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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영화감독 배창호가 말하는 안성기
안성기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던 때다. 덕배 역을 맡을 배우를 물색하던 중 다방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했던 안성기 씨가 떠올랐다. 당시는 그가 긴 공백기를 끝내고 성인 배우로서 활동을 재개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잘 알려진 작품은 없었지만 속이 깊고 행동과 말투가 어눌한 덕배 역할을 그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안성기 씨를 추천해 처음 영화 작업을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가 쌓였고, 나의 첫 작품 <꼬방동네 사람들>(1982)에도 안성기 씨가 참여하게 됐다.
이후부터 20년 가까이 다수의 작품을 함께 한 것은 내가 영화를 통해 그리려는 것들이 안성기 씨의 오라(aura)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뚜렷한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라기보다는 어떤 색도 입힐 수 있는 무채색의 배우라고 생각한다. 고뇌, 우수, 사랑과 같은 기본적인 특질을 갖고 있는가 하면 그 외의 모습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배우다. 그런 이유로 하나둘 작품을 함께 했는데, 몇 년 후에는 우리 둘 다 놀랐다. “우리가 이렇게 많이 했나” 하고.
내 영화에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의 인간형이 등장한다. 사랑 또는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형이 그것인데, 안성기 씨는 두 가지를 모두 잘 표현해주었다. 특히 <적도의 꽃>(1983), <깊고 푸른 밤>(1985), <꿈>(1990)과 같이 욕망을 추구하는 캐릭터는 관객들이 그 인물을 연민할 수 있도록 표현되었다. 그건 그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느낌과 심성이 캐릭터에 묻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점 또한 좋았다. 인간의 욕망은 개인의 인간성과 그가 처한 환경의 화학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욕망 자체를 손가락질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은 안성기라는 배우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by.
배창호(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