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영역]영화, 관객의 육체에 호소하다
초기 영화 시대의 영화 체험: 스펙터클과 소통하는 공연장
초기 영화 시대, 키네토그래프와 시네마토그래프로 기록된 움직이는 이미지 자체는 소리 없는 정적인 스타일의 영화였지만, 영화 관람은 매우 떠들썩하고 스펙터클한 시각 체험이었다. 이와 같은 관람 문화는 초기 영화 시대에 개봉한 뤼미에르 형제의 <물 뿌리는 정원사 Arroseur et arros >(1895)의 한 장면이 담긴 시네마토그래프 상영 포스터에 담겨 있다.
우리가 모두 영화관에서 그렇듯이 영화 포스터 속의 초기 영화 시대 관객들은 즐겁게 웃고 있다. 하지만 스크린을 향하고 있는 관객의 손과 시선을 보면, 초기 영화 시대 관객의 웃음과 손짓은 분명히 즐거움의 표현이었을 뿐만 아니라 스크린 속 인물을 향한 말 걸기라는 일종의 육체적 반응(bodily reactions)이었다. 녹색 옷을 입은 소년은 반쯤 일어선 채로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물세례를 받는 정원사를 향해 손을 뻗으며 웃음과 손짓으로 말(아마도, “멍청하긴, 그걸 몰랐어?”라는)을 걸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침묵이라는 수동적인 영화 보기는 오랜 시간 동안 영화 관람 수칙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웃음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영화 속 주인공에게 직접 말을 거는 식의 구전적, 육체적 반응은 영화 몰입을 깨는 불필요한 행동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초기 영화 시대의 영화 관람은 정반대의 질서, 즉 스크린 속 세상과 관객 사이의 적극적인 상호교환 속에서 완성되었다. 예를 들면, 스크린 속 자동차와 기차는 빠른 속도로 객석을 향해 돌진했고, 주인공은 관객을 향해 다양한 감정이 담긴 시선을 던졌다. 관객은 소리와 몸짓으로 응답했다. 관객의 웃음과 환호와 같은 구전반응(oral reaction)은 다른 관객과 공유되었다.
초기 영화 시대 영화 자체는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는 관객에게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경이로운 자연 풍경이나 기차, 전차와 같은 새로운 기계의 속도와 복잡함으로 가득한 도시 공간과 같은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채워졌다. 변사는 종종 영화와 관객 사이에서 스펙터클, 웃음, 이야기의 매개자가 되었다. 영화의 시각적 볼거리, 관객의 반응, 변사의 구술로 완성되는 초기 영화 시대 영화 관람의 상호 소통적인 양상 때문에 영화는 ‘니켈로디언(Nickelodeon)’이라는 상설 극장이 등장하기 전까지 주로 놀이공원, 보드빌 공연장, 마술 공연장, 박람회와 같은 대중문화 공연과 함께 소비됐다.
1896년 7월 4일 니주니-노브고르드 박람회(the Nizhni-Novgorod Fair)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 L’Arrivee D''Un Train A La Ciotat>(1895)을 처음 관람한 막심 고리키(Maxim Gorky)는 ‘활동 사진’ 열차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신비한 사실성의 스펙터클을 이렇게 묘사했다. “기차가 스크린에 나타났습니다. 조심하세요! 기차가 여러분을 향해 돌진합니다. 여러분이 앉은 어둠 속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 여러분(의 몸)을 으깨진 살점과 뼛조각으로 채워진 자루로 만들어버리고, 상영관과 건물 전체를 산산조각 낼 듯합니다. (중략) 이상한 가상의 이미지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여러분의 의식까지도 약하게 그리고 흐릿하게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막심 고리키가 전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의 공포에 가까운 전율이라는 영화 체험은 영화 자체의 효과가 아닌 영화관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었다. 피아노 반주는 영화의 스펙터클을 소리로 크게 들려줬으며, 변사는 격양된 목소리로 스펙터클의 순간을 알렸다. 영사 기사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영사기의 핸들을 최고 속도로 돌리거나 멈춤으로써 긴장감과 시각적 놀라움을 더욱 극대화했다. 이와 같이 초기 영화 시대의 영화는 영화관 안에서 관객의 반응과 변사의 설명, 음악 연주, 관객의 반응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일종의 멀티미디어 복합 공연이었다.
눈과 몸으로 경험하는 영화: 헤일스 투어스(Hale’s Tours)
영화관에서의 떠들썩하고 복합적인 영화 체험의 즐거움 때문에 수많은 관객이 소극장, 교회, 놀이공원의 임시 영화관을 찾아갔다. 특히 놀이공원에서 활동사진 상영은 그 어떤 경우보다 관객의 시각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4D 영화와 같이 ‘몸’ 자체를 자극하는 가상 체험 방식이었다.
1905년 처음 캔자스시티에 위치한 놀이공원, ‘일렉트릭 파크’에 설치된 ‘헤일스 투어스’ 영화관은 기차 객실처럼 꾸며진 가상 여행 체험관이었다. 객석은 70개 정도였고, 입장료 10센트를 내면 10~20분 동안 가상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극장 밖에는 헤일스 투어스 로고와 함께 아바나, 홍콩, 푸지 섬 등의 여행 목적지가 적혀 있었다. 극장 내부는 실제 기차의 객석처럼 꾸며졌다. 극장 맨 앞쪽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이국적인 자연 풍경과 도시 풍경이 주로 상영되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기차 혹은 전차 맨 앞에서 촬영되었다. 따라서 관객은 마치 실제로 기차를 타고 이국적인 풍경의 자연 속을 여행하는 느낌을, 또는 전차를 타고 도시 공간을 누비는 가상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가상 체험은 초기 영화 시대 영화 관람의 떠들썩함처럼 매우 감각적이었다. 실제 전차를 탄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극장 아래에는 차량의 진동, 좌우 흔들림, 오르막과 내리막의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계 장치들이 설치되었다. 실제 기차 소리를 결합했고, 복잡한 도시 공간이 보일 때는 차량 경적을 결합했으며, 전차 선로를 무단 횡단하는 행인이 보이면 경적이 울렸다. 1905년 이후 미국과 유럽의 놀이공원에서 주된 영화 놀이기구였던 헤일스 투어스는 영화가 내러티브 중심의 문화산업이 되면서 1915년 이후로 사라졌다. 하지만 헤일스 투어스라는 독특한 영화 체험은 다양한 매체가 복합적으로 결합해 만들어내는 초기 영화 시대 영화 관람의 떠들썩한 스펙터클의 경험을 바로 보여준다.
초기 영화 시대의 영화 체험은 이처럼 영화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피아노 반주, 변사의 구술, 각종 특수 무대장치, 관객의 구전적 그리고 육체적 반응이 어우러져 마치 오늘날 영화 경험이 관객의 눈보다는 몸에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더욱 실감적인 스펙터클로 확장돼 완성되었다.
by.정찬철(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