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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자신의 견해를 반영해야 진정한 감독이다”
1990년대 초 한국영화계는 두 편의 작품으로 술렁였다. <남부군>(1990)과 <하얀 전쟁>(1992). 두 영화는 당시만 해도 금기시되던 ‘빨치산’과 ‘베트남전쟁’을 정면으로 다루며 새로운 시각을 요구했고, 관객들은 ‘쇼크’에 빠졌다.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영화에 담아낸 ‘사회파 영화’의 또 다른 물꼬가 트인 것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목도한 관객들은 열광했다. <남부군>은 그해 한국영화 흥행 2위를, <하얀 전쟁>은 흥행 3위를 기록했다. 정지영(71) 감독은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던 이슈를 새로운 관점에서 영화에 담아낸 것이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말한다. 지금, 한국영화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사회파 영화’에 커다란 자극을 줄 만한 노장 감독의 견해다.
지용진
한국영상자료원의 특별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의 개막작으로 <하얀 전쟁> 4K 복원본을 상영했다. 개봉한 지 25년 만에 <하얀 전쟁>을 다시 보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정지영
이번 상영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얀 전쟁>의 네거티브 필름(원본)은 사실 일본에 있다. 당시에는 일본의 녹음 기술이 한국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후반 작업을 일본에서 했다. 그래서 그동안 <하얀 전쟁>은 해적판 DVD로 상영됐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원본을 보게 된 것이다. 아마 개봉 당시 영화를 못 본 사람들로서는 이번에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지용진
당시 <하얀 전쟁>은 일부 사회단체의 항의를 받고, 검열조치를 당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사회의 이면을 다룬 영화들은 태생적으로 견해가 다른 단체와의 충돌이 불가피한데.
정지영
자신의 시선, 견해를 영화에 반영해야 진정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자신의 생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두려워 영화를 찍지 못한다면 그건 감독이 아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라도, 소신껏 영화를 찍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온전히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용진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 <그들도 우리처럼>(1990)을 필두로 1980년대 이후 사회파 영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대적 배경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지?
정지영
1987년 6월항쟁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사회에 발언하고, 체제(정부)를 바꾸려고 시도한 ‘시민혁명’이었다. 1960년 4·9혁명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정치혁명에 가까웠다면, 6월항쟁은 시민들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한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당시 감독들은 ‘그래, 우리 뒤에는 시민들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한국영화가 사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게 되는 응원을 등에 업은 셈이다.
지용진
서슬 퍼런 검열이 존재했는데, 창작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영화 제작에 많은 부담이 됐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정지영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위, 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영화 사전 검열은 아주 심했다. 제작사에서 시나리오를 공윤위에 보내면 관계자들이 빨간 펜으로 난도질을 했으니까. 마음대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시대였다. 나 역시 심의를 많이 의식했다. 그래서 공윤위에는 촬영본과 다른 <남부군>의 가짜 시나리오를 보냈다. 정부와 시비가 붙으면 ‘뒤에 국민들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모험을 한 거다(웃음).
지용진
<하얀 전쟁>은 제5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작품이고, 당시 외화 위주로 상영하던 호암아트홀에서 상영된 첫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는데, 당시 관객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았다고 보는지?
정지영
당시 젊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자신들이 배운 것과 <하얀 전쟁>이 보여주는 풍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관객들은 베트남전쟁 참전이 월남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 영화는 파병 간 한국 군인이 양민을 학살하거나 전쟁 후 겪는 후유증으로 병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쟁의 이면을 드러냈고, 그래서 많은 이에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 것 같다.
지용진
실제 기반 영화를 준비하면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영화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비추고, 또 인물의 대사를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한 쪽의 시선으로 치우칠 수도 있는데,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는 경계심이 필요해 보인다.
정지영
맞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굉장히 조심한다. 나의 관점, 시각이 합리적인지 점검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취합한다. 그리고 그 정보가 영화에 반영됐을 때, 영화에 도움이 되는지 세심히 살펴본다. 사실 <남부군>에서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안 넣은 장면이 있는데, 토벌대가 남녀 포로를 잡고 그들에게 강제로 성행위를 시킨 뒤 남자가 사정하기 전에 총을 쏴서 죽이는 상황을 증언을 통해 확보했다. 하지만 ‘과연 이 장면이 <남부군>에 도움이 될까’를 고민했고, 결국 빼기로 결정했다. 친한 감독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나에게 그러더라. ‘정 감독은 좋은 작품을 만들 수는 있겠으나, 문제작은 못 만들겠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나는 문제작을 만드는 예술가라기보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영화감독’이라고(웃음).
지용진
감독님이 생각하는 예술가와 영화감독의 차이는 무엇인지?
정지영
예술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창작하는 사람이다. 관객에게 해석을 요구하는 거다. 하지만 영화감독이라면 쇼트마다 관객을 생각해야 한다. 예술가들은 관객을 혼란시키고, 영화감독은 관객을 만족시키는 사람이라고 본다.
지용진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
정지영
두 편을 동시에 기획하고 있다. 한 편은 세조 초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고, 또 다른 한 편은 실화를 바탕으로 전북 삼례군의 한 슈퍼마켓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올해 촬영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by.
지용진(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