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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재현 ①:<암살>의 미술 콘셉트
1933년 경성과 상하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암살>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트를 지어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규모보다도 치열한 전투의 현장과 화려한 경성의 거리, 1930년대의 시대상을 완벽히 구현해낸 것에 더욱 의미가 있다. <암살> 속 경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 미쓰코시백화점 내부
영화 내에서 상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공간인 백화점은 미술팀에게 큰 도전이었다. 안옥윤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며 오로지 조국의 해방만을 꿈꾸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경성 땅을 밟고 자본주의와 식민지 문화정책의 심장이었던 화려한 미쓰코시백화점(현 명동의 신세계백화점)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그야말로 옥윤과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초현실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일제가 우리에게 심어준 모던과 자본의 환상, 식민지의 실상을 망각하게 하는 화려한 공간, 강인국과 같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걸고 얻고 싶은 부와 권력의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2차 액션 신이 이곳의 1층과 2층에서 벌어진다. 도저히 깰 수 없는 강적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디자인할 때 이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총을 갈기며 저항하던 속사포와 안옥윤을 늘 생각했다. 일차적으로는 백화점이라는 압도적인 현존이 관객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의 공간으로 보이길 원했지만, 이차적으로는 속사포와 옥윤이 겨누는 총구가 일제가 선사하는 악의 현신, 너무나 달콤한 악의 다른 모습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당시에 존재했다.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세일, 패션쇼, 미술 전시회도 열리곤 했다. 고증 자료에 기반을 두고 조금 더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당시 사람들이 느끼던 감정이 현재의 관객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랐다.
2. 연회장(백화점 2층)
미쓰코시백화점 2층의 결혼식 연회장은 실제 백화점과는 따로 만들어졌다. 서양식, 특히 프랑스풍 양식과 일본 양식을 조합한 디자인이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간은 오히려 백화점 1층보다 길고 결혼식 진행 장면과 총격 장면이 진행되는 중요한 곳으로,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위용 있는 공간이어야 했다. 동시에 정교한 총격 신을 치를 수 있도록 액션에서 요구되는 동선과 특수 재료들로 만든 기둥이나 화분, 파티션 등을 먼저 배치한 다음에 디자인된, 물리적 기능에 더 충실해야 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뿐 아니라 소품과 음식 역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디자인됐고, 군복이나 신사복, 기모노 등의 의상이 디테일과 화려함을 더했다.
3.가솔린 거리
고양시에 지은 가솔린 가게를 포함한 5개의 거리 세트로 4100평 규모의 오픈 세트다. 서소문과 동대문 거리, 경성과 지방도시의 모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지만 고증 자료를 모으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당시 서민들의 거리를 최대한 재현하려 노력했다. 서민들이 상권을 이루고 복닥복닥 모여 살아가는 정서적인 공간으로 비치길 바랐다. 시장이 있고, 뒷골목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약국, 세탁소, 짚신과 고무신과 양구두가 함께 존재하고, 멋쟁이 양식 모자와 갓을 고쳐주는 사람이 공존하는, 한국・일본・중국・서구 양식이 뒤섞여 나름대로 조화롭게 어우러진 생동하는 공간 말이다. 세트 디자인도 어려웠지만 간판, 전단지, 유리에 새긴 글자들 하나하나의 그래픽이 큰 성과를 이뤄낸 것 같다. 흑백 신문에서 가져온 작은 광고 그래픽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야말로 모든 디테일을 살려준 미술팀과 소품팀의 공이 크다.
4. 미쓰코시백화점 외관 거리
가장 많은 자료 조사를 거쳐 영화의 모든 세트 중 가장 먼저 디자인을 시작한 공간이다. 이곳의 풍경이 크게 윤곽이 잡혀야 나머지 공간들도 디자인할 수 있는, 경성의 심장부와 같은 공간이다. 이곳은 최대한 고증에 기초해 디자인했다. 하지만 전체 세트가 너무나 방대해서 중국의 오픈 세트를 약간 수정하고, CG의 도움을 받아 영화 속의 모습이 완성됐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경성의 주요 공간이기에 최대한 주요 건물들의 자리를 지키면서 디자인했고, 옥윤이 처음 백화점에 등장할 때와 결혼식, 이후의 총격 신에서 큰 규모로 볼 수 있다.
5.명치정 거리의 아네모네 카페
지금의 명동 거리인 이곳은 벚꽃처럼 휘어진 가로등이 인상적으로,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이 모여드는 문화 공간이었다. 영화관, 카페, 레코드점 등 다양한 상점이 밀집되어 있으며, 밤에는 환락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한식과 일본식, 서양식의 조합에 역시 신경을 썼고 공간 하나하나에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데코레이션과 그래픽에 공을 들였다.
by.
류성희(<암살>미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