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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사기단이 떴다
방학이면 우리는 각자 역할을 분담한 전문 사기단이 되곤 했다. ‘동보극장 영화 할인권 위조 겸 공짜 입장단’이라고 할까? 상황은 이랬다. 방학이 되면 학교 앞에서 동보극장 아저씨가 촌스러운 분홍색과 녹색의 얇은 습자지 같은 종이에 인쇄된 방학 특집 만화영화 할인권을 나눠준다. 아이들은 각자 받아 온 할인권을 그림을 잘 그리는 나에게 가져오고, 그러면 나는 할인권과 비슷한 습자지 밑에 까만 먹지를 대고 인쇄된 글씨체와 똑같이 몇 장을 그린다. 그다음 위조한 할인권으로 구멍 뚫린 동그란 엽전(제기 안에 넣는 쇳조각) 같은 것을 꼬깃꼬깃 싼다.
그리고 동보극장으로 가서 표 받는 아저씨에게 위조 할인권을 주고 아저씨가 구겨진 종이를 펴는 사이 우리는 잽싸게 어두운 극장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캄캄한 극장 안에서는 우리를 찾을 수 없기에 그걸로 게임 끝.
그렇게 방어막을 뚫고 잠입에 성공한 우리에게 축하의 팡파르처럼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이라는 노래가 들려왔다. 어두운 극장 안은 별세계가 펼쳐지는 우주 공간이었다.
서울에서는 여름방학에 개봉하는 만화영화가 전국을 순회한 다음 겨울방학에야 개봉하던 홍성읍의 극장. 어찌나 돌고 돌았는지 자글자글 필름이 긁힌 자국 때문에 화면에 비가 오는 것 같아서 우산을 가져가야 할 것 같던 극장. 금은방 주인 아주머니의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에코가 들어간 목소리로 ‘황금당당당당다아앙’ 하는 금은방 광고가 나오던 극장.
우리 꼬마 위조단이 커가면서 동보극장은 <플래시댄스>의 제니퍼 빌즈라는 섹시한 누나를 알려주었고, 떠듬떠듬 ‘화더퓔~링~’(What a feeling) 하고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비록 콩글리시일지언정 영어공부를 하게 했으며,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보고 거대한 머리통만한 알통을 가진 남자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아무리 높게 공을 쳐도 닿지 않는 천장이 있는 탁구장을 갖게 되었다. 동보극장이 망한 자리가 세상에서 제일 넓고 천장이 높은 탁구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내가 지금 만화가인 것은 그 시절 할인권을 위조하고 그렇게 본 태권브이를 그리던 영향도 조금은 있으리라. 동보극장에 내 인생의 공로패를.
by.
신명환(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