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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 다채널 시대,건강한 영화 생태계 유지가 선결 과제
2015년 10월 7일, 황동혁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수상한 그녀>(2014)가 일본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이 한국에도 전해졌다. CJ엔터테인먼트의 자료에 따르면, <수상한 그녀>는 이미 중국에서 <20세여 다시 한 번>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어 683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는 한중 합작 영화 가운데 1위의 성적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내가 네 할머니다>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될 예정이며 타이, 인도네시아, 인도, 독일에서도 리메이크 버전을 기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상한 그녀>는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 연대기에서 볼 때 어떤 사례로 기록될까? 지난 2015년 1월, <수상한 그녀>는 중국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눈에 띄는 수출 성공 사례다. 이후 중국에서 한중 합작으로 리메이크된 버전 또한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한국 영화인의 기획과 중국 영화인의 제작이 합쳐진 결과다. 한때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은 한류 붐을 타고 완성작 수출에 주력하던 시기가 있었고 이후 김기덕, 홍상수, 이창동, 박찬욱 감독이 해외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이름을 빛낸 시절이 있었다. 이들이 해외시장에서 사랑받는 감독이 되면서 한국 감독들은 해외에 진출해 현지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작품을 만들고 촬영, 미술, VFX 등 스태프들 역시 해외에 진출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역으로 해외 투자배급사들이 한국영화에 투자하기도 하고 한국의 극장 체인들이 동남아 지역에 진출해 직배에 나섰다.
즉, 지금은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을 수출과 영화제 수상의 카테고리로만 볼 수 있는 때가 아니고, <수상한 그녀>의 흥행과 리메이크 버전의 활발한 제작 역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직은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유튜브를 통해 하나의 영상이 전 세계로 배급되는 요즘에는 새로운 유형의 해외 진출 사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해외 진출 사례가 나타날까? 이를 예상하기에 앞서 그동안 한국영화들이 어떻게 해외로 진출했는지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말하자면 이 글은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 연대기다. 과거의 사례를 통해 미래에 한국영화가 해외에서 더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욘사마’는 한국영화를 싣고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해외 수출 실적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05년이다. 당시 전체 수출액은 7599만 4580달러로, 약 873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03년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를 바탕으로 배용준과 최지우의 일본 진출이 활발했고, 이어 이병헌 또한 ‘뵨사마’로 불리며 일본 내에서 자신만의 시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통한 한류 붐이 영화로 옮겨오면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러한 경향이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 실적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04년 일본 전체 개봉작 375편 가운데 61편이 한국영화였으며, 일본 극장에서 한국영화의 개봉 편수 기준 시장점유율은 최대 약 16.2%를 기록했다(출처: 일본 영화수입배급협회 자료, www.gaihai.jp). 이듬해인 2005년에는 배용준의 <외출>(허진호, 2005)을 비롯해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이재한, 2004),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곽재용, 2004) 등의 영화가 개봉해 20억 엔이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일본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흥행은 지속되지 못했다. 2006년 개봉한 <괴물>(봉준호, 2006), <왕의 남자>(이준익, 2005),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 2005) 등이 흥행 부진으로 전체 한국영화 수출액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평균 수출가의 3~4배에 달했던 한국영화의 거품이 꺼지면서 수출 실적 또한 감소했다. 2005년 한국영화의 최고 수출액을 기록한 지 불과 1년 뒤인 2006년에는 전년 대비 1/3 수준인 2451만 4728달러를 기록하는 데 그쳤을 정도다.
한국영화의 수출 실적 추이를 볼 때, 이제 2005년과 같은 기록을 다시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2012년에는 2017만 4950달러, 2013년 3707만 1445달러, 그리고 2014년에는 2638만 475달러를 기록했다. 그사이 나라별 비중도 달라졌다. 일본 수출 의존도가 높았던 때와는 달리 한국영화가 개봉되는 지역이 더 넓어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본보다는 중국 시장의 비중이 높아졌고, 중남미와 호주, 중동 시장까지 수출 실적이 기록되는 중이다. 2014년 한국영화 완성작 수출액 2638만 달러 중 821만 달러가 중국에서 거둬들인 금액으로 이는 전체 수출액의 31.1%를 상회하는 수치다. 지난 10년간 한국영화 수출 지역 1위를 차지한 일본은 447만 달러로 중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금액이자 전체 수출액의 17.0%를 기록했다. 물론 그럼에도 전체 아시아 시장의 수출 실적은 2014년에만 약 79.1%의 비중을 기록할 만큼 가장 큰 시장이다. <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 버전이 기획된 나라들처럼 태국,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으로 한국영화의 소비 지역이 확대된 상황이다. 한국영화를 향한 거대한 바람은 사라졌지만, 한국영화를 향한 관심만큼은 더 넓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기덕,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한류는 특정 작품과 특정 배우를 통해 시작됐고, 그래서 하나의 붐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영화제를 통한 관심은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을 지속적으로 이끌었다. 지난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제5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2003년 이창동 감독은 <오아시스>로 제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특별감독상을 수상했고, 박찬욱 감독이 2005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김기덕 감독이 2013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요약하자면 김기덕,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등이 해외 영화제에 진출한 이후 봉준호를 비롯한 여러 감독이 칸과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에 진출했고 이를 통해 해외 영화계에 이름을 알리면서 한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을 이끈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2001년 <섬>으로 선댄스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후, 왕성한 창작력으로 매년 작품을 내놓았고 이 작품들은 국제영화제 상영뿐만 아니라 꾸준히 수출되어 현지에서 개봉되었고, DVD로도 출시되었다. 그뿐 아니라 유럽을 중심으로 ‘한국영화=김기덕 영화’라는 공식이 생겨났고, 크고 작은 영화제의 특별전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이창동 감독의 경우 <밀양>(2007)으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전도연), <시>(2010)로 제63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으면서 이후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게 되었다. 해외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건 홍상수 감독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특히 사랑받는 그의 최신작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는 최근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과 남우주연상(정재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시 국제영화제들이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헤르빈 탐스마와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프로그래머 앙케 레베케는 한국영화의 장점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와 동시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꼽았다. 또한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묘사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 한국영화가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초기의 작품들에 대해 미주, 유럽의 영화 관계자들은 “Korean Extreme movie”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매우 폭력적이고 거칠게 표현한 것이 많았는데 이를 장르영화적인 요소로 읽은 것이다. 물론 이는 당시 한국영화의 특질을 서구 영화인의 관점에서 묘사한 것이지만, 당대의 한국영화가 그만큼 그들의 눈에는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 영화인의 해외 진출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한국영화의 완성작 해외 수출은 2006년부터 주춤해진 이후 이전과 같은 급상승 현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 시장의 관심이 감소한 탓도 있지만, 계약 관행의 변화도 하나의 이유다. 이전 한국영화의 수출 계약이 완성작에 대한 미니멈 개런티(MG) 금액을 최대한 많이 받는 플랫딜(Flat Deal)형식이었다면, 이후에는 미니멈 개런티(MG)보다 현지 개봉 이후의 수익을 분배받는 Revenue Share 방식의 계약으로 진행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는 2010년부터 한국영화 해외 수출의 범위를 완성작 수출에서 VFX, 사운드 등 기술 서비스 수출까지 확대해 지원하고 있다. 기존의 완성작 수출 사례만 집계하던 해외 수출 실적에 인력 및 업체의 해외 영화 참여, 로케이션 유치 등 서비스 수출 실적을 추가한 것이다. 지금 한국영화는 더 이상 수출과 해외 영화제 수상으로만 해외에 진출하는 게 아니다. 감독과 배우, 촬영감독과 무술감독, 특수효과 전문가, CG 업체 등도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 또한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 사례로 봐야 할 것이다.
지난 2009년 허진호 감독은 한중 합작 영화 <호우시절>을 연출한 이후 2012년에는 장동건・장쯔이 주연의 <위험한 관계>를 연출했다. 안병기 감독은 공포영화 <분신사바 - 저주의 시작>을 만들었고, 이 작품은 흥행 면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2013년에는 오기환 감독이 <이별계약>을, 안병기 감독이 <분신사바 2>를 연출했고, 2014년에는 <엽기적인 그녀>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곽재용 감독이 <내 여친은 조기 갱년기>를 연출했다(곽재용 감독은 한중 합작 영화인 <데이지>의 각본과 일본 영화 <싸이보그 그녀>의 연출, 중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미스 히스테리>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물론 한국 영화감독의 해외 진출이 중국에 국한된 건 아니다. 2013년은 한국 감독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가시화된 해였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가 차례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들의 해외 진출 방식은 각각 달랐다. <설국열차>는 미국과 프랑스가 제작에 참여해 CJ가 글로벌 프로젝트로 제작한 영화다. 할리우드가 각 국가에서 유명한 감독, 배우, 스태프들을 제작에 참여시키는 것은 낯설지 않은 전략이다. <스토커>에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정정훈 촬영감독, <라스트 스탠드>에는 김지용 촬영감독과 모그 음악감독, <설국열차>는 홍경표 촬영감독 등과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맺은 스태프들이 함께 진출하기도 했다. 이병헌이 출연한 <지아이조 2 G.I.Joe: Retaliation>에 정두홍 무술감독이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토커>를 촬영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이후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이기도 한 <블러바드 Boulevard>의 촬영을 맡았고, 알폰소 고메즈-레존 감독의 <미 앤 얼 앤 더 다잉 걸 Me and Earl and the Dying Girl>에도 촬영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공식적인 수출 실적에 기록되지 않을 뿐, 감독과 배우를 제외한 한국 영화인의 해외 진출 또한 한국영화의 장점을 해외에 알리는 사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 진출의 선순환 구조가 강화되어야 할 시점
지금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은 다채널 시대에 돌입했다. 국제영화제 수상 등의 관점에서는 예전에 비해 새로운 인물, 새로운 영화의 발견 소식은 자주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영화계 인력의 해외 진출은 더욱 활발해지는 시점이다. 또한 한국영화계로 유입되는 해외 영화계의 자본도 주목해야 할 흐름이다. 20세기폭스는 조동오 감독의 <런닝맨>(2012), 김영탁 감독의 <슬로우 비디오>(2014), 임상수 감독의 <나의 절친 악당들>(2015)에 이어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5)에 투자배급을 진행 중이며 워너브라더스는 현재 김지운 감독의 <밀정>을 제작 중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러한 상황은 한국영화가 해외시장과 영화제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시절의 결과로 보인다. 해외로 수출되거나, 국제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은 한국영화를 통해 전 세계 영화계는 단지 감독과 배우만 본 것이 아니었다. 한국영화만이 가진 신선함과 연출을 가능하게 만든 영화인들의 노력과 능력까지 살펴보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앞으로는 한국 멀티플렉스 체인의 해외 진출과 그로 인한 직배 또한 더 다양한 사례를 기대해볼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과 중국 기업의 합작, 그리고 중국 회사의 한국영화 투자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영화인들은 잠시 불었던 한류 붐에 의해 한국영화를 구입하고, 높게 평가하는 게 아니다. 지금의 상황은 사실상 한국영화계가 가진 강점을 통해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계는 앞으로도 이러한 매력을 지켜갈 수 있을까?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지속시키기 위한 선결 조건은 당연히 한국영화계의 생태계를 더욱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앞서 열거한 모든 사례가 하나의 기적, 혹은 특별한 상황에서 비롯된 우연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by.
전윤형(영화진흥위원회 산업정책연구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