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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남미 진출 현황과 시사점
현재 중남미에서 한국영화를 소비하는 주 관객은 아시아영화 팬과 케이팝 팬이다. 아르헨티나와 페루를 중심으로 한국영화가 꾸준히 소개되고 있는데, 아직은 한국영화의 인지도나 위상이 유럽을 비롯한 타 국가의 영화만큼 높지는 않다. 한국영화가 남미 시장을 돌파할 방법은 무엇일까?
한국영화 중남미 진출의 시발점 <집으로>
남미 현지에서 영화 일을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영화 관련 키워드는 <집으로>, 박찬욱, 그리고 <괴물>이다. 이 중 <집으로>는 한국영화의 중남미 진출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 2003년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Mar del Plata IFF)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후 같은 해 10월 30일 개봉됐고, 이듬해 1월까지 약 두 달간 6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미화 15만 4952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다. 페루에서는 에우로필름(Eurofilms)을 통해 개봉했는데, 2010년까지 현지 케이블TV에서 재방영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이 영화의 대중화에는 시기가 큰 역할을 했는데, 1990년대 이후 중남미 국가들이 자유주의, 신자유주의를 거쳐 외자 유치를 통해 경제성장을 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에는 많은 젊은이가 직업을 갖기 위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더불어 가톨릭을 기본으로 하는 이 문화권에서 ‘가족’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집으로>는 이 향수를 강력하게 자극한, 공통의 역사적 경험을 소환한 영화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영화 소비층: 한류 팬, 아시아영화 팬
현재 중남미에서 한국영화를 소비하는 층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아시아영화 팬과 케이팝 팬이 그들이다. 각각의 소비 성향과 패턴이 달라 현지에서 한국영화의 현지화 가능성 역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둘 다 어려움이 있다. 중남미에 한국영화가 ‘공식적으로’ 들어오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 그전에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극장 개봉에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2013년 아르헨티나에서 ‘봉준호 감독 특별전’을 개최했는데, 당시 극장을 찾은 관람객 수는 전체 한국영화 팬의 10%가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지난 5년간 현지에서 실제 극장에 진출해 작게라도 성과를 거둔 작품들은 케이팝과는 거리가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현지 상업 극장에서 케이팝 팬들이 원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상영해줄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수입할 배급사는 현실적으로 딱 한 곳이 있다. 멕시코의 시네나우타(Cinenauta MX)로, 이곳은 라틴아메리카 한류 팬 숫자를 듣고 <콜드 아이즈>를 수입했다. 콜롬비아, 칠레, 페루 등에서 현지 배급사들과 협력해 개봉했으나 대표이사가 팬클럽 현장에서 느낀 열기만큼의 숫자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국가는 한류 팬이 중남미에서 가장 많고 적극적인 페루와 1998년부터 한국영화를 꾸준히 소개하고 수입하는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와 페루
아르헨티나는 1989년부터 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를 꾸준히 소개한 국가로, 현지 인지도와 상업적 결과에 비추어 순위를 꼽자면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1위다. 오리엔털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며 아르헨티나에서 15만 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든 한국영화다. 2위는 <다른나라에서>인데, 이 작품의 흥행 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이자벨 위페르가 나온다는 점, 두 번째로 홍상수 감독이 아르헨티나 영화인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 박스오피스의 지난 10년간 역사를 살펴보면 절반 이상은 할리우드영화였고, 2위는 아르헨티나 자국 영화, 3위는 프랑스영화다. 즉, 프랑스영화를 좋아하는 아르헨티나 관객에게 접근성이 높았다는 점과 홍상수 감독을 좋아하는 아르헨티나 영화인들의 발걸음이 관객 수를 4만 명까지 올렸다.
이에 비해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에서 매진 사태와 추가 상영 요청을 불러일으켜 현지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은 <괴물>은 관객 수 2만 명에 그쳐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문화적 이유가 있는데,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는 12월부터 2월까지가 도시에 사람이 없는 휴가철이다. 방학 직전에는 할리우드 영화가 상영관을 차지했을 테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한국영화로서는 좋은 상영 시기를 선택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스오피스 결과와는 별도로 <괴물>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고, 봉준호 감독 또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재미있으면서도 예술성이 높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
페루는 2006년 10월 22일 22시 TV Per (채널 7)의 <엘 플라세르 데 로스 오호스 El placer de los ojos>(직역: 눈의 즐거움)라는 공중파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당시 현지 극장 개봉 중이던 <올드보이 Hipnosis mortal>(10월 12일 개봉)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10월 19일 개봉)을 소개했다. 이후 2007년 3월 8일 <장화, 홍련>, 10월 25일 <빈 집>이 개봉되고 <장화, 홍련>은 TV Perú에서 방영되며 ‘한국영화=공포영화 혹은 예술영화’라는 인식이 생겼다. 2008년 크리스마스에 <괴물>이 개봉되어 이듬해 5월 2일까지 미화 약 6만 7537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2011년에는 <박쥐 Rito diab lico>가 12월 1일 개봉되며 미화 7만 6086달러로 연간 개봉 성과 163위를 기록했다. 2012년에는 ‘디지털한국영화제’가 주페루한국대사관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 아래 열려 9월 17일부터 5일간 총 5편의 영화 <식객> <과속스캔들> <맨발의 꿈> <7급 공무원> <워낭소리>가 관객들과 만났다. 2014년에는 멕시코 배급사 시네나우타(Cinenauta MX)에서 케이팝 팬을 겨냥한 <콜드 아이즈>를 개봉했다.
한국영화가 나아갈 길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서는 한국 관객이 자국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든다는 사실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국 영화계는 닿지 못할 이상향으로, 배우고 싶은 곳으로 현지 영화인들에게 소개된다. 특히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2012)은 아르헨티나 영화 <아내를 위한 남자친구 Un novio para mi mujer>의 리메이크 작품인데, 이후 현지에서도 한국영화를 리메이크하는 데 관심이 많다. 현지에서 관심을 갖는 작품을 한국에 몇 편 소개해봤지만 저렴한 판권료 탓에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브라질 정부는 자국 영화 수입사에 개봉 지원금을 주기도 하는데 한국에는 아직 이런 현지 상황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지 시장을 돌파할 방법은 공동제작일까, 리메이크일까? 그 무엇이든 아직은 한국영화의 인지도나 위상이 유럽이나 타 아시아 국가의 영화만큼 높지는 않다는 것, 여전히 한국영화 홍보가 더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무엇이든 시작해볼 수 있도록 서로 만날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하겠다.
by.
문성경(영화진흥위원회 중남미 주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