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딘 듯 날카롭게 돋아 있는 현실, <칠수와 만수>
하정우와 김수현, 수지가 출연한다면 어떤 영화일까. 일단 세 배우만으로도 대작 상업 영화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게다가 음악 담당은 장기하라면? 제작자는 영화 촬영을 하기도 전에 입꼬리가 귀에 닿을지도 모른다. 꽤 많은 제작비가 투여될 것이고, 대대적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마케팅 활동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제작자와 감독이 의기투합해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영화를 만든다면? 스릴러, 형사물, 공상과학물 등의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사회 현실을 꼬집는 게 아니라 정통 사회파 영화를 제작한다면? 21세기 충무로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지도. “그 영화 정말 만들어지는 것 맞아?”
1988년 개봉한 <칠수와 만수>의 진용은 화려했다. 충무로의 흥행을 보증했던 안성기가 출연했고, 청춘 스타에서 진지한 배우로 변신을 모색하던 박중훈이 연기호흡을 맞췄다. 도회적 이미지로 뭇 남성의 마음을 떨리게 했던 배종옥도 함께했고, ‘작은 거인’ 김수철이 음악을 맡았다. 감독은 프랑스 파리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유학파 신인 박광수였다.
화려한 진용에 비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불우하다.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먹고살만해진 당대 사회에서 밑바닥을 형성하는 인물들이 스크린 중심에 선다. 우선 칠수(박중훈). 미군 주둔지로 유명한, 경기 동두천 출신인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누나의 초청장 하나 믿고 목소리가 큰 청춘이다. 그림에 좀 소질이 있다는 점을 빼면 내세울 게 없다. 그래도 꿈은 허황돼서 부잣집 여대생 지나(배종옥)와의 사랑을 키운다. 꿈은커녕 체념하듯 살아가는 만수(안성기)의 삶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역시나 보잘것없다. 비전향 장기수인 아버지가 매번 삶의 진전을 가로막는다. 칠수는 지나에게 실연당하고, 만수는 아버지 일로 마음의 상처가 더 커질 무렵 두 사람은 오해 때문에 소동극을 벌인다. 그들의 타고난 환경은 소동극을 비극으로 변질시킨다.
영화는 무척 사회 비판적이다. 개봉 당시 한국 사회의 복합적인 문제를 품고 있다. 칠수가 나고 자란 동두천을 비추며 한미 관계의 어둠을 언급하고, 만수의 가족사를 지렛대 삼아 이념 대결로 얼룩진 현대사를 들춘다. 칠수와 지나의 짧은 사랑은 계층 간 갈등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칠수와 만수의 넋두리를 점거 농성으로 오인하는 공권력은 군사 독재가 끝났다 해도 여전히 권위적인 정부를 상징한다.
사회파 영화라고는 하나 상업적인 요소는 있었다. 대학로 무대에서 동명의 원작 연극은 이미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1986년 서울에서만 5만 명가량이 관람했다. 충무로가 제작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다. 영화의 바닥에 흐르는 블랙코미디도 흥행 요소로 꼽힐 만했다. 1987년 6월 항쟁에 따른 민주화 분위기도 영화 제작과 개봉에 우호적일 만했다.
여러 요소가 더해지고 겹쳐 <칠수와 만수>가 만들어졌지만, 한국영화사의 흐름도 한몫했다. 1980년대 초반 대학가 영화운동의 에너지를 품은 한국영화 뉴웨이브의 등장이 <칠수와 만수>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요컨대 <칠수와 만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충무로의 흐름을 주도한 뉴웨이브의 준봉 중 하나다.
영화의 외형과 제작 배경을 살펴보다 보니 <칠수와 만수>는 우울하고 딱딱한 작품으로 여겨질 듯도 하다. 하지만 진지함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여느 사회파 영화와 달리 <칠수와 만수>는 소박한 웃음과 리듬감 있는 편집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칠수와 만수가 빚어내는 유사 가족애에 가슴이 따스해지기도 한다. 빠른 템포로 도시의 삶을 비판하는 ‘무엇이 변했나’와 처연함으로 귓가를 감도는 ‘울지 않으리’ 등 김수철이 작사, 작곡하고 부르는 노래들도 명불허전이다.
아마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칠수와 만수가 고층 빌딩 옥상에 내려다보는 서울 반포동 주변 풍경일 것이다. 압축 성장의 물적 결과라 할 수 있는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의 가지런한 모습에서 산업화의 비정이 풍긴다.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의 고비를 넘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불행한 군상을 바라보며 영화는 현대사의 한순간을 포착해낸다. <칠수와 만수>를 재발견하고 다시 봐야 할 가장 큰 이유다.
by.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