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십자로>로 보는 1930년대 실제 경성: 소비와 유희, 변화와 유행의 신천지
1934년에 개봉한 <청춘의 십자로>(안종화)는 근대 초입의 서울, 경성의 모습을 꽤 많이 담았다. 염천교와 경성역을 비롯해 미쓰코시백화점, 능동(군자리)에 설립된 골프장과 클럽하우스, 종로2가의 다치노미집 등 1930년대 초반 경성에 있던 근대적 소비와 여가 장소를 두루 섭렵했다. 아울러 한강 뚝섬 경치가 보이는 봉은사(奉恩寺) 입구, 한강철교가 보이는 중지도(中之島), 어정(御井)이 있는 선릉(宣陵) 주변의 능말(능 마을) 등 한강 주변과 한강 남쪽-당시에는 경기도에 속한 지역-의 유람지도 찾아갔다. 뚝섬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면 닿는 봉은사 주변은 당시 뚝섬과 더불어 경성부민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유오지였다.
염천교와 경성역
기차가 레일을 따라 염천교 아래를 지나 경성역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청춘의 십자로>가 시작된다. 영화의 남주인공 영복(이원용)이 고향에서 올라와 수하물 운반원으로 일하는 곳이 경성역이며 그가 사귀게 되는 처녀 영희(김연실)가 주유원으로 일하는 주유소 역시 경성역 광장 남쪽에 있다. 경성역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수도 경성의 관문이자 근대 문물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경성역의 역사(歷史)는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출발점인 경인선의 개통과 함께 시작됐다. 경인선은 1899년(광무 3) 9월 일본인이 운영하는 경인철도합자회사에 의해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33.2km 구간의 개통을 시작으로 1900년 8월 한강철교를 개통하면서 남대문역까지 노선을 운행하게 됐다. 이 구간의 개통과 함께 1900년 염천교 아래에 10평짜리 목조건물인 남대문 정거장을 세운 것이 경성역의 시초가 된다. 그 후 1905년(광무 9)에 경부선을 시작으로 1906년 경의선, 뒤이어 1914년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이곳은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인구 증가로 역사의 기능이 확대되자 1920년에 새 역사 신축이 논의되기에 이른다. 이때 역사 설립을 주관한 업체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蠻洲鐵道株式會社)-‘만철(滿鐵)’이었다. 경성역은 1922년 착공되어 1925년 준공됐다. 경성역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대지 면적 70,083평 연면적 2,006평으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여서 일본의 도쿄역사와 더불어 동양 역사(驛舍)의 1, 2위를 다툴 만한 규모였다. 준공 무렵 경성역이 보유한 차량은 증기기관차와 객차, 화차를 포함해 38량이었으며 역사 앞에는 지금의 택시처럼 인력거가 줄지어 있었다고 한다. 긴 플랫폼과 대리석이 깔린 넓은 대합실 및 카페 등을 갖춘 경성역사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사랑을 받던 장소였다. 광복 이후 1947년에 현재의 역명인 서울역으로 개명했다.
염천교 아래에는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기찻길이 있었으며 그 위로 사람들이 통행했다. 염천교는 염상섭(廉想涉)의 소설 「삼대」에도 등장한다. “이 문을 열어주고 이리로 나가라는 데에 좀 이상한 듯이 주인아씨의 얼굴을 치어다보았으나 하라는 대로 그리 나와서 전찻길로 빠져 염천교 다리로 향하여 꼬불꼬불 걸어갔다.”
능동(陵洞/군자리) 골프장과 클럽하우스
영복의 여동생 영옥이 경성에서 개철 일행에 넘어가 함께 골프를 치고 머무는 장소는 능동(군자리) 골프장과 부속 클럽하우스다. 군자리(오늘날 어린이대공원 위치) 골프장은 1929년 개장했다. 그곳은 원래 조선 왕실의 능 자리였으나 영친왕 이은(李垠)이 경성골프구락부의 명예총재가 되면서 이를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골프장 건설비로 거액을 하사함으로써 골프장 시공이 시작됐다. 경성골프구락부는 친일단체로, 내선융합과 상호친목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1921년 11월 10일 발족한 단체로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와 조선 내 일본인 부호들이 중심이 되었고, 조선인으로는 친일파 귀족 및 대지주, 매판자본가, 친일 관료 등이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1927년 6월 11일 군자리 코스가 착공되어 1929년 6월 22일에 완성되었는데 골프장 안에는 클럽하우스가 설립되어 휴식과 숙박이 가능했다. 광복 후 한양컨트리클럽으로 변했다.
종로2가 선술집 다치노미집
카페에서 여자를 꼬시고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노는 허랑방탕한 상류층 개철 일행과 대조적으로 수하물 운반원인 영복은 선술집-다치노미집에서 동료들과 어울린다. 다치노미(立(たち)飲(の)み)집은 주로 종로2가에 많이 있던 선술집인데 일본말 뜻대로 ‘서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집’으로 가난한 노동자들이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찾는 장소였다. 영화에서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시집을 가야 한다는 계순의 편지를 받은 영복이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자 다치노미집에서 술을 마신다. 종로2가 국일관 뒤편에 밀집해 있었으며 광복 후 1950년대까지 인기가 있었으나 1970년대에 사라졌다.
미쓰코시백화점
주유원 일을 그만둔 영희는 어느 건물 벽에 붙은 구인광고(“식당부에서 십오세에서 십팔세 사이의 여급사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던 중 우연히 영옥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 차와 음식을 파는 곳에 간다. 이 장소는 1930년대 초반 경성에서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 미쓰코시백화점 그릴-양식당(洋食堂)이다. 미쓰코시백화점은 1904년 일본에서 최초로 개점한 백화점이며 주로 의류를 판매하는 상점이었다. 1905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의 권유를 받고 조선에 진출했다. 1906년 서울 명동(당시 혼마치)에 임시출장소를 개설했다가 1916년 미쓰코시오복점(三越吳服店)이라는 상호로 본격적인 영업을 개시했으며 일본인들이 주로 상업 지역을 형성한 혼마치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1929년 미쓰코시백화점이라는 상호로 영업을 했으며 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인 고객도 많았다. 당시 미쓰코시백화점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기존 상가와 확연히 달랐으며 경성 모던걸들의 소비 및 사치 풍조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논평이나 만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소였다. 현재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전신이다.
by.최종현(통의도시연구소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