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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명작을 디지털로 만나보세요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해 <하녀>(김기영, 1960)와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에 이어, 올해에도 블루레이를 출시한다(본지 ‘KOFA Report’ 참고). 금년에도 2편이 출시될 예정인데, 그중 하나가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로 평가되는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이다. 이 작품은 우리 원이 지난 2006년과 2014년, 전문가 의견을 모아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에서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원 보존기술센터는 이 영화의 블루레이 출시에 앞서 디지털 복원을 완료(총 110분)했는데, 그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별들의 고향> 디지털 복원 과정
영상자료원은 <별들의 고향>의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 1벌, 상영용 프린트 필름 2벌을 소장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은 1974년 제작되어, 1979년에 화천공사로부터 위탁받아 그동안의 디지털 심화 복원작들과 비교했을 때 상태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보통 납본제가 도입되기 전 고전영화(필름)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 영상자료원에 수집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별들의 고향>은 비교적 신속하게 수집되어 적정 환경에서 보존되었고 외부 환경에 노출된 시간이 적어 필름의 화면뿐 아니라 물리적인 상태가 양호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복원작업에 앞서 보존 중인 3벌의 필름을 정밀 확인하면서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이 이번 디지털 복원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판본이라고 판단해 이 필름(ON)으로 복원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작업을 시작하기 전, 전체 영상을 미리보기로 보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일부 필름의 맨 처음과 끝부분의 색감이 다른 부분에 비해 이질적이고 영상과 자막의 위치가 따로 움직이는 등 다른 영상에 비해 화질이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1970년대 제작 당시 배경화면을 담은 네거티브 필름과 별도로 자막 필름(크레딧 부분)을 따로 인화해 상영용 필름을 제작할 때 둘을 합성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제작 후 (어떤 이유로) 자막 필름과 원 필름을 합성한 듀프 네거티브 필름을 제작해 원 필름 롤을 대체한 것으로 추측된다. 혹은 소장 필름 중 독어 자막 프린트 필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해외 영화제 출품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합성 이전의 원본 필름들이 계속 보존되어왔다면 디지털 기술로 이들을 합성해 더 좋은 품질의 화면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복원하는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본의 아우라를 지키되 색감은 더 유려하게
디지털 복원은 픽셀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업량이 많아질수록 이에 비례해 화질은 매끈하게 보일 수는 있으나 원본의 아우라와 달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작업해야 한다. 따라서 복원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업 범위를 미리 설정해두는 것이 좋은데, 앞서 언급했듯, <별들의 고향>은 원본 영상의 화질이 기존에 영상자료원에서 디지털 심화복원을 수행한 작품들에 비해 양호한 편이고 먼지 외에는 필름에 큰 훼손이 없어 먼지 제거를 중심으로 일부 스크래치나 찢어진 프레임을 정리하는 수준으로 복원 작업의 범위를 설정했다.
이렇게 복원 작업을 마치면 다음으로 디지털 색 재현을 실시한다. 이 단계에서 제작 당시 색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해당 영화 촬영감독의 의견을 듣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의 촬영을 담당한 장석준 촬영감독(1935~1980)이 작고했기에, 이장호 감독의 도움을 받았다. 이장호 감독은 촬영 당시 조명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해 어두운 장면 묘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점을 감안, 이 부분을 최대한 개선해주기를 원했고, 우리는 원작의 느낌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독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별들의 고향>의 디지털 복원이 완료되었다. 이번 복원을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색의 어른거림 현상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손상을 복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손상 상태를 ‘Color breathing’이라고 하는데 프레임별로 미묘한 색 차이로 인해 마치 색이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인으로는 현상 단계에서 현상 약품과 필름의 화학반응이 일정치 못했거나 보관 시 유제층이 서서히 변색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특수한 형태의 복원 손상은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론을 연구하고 테스트해 해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수많은 고전영화의 디지털 복원을 진행해오면서, 내 손을 거쳐 복원되는 영화의 편수가 늘어날수록 훼손 패턴과 이에 대한 복원 방식에 관해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함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작품이 디지털 복원을 통해 일반에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영상자료원의 디지털 복원 사업은 언제나 ‘아키비스트적 관점’의 복원 품질과 ‘공공재적 관점’의 생산성의 기로에 서 있다. 아마도 이러한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by.
이선미(한국영상자료원 보존기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