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데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듯하다. 이번 대담은 그런 인식을 더 널리 퍼트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영화음악이 하나쯤은 있을 터. 그러한 음악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되는지, 혹은 영화음악을 제작함에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진행: 황혜림 _ 프로듀서
참석자: 심보경 _ 보경사 대표, 김태성 _ 영화음악 감독, 이병훈 _ 영화음악 감독
같은 배경, 다른 작업: 예고편 vs 본편
황혜림(이하 ‘황’): 영화의 제작 여건이나 작업 환경의 변화, 올 초 타결된 저작권 이슈 등 지금의 영화음악을 화두로 창작자와 제작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 세 분을 모셨다. 근황을 여쭈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김태성(이하 ‘김’):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이하 <홍길동>)의 최종 믹싱 작업을 하다가 왔다. 천성이 좀 게으른 편이라 미리 작업을 못 끝내고, 믹싱 중에도 고칠 게 있으면 끝까지 고치면서 작업하는 편이다. <홍길동>은 배경이 100% 컴퓨터그래픽인데, 음악의 역할이 중요한 영화라 작업량이 평소보다 많은 편이다.
심보경(이하 ‘심’): 예고편 음악도 같이 하시는지? 예전에는 예고편도 음악감독이 같이 작업하곤 했는데, 지금은 다들 라이브러리의 곡을 이용하는 것 같다. 할리우드 음악 같은 것들이 예고편에 많이 쓰이다 보니, ‘나쁘다 좋다’를 떠나 좀 아쉽다. 라이브러리 음악을 써도 창작하는 것만큼 비용이 드는데, 좀 잘못됐다는 생각도 들고. 음악감독이 예고편도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작업 시간이 부족한가?
김: 영화 일을 하게 된 게 예고편 음악 작업을 하면서부터였다. <챔피언>(2002), <연애소설>(2002), <중천>(2006) 등을 작업했는데, 본편과 예고편 음악은 호흡과 결이 완전히 다르긴 하다. <해리 포터 Harry Potter>나 <스타워즈 Star Wars>처럼 본편의 테마가 관객에게 인식돼 그 시리즈의 예고편들에 등장하는 경우는 괜찮지만. 예고편에는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 응집하다 보니, 본편 음악을 넣었을 때 힘이 안 생기기도 해서 새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병훈(이하 ‘이’): 어떻게 영화를 찍었든, 상업적인 면을 부각하는 게 예고편이다 보니 요즘 예고편은 다 블록버스터랄까. 예전에는 음악감독한테 예고편을 보내거나 예고편 작업에 쓸 음악을 받아가곤 했는데, 나온 예고편이 전혀 다른 영화 같아서 놀라기도 했다. 우리 영화 이런 영화 아닌 것 같은데 음악 다시 보내드릴게요, 그런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멋모르고 그런 거지만.(웃음) 지금 예고편 음악은 아예 분리돼 마케팅의 영역이 됐다.
김: 예고편 음악을 했을 때 예산이 편당 800~1000만 원 정도로, 마케팅 비용이라 그런지 본편 음악 예산보다 훨씬 많았다. 라이브러리 음악도 비싸면 1400~1500만 원인데, 거기에 아낌없이 쓰고 본편에 적게 쓰니 비중이 뒤바뀌었달까. 마케팅이 굉장히 중요해진 거다. 스태프 인건비는 10년 전과 같은데. <홍길동> 본편 음악은 1980년대 할리우드 느낌으로 작업하고, 그중 20분 정도는 스필버그의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2015)를 작업한 미국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예고편 음악은 기존 탐정영화 풍으로 완전히 다르다. 마케팅 측면에서 얼마나 고민했을지 알기에 그런 식의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보지만, 아쉽긴 하다.
영화음악 작업 환경의 변화
심: 미국에서 녹음한 부분은 오케스트라 음악인가? (김: 그렇다.) 영화음악 작업을 위해 체코나 유럽 쪽에 많이 가고 미국에는 덜 가는 것 같던데.
이: <쎄시봉>(2014) 때 미국에 가긴 했다. 미국은 인건비가 좀 비싸다 보니 비용이 거의 체코의 2배라고 보면 된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풀 스케일이 필요한 경우라면 적은 비용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체코가 좋다. <쎄시봉>은 퀄리티 있게만 나오면 됐으니까 미국으로 갔다. 황당하지만, 우리나라에는 25명이 들어갈 수 있는 녹음실이 없다. 가요계에서도 주로 컴퓨터나 가상 악기로 작업하고, 실제 악기로 연주하는 경우가 줄다 보니 많은 녹음실이 문을 닫았다. 영화음악에 요구되는 질은 높아져서 오케스트라를 많이 쓰는데, 국내에서는 녹음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다 보니 외국으로 더 많이 가게 된다.
김: 그래서 국내에서는 빈 학교 강당이나 도자기 공장 같은 곳을 알아봐서 어렵게 녹음하곤 한다. 게다가 음악팀과 믹싱팀의 협업도 쉽지 않다. 믹싱팀과 친하지 않았던 초반에는 음악 볼륨 레벨 때문에 싸우기도 했다. 한스 짐머 측 스태프에게 메일로 물은 적이 있는데, 그 팀은 믹싱팀과 음악팀이 늘 세트로 움직인다고 했다. 처음부터 협업해서 사운드 디자인을 한다더라.
심: 그래도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셈이다. 명필름 창립작인 <코르셋>(1996) 작업 당시 영화진흥공사에서 믹싱을 했는데, 이틀 동안 다 해야 했다. 조정실에 믹싱 기사님이 있고, <코르셋> 음악감독님의 기타 연주와 준비해 간 CD 음악을 사운드트랙에 입히는데, 35mm 필름 시절이라 도중에 앞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두 번 하면 끝난다. “음악 하나만 더 넣어 주세요”, “사운드 볼륨 좀 키워 주세요” 하고 정말 빌다시피 하면서 했는데, 나중엔 기사님이 한숨 쉬는 게 들렸다.(웃음)
이: 요즘엔 사운드도 음악도 너무 풍부하다. 많아서 고민인 거지. 잠깐의 공백도 참지 못한다고 할까. 황: 얘기가 나온 김에 돌아보면, 대략 1997년 <접속>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이하 OST)의 기록적인 성공을 전후로 영화음악의 작업 환경이나 시장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심: 사운드 디자인의 개념이 도입된 게 1995년? 김석원 감독님이 블루캡 스튜디오를 만들고 우노필름의 <돈을 갖고 튀어라>(1995)를 했던 즈음부터였을 거다. 우노의 차승재 대표님, 명필름의 이은 대표님 등 그때 젊은 제작자들이 답답해했던 것 중 하나가 믹싱, 음악 등 후반작업 환경이었고, 그래서 후반작업 업체들도 생겨났던 것 같다. 당시 마케팅으로 영화 일을 시작했는데, <코르셋>도 그랬지만 로맨틱코미디나 코믹멜로물이 대부분이던 시절이었다. 영화음악은 본편에 들어가는 스코어라기보다 예고편에서 주목을 끌 수 있는 노래 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다. <비 오는 날 수채화>(1989) OST처럼. <접속>은 소재 자체가 음악과 선곡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영화였다. 최만식 음악감독님이 작업하신 부분도 있고, 선곡은 별도의 영역인 것 같아 조영욱 음악감독님께 부탁했다. <접속> 덕분에 저작권에 대해 많이 배웠다. 저작인접권이라는 게 곡당 네다섯 군데로 나뉘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고, 저작권자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 수십 군데를 이리저리 찌르고 그랬다. 톰 웨이츠한테 50만 원에 곡 좀 쓰자고 팩스도 보내고.(웃음)
이: <접속> 이후로 OST 붐이 일어나고,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에 처음 참여하면서 영화음악이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 이어서 <반칙왕>(2000)도 했고. 요즘은 영상을 파일로 받지만, 그때만 해도 비디오테이프로 받아서 작업하느라 진짜 불편했다.(웃음) 비디오테이프가 오면 컨버팅(변환)해서 작은 모니터 화면에 띄워 놓고 작업했는데, 그 장비가 비쌌다.
김: 너무 비싸서 못 샀다. 그래서 거실 TV에 비디오테이프를 틀고, 거울을 설치해 그 영상을 내가 작업하는 방에서 볼 수 있게 하고는 왔다 갔다 하며 싱크를 맞추기도 했다.(웃음) <챔피언>(2002) 예고편을 그렇게 작업했다.
‘이해’는 ‘답’이 된다
황: 여러모로 작업 환경이 개선된 지금, 영화음악 작업을 하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은 무엇인가.
이: 작업 시간을 별로 안 주는 것?(웃음) 예전에는 후반작업에 4개월을 줬다면, 요즘은 그 절반 정도 주는 것 같다. 기준은 자꾸 높아져서 거의 오케스트라 퀄리티로 해야 하는데, 혼자 작업할 수 없을 만큼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
김: 더구나 지금은 고치는 게 너무 쉬워졌다. 감독님들이 욕심을 부리면, 거의 최종 믹싱 전까지도 편집이 바뀔 수 있다. 모니터 시사 개념이 생겨서 1, 2차 시사를 할 때마다 편집이 바뀌기도 하니, 3개월도 행복한 정도다. 어떤 영화는 1주일 만에 작업한 적도 있다.
이: 또, 상업적인 부분을 생각하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렵다. 투자자들의 입김이 세니 감독들도 기가 많이 죽어 있고. 처음에는 새로운 영화음악에 대한 꿈도 있었는데, 이제는 다들 할리우드나 어떤 유행을 좇기 바쁘다. 보통 장르에 따라 익숙한 스타일의 음악이 나오면 좋아하고, 그래서 기존 참고 자료를 많이 준다. 결국 음악감독의 역할이 참고 자료를 토대로 익숙한 음악을 만드는 정도에서 그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김: 편집실에서 편집본에 기존 음악을 깔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을 때 음악감독이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진다. 투자사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제작사도 눈치를 보게 되니, 투자사에 보일 편집본에 어떤 음악이든 넣어 달라고 요청하곤 한다. 참고용 음악을 넣은 편집본으로 모니터 시사를 하고, 감독도 투자사도 거기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음악감독에게 작업이 넘어오니 결국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과 비슷해지는 측면이 있다. <검은 사제들>(2015)이나 <홍길동>은 선례가 없는 영화들이라 비교적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았던 경우다. 영화가 상품화되고 제작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창작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저예산 독립영화 작업은 ‘힐링’이 되기도 한다.
심: 많이 듣는 얘기인데 직접 경험해보진 않은 것 같다. 한국영화가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되면서 실제 창작에 대한 배려는 더 없어지고, 기술적인 부분만 중요시되는 게 아닌가 싶다. 촬영, 미술 등은 제작 과정에서 논의할 수 있지만, 영화음악은 후반작업이다 보니 특히 감독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연출은 혼자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스태프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고 조합하는 거니까. 음악감독을 택할 때도 그 성향과 장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사전에 궁합을 맞추지 못하거나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감독이 자신의 영화나 음악에 대한 생각을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데, 다른 부분에 비해 음악은 그저 맡겨 버릴 때가 많다. 맡길 거면 아예 맡기든가, 그렇지 않고 나중에 “이게 아니었다” 하면 주도권이 투자자에게 갈 수밖에 없다.
이: 내가 같이 작업했던 감독님들은 음악을 잘 알았던 것 같다.(웃음) 사실 어떤 음악이 맞는다고 해도 감독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생각이 너무 다르거나 이해가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뭘 제시해도 모르겠다며 알아서 해달라는 경우가 제일 어렵긴 하다. 그래도 감독이 감성적으로 뭔가 아닌 것 같다고 할 때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답은 감독에게 있다. 찾아가는 길을 잘 설명하지 못하면, 술을 마시든 대화를 하든 감독의 감성을 알아가야 한다. 영화와 인물을 가장 잘 아는 건 감독이니까. <해어화>(2015)의 박흥식 감독님은 젊은 감성이랄까. 필모그래피를 보면 동화적인 것도 있고, 결국 그런 코드에서 실마리를 찾게 된다.
김: 가끔 감독님들이 저 악기보다 이 악기가 낫지 않느냐는 식으로 얘기할 땐 좀 힘들다. 사실 음악은 하나의 악기가 바뀌면 다른 것도 다 바뀐다. 이 장면의 연출 의도는, 감정은 어떤 거라고 얘기해 주면 좋은데, 세세하게 들어가면 망가지는 지름길이다. 한편 영화음악을 공부하는 친구들의 경우, 좋다는 영화음악을 찾아 음악만 듣곤 하는데 그게 영상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 음악이 영상에 붙었을 때 결이 어떤지, 어떻게 해석을 할지가 중요한 거라 영화를 많이 본 친구들이 잘하더라.
크레딧의 회복이 필요한 순간
황: 규모나 장르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상업성이 중요한 환경과 그에 따른 하향 평준화, 한국영화의 문제가 작업 과정에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럼에도 영화음악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이: 작업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내 스스로 답을 못 찾는 장면들이 있는데, 감독님이 아주 심상하게 툭 던진 말이 확 와 닿는 거다. 그대로 음악을 만들어 붙였는데 말이 된다 싶을 때 정말 즐겁다. 악기 10개가 들어간 스코어에서 감독이 2개를 빼달라고 하면, 음악감독이 보기엔 이상해도 그게 정답일 때가 있다. 감독은 그런 감성을 가진 사람이고, 뭔가 빠진 듯한 그런 음악을 필요로 하는 거다.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데도 느낌이 오고 음악으로 실현되는 순간, 그 맛에 한다는 생각이 든다.
김: 그 느낌에 속을 때도 있다.(일동 웃음) 감독님의 말에 설득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경험이 적을 때는 혹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끌려간 적도 있다. 하지만 편집본에서 뭔가 모호하고 아슬아슬하던 지점들이 음악을 넣었을 때 선명하게 완성되는 것을 보면 정말 설렌다. <명량>(2014)에서 이순신 장군의 억눌린 감정이 터져 나오고 출정할 때의 해방감이란…. 가끔 음악적으로 이상한데도 옳을 때, 뭔가 허술한데 영화에 정말 잘 맞아 떨어지거나 독특한 지점이 생겨날 때는 진짜 마법 같다. 영상에 음악이 얹히고, 그 마법이 일어났을 때는 진짜 쾌감을 느낀다. 그것 때문에, 그것을 붙들고, 그때의 설렘으로 영화음악을 하는 것 같다.
심: 애매한 얘기지만 결국 사람의 문제 같다. <빅 매치>(2014) 때 오케스트레이션을 쓰면서 일렉트로닉 록도 섞이는 음악을 오래 작업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헝가리에서 며칠 밤을 새우고 영국으로 믹싱하러 간 이지수 음악감독님을 괴롭히고, 블루캡 김석원 대표님과 마지막 날까지 밤새워 엔딩을 작업하고…. 결과적으로 퀄리티도 만족스러웠고, 정말 희열을 느꼈던 그날의 경험을 잊진 못하겠지만, 음악감독에게 전적으로 부담을 주게 되는 과정은 문제가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음악 편집, 믹싱 등의 역할이 세분화돼 있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한스 짐머 같은 사운드를 원하면서 일은 한두 사람에게 다 맡긴다. 다들 열정으로 해내고는 있는데, 원칙적인 얘기지만 원하는 규모에 맞는 예산과 작업 시간, 시스템이 필요하다.
김: 할리우드에서는 뮤직 에디터, 슈퍼바이저, 작곡가 등 별도의 크레딧이 있다. 근데 국내에서는 그걸 다 음악감독이란 명칭으로 묶다 보니, 정작 음악을 만든 창작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다른 사람 밑에서 음악만 만들어 납품하는 식으로 작업하다가 떠나가곤 한다. 뮤직 에디터는 누구고 작곡가는 누구고, 크레딧이 할리우드처럼 세분화되고 회복되면 창작자를 제대로 대우해주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을까.
황: 말씀하신 맥락의 유령 작곡가 사태가 지난해 불거지기도 했고, 영화음악 작업에서 협업과 창작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음악감독에게는 어떤 점이 작업 선택의 기준이 되는지.
김: 가장 중요한 건 신뢰 관계다. 나를 얼마나 원하고 신뢰하는가. 고민할 수 있을 때까지 고민하다가 작업하는 스타일이라 그런 신뢰 관계가 없으면 불안하다. 그리고 편집, 믹싱 등 스태프들이 궁합이 잘 맞는 분들인지 물어보는 편이다. 예전에는 시나리오 위주로 봤는데, 시나리오가 좋아도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걸 많이 봤다.
이: 시나리오를 읽고 결정하는 편이다. 좋은 스태프를 만나면 좋지만, 성향을 잘 모르니까 조언을 좀 듣는 정도다.
황: <즐거운 인생>(2007), <쎄시봉>, <해어화> 등 음악영화를 많이 하신 편인데?
이: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남 얘기 같지 않은 마음에 자꾸 하고 싶어진달까. 음악영화는 배우 캐스팅 이전부터 작업하기도 한다. 저작권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음악과 연기의 싱크도 중요해서 음악 장면은 콘티를 미리 짜야 완성도가 높아지니까. 이를테면 <쎄시봉>에서 트리오가 화음을 맞추는 장면이 있는데, 쇼트마다 음악 템포가 달라 사전 녹음도 하고 웃거나 멈추는 순간 하나하나까지 정확한 사전 콘티를 감독님과 같이 짜고 촬영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할 합리적 방법을 찾아야
황: 음악 저작권에 관련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와 영화계의 오랜 갈등이 올 초 일단 타결됐다. 영화음악의 공연사용료 지불을 주장했던 음저협이 패소하면서 음저협과 영화계의 영화음악저작권대책위원회가 ‘영화음악 저작권사용료에 대한 합의서’를 내놓았는데.
이: 보통 영화음악 예산은 전체 영화제작비 중 몇 %로 산정되는 걸로 알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대작은 5% 내외, 독립영화의 경우 2~3%,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될 때 영화음악이 공연된 것으로 인정하고 공연사용료를 지불한다. 음저협에서도 그걸 시도했고, 결국 어떤 영화가 제작되기 전에 만들어진 음악에 대해서는 공연권이 인정됐다. <해어화>에 쓰인 ‘목포의 눈물’은 개봉 스크린 수당 단가를 계산해 음저협에 지불하는 식이다. 음악감독의 창작 스코어는 영화제작비로 만들어지는 거라 공연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
김: 개봉관 스크린 수 500개를 기준으로, 공연사용료는 보통 곡당 1000만 원 정도 된다. 미국은 아예 처음 계약할 때부터 개런티로 해결한다고 알고 있다. 한스 짐머의 경우, 개런티가 40~50억 원이라고 하니까.
이: 사실 창작 스코어의 저작권에는 방송 쪽도 연관돼 있다. TV 프로그램에 영화음악이 엄청나게 쓰이는데, 창작자가 그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기는 어렵다. 방송국은 음저협에 연 단위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만, 협회에서 창작자들에게 제대로 분배하지 못하고 있다. 주제배(주제, 배경, 시그널) 용지에다 어느 프로그램에 어떤 곡이 몇 분 몇 초 나왔는지 써 내면 돈을 주겠다는데, 매일 방송을 모니터할 수도 없지 않나. 방송국에서 어떤 음악을 사용했는지 큐시트를 전달받으면 쉽게 해결될 텐데. OST 음반이 많이 나왔던 2000년 무렵 음악감독들의 피해가 컸는데,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더라.
김: 그것만 해결돼도 음악감독들의 형편이 훨씬 나아질 거다. 콘텐츠의 유통도 중요하지만 창작자들이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산업의 틀에서만 볼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그간 논의되어온 방향성은 맞는데, 어떻게 풀어갈지 합리적으로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 기성곡을 사용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뒤, 저작권자의 유족에게 실연자의 권리에 따른 비용을 요구받은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관련법이 없던 때라, 차라리 소송으로 가서 판결에 따르는 게 낫다는 조언을 들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원칙을 정하는 게 먼저인데, 결국 이권 싸움이 된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제작비가 오르고, 창작자들은 힘들게 작업했는데 이익 분배도 제대로 못 받고, 오히려 중간 관리자들만 돈을 버는 경우가 더 많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본질에 충실한, 원만한 해결책이 제시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