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임권택, 1976)
사진 기증: 안영자(故최승화 스틸 작가의 부인) 왼쪽 두 번째부터 이석기 촬영감독, 임권택 감독, 영화배우 전영선, 신성일.
1975년 겨울. 설날 특선 개봉을 목표로 작업에 한창이던 영화 <왕십리>의 촬영 현장이다. 준태(신성일)는 1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전차와 기동차는 없어진 지 오래고, 친구들도 다 떠나거나 변했다. 더군다나 첫사랑 정희(김영애)는 그녀를 향한 준태의 동정심을 이용해 태연하게 사기를 친다. 성장과 발전의 드라이브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변할 수밖에 없던 시대. 영화는 이들의 삶을 평가하는 대신, 준태의 입을 빌려 이들 모두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왕십리>는 1975년 12월 크랭크인해 이듬해 1월 31일 개봉했다. 불과 1개월 만에 촬영에서 개봉까지 이뤄진 셈이다. 야심에 찬 눈빛과 확신에 찬 손짓. 중앙에 선 흑발의 남자가 40년 전 40대의 임권택 감독이다. ‘생존’을 위해 영화를 시작했다는 감독의 말을 상기할 때 그 역시 최선을 다해 시대를 마주하고 있었던 영화 속 인물들과 겹쳐진다. 이 때문일까. 온통 눈으로 덮인 가운데서도 사진 속 현장은 춥다기보다 뜨겁게 느껴진다.
by.강현정(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