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이 흐른 뒤, 영화 <접속>과 접속하다!
유난히 연이 닿지 않는 만남이 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만남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장소와 순간에서 나를 급습해오기도 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닐 터다. 이런 타이밍은 비단 사람과의 만남에만 적용되는 룰은 아니다. 영화와도 그렇다. 특히 시골에서 자라 학창 시절 영화를 볼 기회가 많지 않던 내겐 연이 닿지 않아서 아쉬운 영화가 꽤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접속>(장윤현)이다. <접속>이 개봉한 1997년에 나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부터 서점에서 매달 영화잡지를 사서 내 방 벽에 영화포스터, 배우 사진들을 오려 붙이곤 했던 나는 아마도 그 무렵 <접속>의 리뷰 기사를 접하고 꼭 보게 해달라는 기도라도 했었나 보다. 이후로 TV에서 한석규와 전도연이 계단에서 서로를 지나쳐가는 장면을 볼 때마다, <접속>의 그 유명한 OST ‘A Lover’s Concerto’를 들을 때마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무의식적으로 ‘아, 저 영화 꼭 봐야 하는데’라는 반응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접속>도 어느샌가 소위 말하는 ‘옛날 영화’가 돼버렸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거의 없어져버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기억에서도 희미해졌던 듯하다. 그러던 작년 어느 날 EBS 한국영화 특선에서 <접속>을 방영해준다는 기사를 보게 됐는데, 그때도 내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 이 영화 꼭 봐야 하는데.’ 그래서 그 주 일요일 밤 11시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EBS로 채널을 돌렸다.
10대에 보고 싶었던 영화를 18년이나 흐른 30대에 접어들어 보게 된 나는 마치 중학교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15년이 지난 지금 난 더 이상 순수한 소녀가 아니었고,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종로 피카디리극장도 더 이상 영화의 메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PC통신에서 만나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대화만으로 사랑을 키우던 한석규와 전도연의 순수했던 사이버 러브가 지금은 키, 나이, 얼굴, 직업, 학벌, 사는 곳 등을 주고받은 후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만나는 즉석 소개팅 앱으로 대체되었다. 개봉 당시 <접속>을 본 관객들처럼 영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여러 상황이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후 나는 오히려 지금이 영화와 만나게 된 것에 안도했다. 낭만이 사라진 현대인들의 만남에서 ‘조건’이란 절대적인 요소다. <접속>에서 한석규와 전도연은 서로의 ‘조건’ ‘얼굴’도 모른 채 사랑에 빠졌지만, 요즘엔 ‘조건’과 ‘얼굴’을 모른 상태에서의 만남은 시간 낭비라 치부돼 성사조차 되지 않는다.
각양각색의 소개팅 앱이 성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과 사랑마저 인스턴트가 돼버린 요즘 한석규와 전도연이 몇 번의 엇갈림 속에서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만나게 되는 엔딩을 그린 이 영화가 주는 낭만과 메시지는 곱씹어볼 만하다. 영화 속에서 수현이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만날 사람은 반드시 다시 만난다”고.
by.최정원(방송작가, <힐링캠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