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영역]갤러리에 구현된 거주와 여행의 미학
갤러리에서 설치 작품의 형태로 구현된 ‘전시의 영화’를 이끌어온 중요한 인물들은 샹탈 아커만, 크리스 마르케, 하룬 파로키 등 극장용 영화의 맥락에서 실험적 다큐멘터리와 에세이 영화를 제작한 감독들이다. 이들 중 아커만의 사례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995년 <동쪽 D’Est>(1993)의 영상 설치 작업 버전 이후 아커만은 미술관에서만 관람할 수 있는 영화적 비디오 설치 작품들을 극장용 영화와 별도로 제작해왔다. <텅 빈 냉장고 속의 구두끈을 따라 걷기 Marcher à côté de ses lacets dans un frigidaire vide>(2004), <11월 앤트워프에서 온 여인들 Femmes d’Anvers en Novembre>(2007)과 같은 다채널 설치 작품들에는 아커만이 극장용 영화에서 탐구한 주요 키워드가 포진해 있다. 안과 밖의 분리와 중첩, 이주와 잠정적 거주의 경험, 일시적 정지와 이행의 공존, 물리적 공간과 정신적 공간의 혼융, 무위와 불안의 교차 등이 이 작품들의 이미지와 스크린 건축술에 반영되어 있다. 아커만의 설치 작품들은 스크린을 이행과 경계의 장소로 구축하고, 그의 극장 기반 영화가 추구한 거주와 여행의 미학을 갤러리에서의 보행적이고 수행적인 관람성으로 연장한다. 아커만의 마지막 영상 설치 작품 <지금 Now>(2015)은 5개의 스크린을 V자 모양으로 배열해놓은 형태다. 각 스크린의 이미지는 아커만이 자신의 블랙베리 휴대폰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촬영한 사막 지대의 풍경이다. 모래 평원과 갈색 언덕, 푸른 하늘의 풍경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지면서 서로 겹쳐진다. 아커만은 관람자가 스크린 사이를 가로지르거나 이 스크린들 전체를 멈춰 선 채 조망하면서 이동과 일시적 정지의 경험을 몸으로 지각할 것을 권유한다. 5개의 스크린 이외에 별도로 설치된 프로젝터 두 대는 아커만의 침대 커버 이미지를 전시장 바닥에 투영한다. 이 모호한 이미지는 사막의 풍경이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심리적 공간임을 암시하면서 안과 밖, 스크린과 스크린 바깥의 경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지워버린다. 전시장 전체를 채우고 스크린 사이를 넘나드는 종달새의 지저귐, 총성, 전화 통화음과 같은 사운드가 있다. 이 모든 소리가 더해질 때 스크린의 자연적 풍경은 기억과 감정이 서린 지정학적, 사회문화적 경관으로 승화된다.
by.김지훈(영화미디어학자, 중앙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