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바로가기
하단 바로가기
로고
통합검색
검색
상세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서비스
ENG
업데이트
검색
DB
영화글
VOD
컬렉션
업데이트
영화글
기관지
DB
DB 서브
상세검색
작품 DB
인명 DB
소장자료
리스트
영화제
영화글
영화글 서브
연재
한국영화의 퀴어한 허구들
비평, 안녕하십니까
그때의 내가 만났던
명탐정 KOFA: 컬렉션을 파헤치다
사사로운영화리스트
세계영화사의 순간들
임권택X102
기획
칼럼
한국영화 NOW : 영화 공간 아카이빙 프로젝트
종료연재
기관지
VOD
VOD 서브
VOD 이용안내
가이드
VOD 기획전
전체보기
영화
영화인다큐
컬렉션
고객서비스
고객서비스 서브
KMDB 이용안내
온라인 민원
1:1문의
영화인등록
FAQ
오픈API안내
이용안내
파일데이터
Open API
공지사항
로그인
마이페이지
GNB닫기
DB
영화글
VOD
컬렉션
고객서비스
기관지
연재
기획
종료연재
기관지
이전
1483
필자의 글 입니다.
전체게시물(
1
)
[김지미] 4인의 영화인이 말하는 내가 본 김지미 ④
Q
김지미 씨는 수많은 작품에 참여하며 1960~70년대 한국영화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인이다. 그와의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A
어린 시절, 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스크린을 통해 선배님을 봐왔다. 열한 살 때 본 <춘향전>(홍성기, 1961)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꿈속의 여인 같았다고 할까? 처음 선배님을 직접 뵌 건 1983년 <외출>(홍파)을 통해서였다. 워낙 대스타라서 같이 작업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외출>이 연상의 여인과 사진작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 함께 연기할 수 있었다.
Q
<외출> 촬영 당시 김지미 씨는 이미 상당한 경력을 지닌 영화인이었다. 이후 <아낌없이 주련다>(노세한, 1989), <명자 아끼꼬 쏘냐>(이장호, 1992)에도 함께 출연했는데, 대선배와의 작업이 어렵진 않았나? 연기 선배로서 김지미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A
후배들 끼니까지 직접 챙기셨을 정도로 자상하고, 후배들이 상처받거나 불리한 일을 당하지 않게끔 보호막이 되어주셨다. 뒤풀이를 하라고 용돈을 주시는 것도 많이 봤고(웃음). <명자 아끼꼬 쏘냐> 촬영 당시 구소련이 붕괴돼 얼마간 구류되고 타국에서 명절을 쇠야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챙기며 후배들과 스태프들을 독려해주셨다. 연기라는 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호흡을 맞추는 사람들 간의 감정이나 인간적인 유대감이 정말 중요하다. 지금도 나는 선후배 모두와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바로 김지미 선배님께 배운 거다. 선배님을 보며 나도 후배들에게 베풀 줄 아는 믿음직한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김지미 선배님은 언제나 진솔하게 연기하셨다. 최대 근사치까지 캐릭터에 몰입하는 배우였는데, 그 열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연기를 할 때 내가 감정을 최대한 표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했고. 함께한 세 작품 모두 베드신이 있었는데, 대선배와의 베드신이 얼마나 어려웠겠나. 그래도 선배님께서 워낙 인간적으로 대해주셔서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선배 연기자로서 후배들에게 한없이 관대하셨지만, 사업가이자 제작자로서는 엄격한 면이 있었고 프라이드도 대단했다. 연기자로서나 제작자로서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다.
Q
지금은 작품 활동이 드문 김지미 씨의 행보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 많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A
여전히 선배님을 추억하고 스크린을 통해 만나 뵙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도 변함없이 아름답고 건강하시니 언제든 좋은 작품이 있다면 하셨으면 좋겠다. 또 백범 김구 선생께서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를 소원하셨듯, 문화는 곧 국력이고 영화도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지금도 우리 영화가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선배님께서 힘을 보태주셨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by.
이영하(영화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