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신림극장의 잉여쌍웅
극장이나 가자.” 누군가 하숙방의 문을 벌컥 열며 말했고, 우리는 꿈지럭대며 양말을 꿰신었다. “그런데 무슨 영화?” 불려나온 우리는 물론 불러낸 녀석도 알지 못했다. 그건 극장이 알아서 정해줬다. 다행히 두 편씩이었다.
25년 전, 일요일의 대학생들은 심심했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었다. 스펙 쌓기 같은 건 모르던 시절이었고, 무엇보다 놀 거리가 없었다. 하숙집의 TV는 지상파 채널 몇 개가 전부였다. 스마트폰, 인터넷은커녕 컴퓨터도 없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건축학 개론> 같은 연애쟁이들은 아침부터 로션을 바르며 부산을 떨었겠지. 하지만 너절한 솔로들은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 백과나 뒤적이는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아쉬움이 쌓이는 소리/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
영화관은 그런 청춘의 시간을 지워주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선택지는 둘이었는데, 양쪽 다 이본 동시상영극장이었다. 가까운 미림극장은 작고 음침했고, 싸구려 에로와 철 지난 영화가 주요 레퍼토리였다. 신림극장은 걸어갈지 버스를 탈지 고민할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래도 크고 쾌적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2층식 대형 극장이었다. 좌우로 넓은 스크린에, 아래층과 위층은 내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전철역에 가까워 데이트하는 커플이나 가족 관객들도 있었다. 상영작도 둘 중 하나는 개봉관에서 갓 내려온 쓸 만한 영화였다. 하숙집의 단체 관람 장소는 보통 신림극장이었다.
그런데 잠깐. 우리에게도 취향은 있었다. 막상 극장 앞에 가서도, 간판에 그려진 페인트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영화표를 끊지 않았다. 차라리 근처 순대 타운에 가서 몸보신하는 쪽을 택했다. 그날 눈에 들어온 영화는 <오피셜 스토리>였다. 마침 학생회 선배가 꼭 보라고 한 작품이었다.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 치하에서 벌어진 가족사의 비극을 다룬 영화. 그 정도면 우리의 눈높이를 채우고도 넘쳤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또 다른 상영작인 홍콩영화가 방금 시작한 터였다. “할 수 없지. 시간이나 때우자.” 두 시간 뒤, 우리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극장을 나섰다. <오피셜 스토리>를 볼 기분이 아니었다. 왜냐고? 먼저 본 그 영화가 <첩혈쌍웅>이었거든. 우리는 터덜터덜 걷다가 복개되기 전의 도림천 둑에 앉았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에 불을 붙여 필터까지 타 들어가도록 들고 있었다. 손가락은 덜덜 떨렸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by.이명석(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