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OVO CINEMA PARADISO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영등포. 엄연히 서울이지만, 4대문 안이거나 4대문 근처는 아니다.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 서울 끝자락 시흥시와 경기도 시흥군을 거쳐 충청도를 누빈 후 초등학교 6학년 때 정착한 곳이 안양. 이렇게 변두리만 돌아다닌 탓에 서울 도심 개봉관에서 영화를 보는 호사는 대학 입학 이후에야 누릴 수 있었다.
사실 중고등학생 시절 극장 스토리는 너무나 뻔해 특별한 게 없다. 누구나 그렇듯 학생 단체관람으로 극장을 가거나 방학을 노려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을 때맞춰 보는 게 전부였다. 몇몇은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를 쉽게 보곤 했다. 그게 부러웠던가. 글쎄… 그네들은 (공부)벌레가 되기 직전의 나와 내 주변 친구들과는 달리 너무나 빨리 세상을 경험하고 있던 터라 그걸 부러워하진 않았을 게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붙은 야한 영화 포스터를 보는 걸로 만족했을 게다. 당시 안양 시내에 극장은 세 곳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단체관람 영화 상영 덕분에 들어가본 삼원극장, 그리고 만화영화를 보러 갔던 안양극장이었던가? 항상 성인영화를 상영했다고 기억되는 안양여고 근처 화단극장은 가본 적이 없다.
화단극장 포스터만 보고 군침만 흘리던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여기저기 변두리를 돌며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남영동 성남극장에서 본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 <마타 하리>는 지금도 기억난다. 해적 음반을 사러 자주 갔던 세운상가의 육교 옆 아세아극장도 성인영화 때문에 종종 들렀다. 문학과 음악에 비해 영화에 대한 열정이 비교적 약했던 나는 이내 극장 순례를 멈췄다. 한남동 순천향병원 근처 지하에 있던 한남극장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한남극장은 당시 흔했던 아주 작은, 퀴퀴한, 눅눅한, 단정하지 않은, 야한, 그런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동시상영관이었다. 싼값에 영화 두 편이었다. 게다가 시력이 좋지 않아도 스크린이 워낙 가까워 자막을 읽지 못할 일도 없었다. 당시 한남극장에서 본 여러 영화 가운데 지금도 나의 베스트 영화 가운데 하나인 <베티 블루 37°2>를 만난 건 지금 생각해도 행운이다. 난 <베티 블루>를 글쓰기 또는 글을 쓰는 사람에 관한 편집증, 강박관념, 집착과 집념의 영화라고 본다(몇 년 뒤에 개봉한 <미저리> 역시 같은 의미에서 나의 베스트 영화다.
그러고 보면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화단극장은 영화관에 대한 추억의 근원인지도 모르겠다. 한남극장은 나의 ‘누오보 치네마 파라디조’인 셈이고.
by.한경석(팝음악 전문 매거진 비굿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