다른 데와 똑같아예”라고 말한다. 신애의 고통은 다른 사람도 똑같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신애처럼 우리의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것에서 뜻을 구하던 신애는 이제 누추한 땅으로, 밀양으로, 종찬에게로 내려올 수 있게 될까. 첫 장면에서 하늘을 비추며 시작한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생활의 비루한 때가 묻은 땅을 비춘다. 구원이라는 게 있다면 여기에서 시작될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by.
김희경(논픽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