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극장에서 사춘기의 눈을 뜨다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 관람을 하러 간다고 했다. 영화 관람이 그 나름의 ‘고급 엔터테인먼트’로 분류되던 시절이기도 했고, 어찌 됐든 평일에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환호케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왜 이런 행사를 했는지 의아하긴 한데, 당시의 척박한 문화 환경에서 학생들의 정서 함양을 위한 나름의 방편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초등학생(당시엔 국민학생으로 불렸지만) 시절에 중학생 형과 누나들에게 들었던 ‘학교 단체 관람’에 선정된 영화들은 대략 <미션> <킬링필드> 같은 영화였다. 물론 매우 좋은 영화들이긴 하지만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할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어찌 됐든 덕분에 그 두 작품은 국내 개봉 당시 천문학적인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각설하고, 중학생 시절 드디어 나도 학교에서 진행하는 극장 단체 관람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잠실과 천호동 사이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내 기억이 맞다면) 천호동의 천호극장으로 단체 관람을 가게 되었다. 평소 성인영화를 많이 틀어주던 그곳에서 과연 어떤 영화를 보여주려 하는 걸까 내심 궁금하던 찰나, 극장 앞에 당도하니 간판에 이런 글자가 커다랗게 써 있었다. ‘경찰’ 그리고 ‘학교’. 그러니까 학교 측의 생각인즉슨 범죄자를 엄중히 처벌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경찰’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로 가득한 ‘학교’라는 초(超) 건전한 두 가지 소재가 만난 영화이므로 학생들에게 교육적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선정한 것 같다. 그렇게 우리 학교 전교생은 동시상영관 천호극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섹시코믹영화 <폴리스 아카데미>를 보았다.
극장 안에 들어가자마자 콧속으로 흡 하고 들어오는 오징어의 비릿한 냄새 안에서 우리는 초글래머 여자 경찰조교들과 끊임없이 생성되는 테스토스테론을 주체하지 못하는 신입 경찰지망생들의 좌충우돌 ‘썸’ 이야기를 숨죽이며 보았다. 아마 그날 이 영화를 단체 관람 작품으로 선정한 (아마도 제목만 보고 영화를 선정했을)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에게 시말서를 썼음이 분명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3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를 기억하고 선생님의 혜안을 칭송하는 학생이 있음을 아신다면, 흐뭇하게 미소 지으실 것이 분명하다.
by.김양수(<생활의 참견> 웹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