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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김기덕을 말하다 ② - 이석기 촬영감독
내가 김기덕 감독님을 처음 만난 것은 고영남 감독과 함께 작업할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김 감독님과 고 감독은 사제지간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였는데, 당시 극동영화사 전속감독이셨던 김 감독님이 다른 영화를 촬영 중인 나를 보시곤 고 감독께 “저 젊은 촬영기사 나한테 양보 좀 하라”고 부탁하셨다 한다.
그렇게 김 감독님과 연을 맺고 <동과 서>(1971), <결혼반지>(1972), <꽃상여>(1974), <가수왕>(1975)을 함께 작업했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꽃상여>다. 대단히 뜻있는 작품인데, 촉박한 제작 기간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사가 허가제로 운영되던 시절, 연간 몇 편 이상의 우수영화를 제작해 외화 수입 쿼터를 확보해야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제작과정에서의 합은 잘 맞았다. 김기덕 감독님은 작품에 대한 선명한 마스터플랜을 갖고 제작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걸출한 연출자였다. 작품의 색깔과 방향 제시가 분명했기 때문에 나 또한 연출자가 의도한 장면 장면의 감정을 헤아리고 영상을 구현할 수 있었다.
흔히들 그런 것을 연출자와의 호흡이라 일컫는다. 이렇게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가는 작품은 깊이 있는 좋은 영화로 완성된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호흡을 맞춰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애정까지 공유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촬영이 없는 날에도 감독님과 만나 작품에 대한 논의도 하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술자리를 갖곤 했다. 지금도 감독님이 뵙고 싶을 때는 술자리로 초대한다. 술 한잔 걸치시면 늘 “많은 촬영기사와 함께 일해봤지만, 당신의 창의력을 진심으로 존중한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때마다 새삼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만희, 김수용, 김기덕 세 감독님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계를 이끈 ‘감독 트로이카’였다. 당시 이 세 분의 역할이 오늘날 한국영화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 분의 감독님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음을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만희 감독님께서는 작고하셨지만, 언제나 두 감독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하고 있다.
by.
이석기(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