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보여주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여름 농활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화동아리 신입생이었던 나는 선배들과 함께 이른바 ‘문선대(문화선봉대)’로서 농활에 참가했는데, 농촌 일을 도와주는 다른 농활과는 달리 문선대는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마당극이나 공연 등의 문예 활동을 했다. 우리의 일은 밤에 시작되었다. 사방이 어두워지면 상영 장비를 갖고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상영한 것이다.
장편영화 1편과 몇 편의 운동권 프로파간다 영상으로 구성된 상영 프로그램은 대한뉴스와 본 영화를 묶어서 상영하던 독재정권 시기의 주류 영화관 프로그램과 기묘하게 유사해, 기성 구조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주장하던 우리로서는 어딘가 엉성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상상할 토대마저 없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이런 프로그램만으로도 막상 현장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장편 영화뿐 아니라 그냥 서툴게 만든 우리의 프로파간다 영상들도 신나서 보곤 했는데 그날의 메인 상영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1990)이었다. 시골의 이야기라 우리가 찾아갔던 마을 사람들도 무리 없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영화에 가끔 등장하던 러브신 덕에 몇 번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열광적인 상영회였고, 이렇게 단순히 마을을 돌며 영화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문화운동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 나는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하루는 한 학생이 자신이 만든 ‘영화 버스커’라는 행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다. ‘영화 버스커’는 영화제에는 올라가지 못한, 그렇지만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화과 학생들의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며 상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예전의 우리처럼 행사도 영화도 엉성했지만, 에너지에 차 있었다.
해마다 정말 많은 영화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은 어디에서도 상영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사라진다. 감독에게도, 관객에게도 영화라는 것은 보여주고, 보았을 때만이 어떤 의미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 앞으로도 많았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이 이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y.조두영(다큐멘터리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