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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한국 멜로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은 <번지점프를 하다>(김대승, 2001)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통속적인 안정감을 전해준다. 남녀가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고, 군 입대를 앞두고 만나기로 한 날, 교통사고로 여자가 죽는다. 남자는 영문도 모른 채 입대하고 시간은 흘러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고,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가 된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인 현빈에게서 강한 옛사랑의 징후들을 읽어낸다. 결국 현빈이 죽은 옛사랑의 환생이라는 걸 알게 된 남자는 어리둥절한 현빈에게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한다. 마침내 둘은 서로를 알아보게 되고 사회의 통념을 피해 뉴질랜드 번지점프장에서 떨어져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다.
다시 태어나도 사랑하자는 말. 이 확고한 사랑의 구도 때문에 다른 갈등은 영화를 보는 우리의 인식에서 별 비중 없이 스쳐지나간다. 가령, 동성 제자를 사랑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입장이나 환생한 현빈의 혼란스러움,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의 안타까움은 아무리 자세히 그려졌다 하더라도 강력한 남녀의 사랑 구도에서 미끄러지게 마련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둘이 왜 사랑에 빠졌는지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여자가 남자를 먼저 보았고, 우산이 있는데도 남자의 우산 속으로 뛰어듦으로써 남자는 여자를 보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이 단순한 구도는 여자의 환생이 남자의 성으로 바뀌게 되면서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으로 옮겨 오지만, 남녀 간의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강력한 구도를 깨기에는 역부족이다. 환생자인 현빈의 갈등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 남자 친구의 갈등을 바라보는 혜주의 고통도 그저 스쳐 지나간다. 인우-태희의 사랑의 구도가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사실 인우-태희의 구도를 입체적으로 세워주는 것은 우리가 그냥 곁가지 얘기처럼 흘려보낸 인우의 아내(전미선)와 혜주(홍수현)의 역할에 있다. 먼저, 인우의 아내는 어이없게도 남편이 남자 제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이제까지 자기가 사랑하던 한 남자의 부재를 극심하게 겪는다. 이 극심한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는 카메라가 텅 빈방(남편의 부재)에 홀로 남겨진 인우의 아내를 부감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화면에서 인우의 아내는 가운데 아래쪽에 말없이 있고 화면은 대부분 방 안의 풍경을 잡는 데 골몰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를 겪는 인우의 아내는 화면에서도 그렇게 소외된다. 그래서 극심한 소외는 말없음으로 표기된다. 그 부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나는 어디에서도 중심에 위치하지 못한다. 이 장면은 그대로 롤랑 바르트의 다음과 같은 구절과 그대로 포개진다.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고 하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타자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 「사랑의 단상」
인우의 아내는 이제 더 이상 남편과 자기의 자리가 서로 교환될 수 없음을 아프게 인식하고 있다. 그 인식은 너의 부재에 있고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과 동시에 사랑할 수조차 없는 공동을 낳는다. 인우의 아내에게 남편은 거대한 구멍이고, 텅 빈 화면이지만, 혜주에게 현빈은 인우 아내와 인우의 관계처럼 나중에는 부재의 대상이겠지만 영화적 현재에서는 연민(compassion)의 대상이다. 혜주에게 현빈은 아픈 대상이다. 현빈의 아픔은 나(혜주)와 연관되어 있지 않지만, 나는 그의 아픔을 아파한다. 현빈을 향한 혜주의 외침은 현빈의 아픔을 향한 절규다. 그는 나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혜주는 인우의 아내처럼 부재를 겪는 게 아니라 내가 아닌 그로 인해 나의 현존을 경험하고 있다. 인우의 구애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현빈의 고민은 그대로 혜주의 아픔이며, 그 아픔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일치에 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남녀 간의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강력한 신파일 수 있지만 신파의 평면성을 입체적으로 세우는 이야기의 두 기둥은 인우 아내가 겪는 텅 빈 부재와 혜주의 현존성이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미지의 구성으로 보면 신파를 극복할 만한 큰 기둥이다. 영화의 서사는 이렇게 때로 인상을 뒤엎기도 한다.
by.
함성호(건축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