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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4K로 인한 영화 산업의 변화
영화 산업은 이제 완벽하게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를 끝으로 국내에서 더 이상 필름으로 제작된 영화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디지털은 필름에 비해 경제적이며 촬영과 편집, 후반작업 등 제작 전반의 과정에 편리성을 주기 때문이다. 2010년에 들어서면서 후반작업에만 사용되던 디지털 기술은 촬영 카메라가 디지털화되면서 프로덕션, 즉 제작 분야까지 범위를 넓히게 된다. 이렇게 영화 산업은 또 한 번의 기술혁신을 통해 영상 산업을 선도할 것처럼 보였으나, 2013년 TV 산업이 4K UHD로 방향을 잡으면서 2K 기반의 영화 스크린은 화면의 크기와 음향 외에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게 된다. 이러한 매체 변화의 상황을 맞아 영화계에서 4K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영화 산업에서 4K가 일으킨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영화 산업의 4K, 여전히 멀고 먼 이야기?
영화 산업에서 4K 영상이 정착되려면 제작과 상영이 4K가 되어야 한다. 우선 제작의 경우, 촬영과 DI(디지털 색 보정), VFX(Visual Effects, SFX(Special Effects, 특수효과)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다가 최근 기술의 발달로 SFX를 대체하게 되었다) 분야가 4K로 전환되어야 한다. 4K 촬영은 가능하고, 이미 그렇게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4배 넓어진 화면에서의 VFX 작업, 그에 따라 높아진 제작 단가로 인한 DI 분야에서의 4K 작업은 (기술적으로 가능해 도) 신속하게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극장 역시 2K에서 4K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TV 산업은 가정용 UHD TV의 가격 하락으로 인해 4K가 많이 보급되었지만, 극장의 경우 4K DLP, 서버 등의 장비 교체 문제로 여전히 4K 상영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영화계에서는 촬영을 4K로 진행하고, 특수효과, 색 보정, 상영은 2K로 사이즈를 줄여 작업하고 있다. 요컨대 2015년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디지털 영화 중 (제작, 후반작업, 상영이 모두 4K로 된) 완전 한 4K 영화는 없다. 있다 해도 실험영화거나, 특수효과가 거의 없는 자연다큐영화로 국한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화 산업에서 4K는 멀고 먼 이야기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4K 시대를 위한 준비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미 제작단에서는 ‘4K 시대’, 즉 극장 시스템이 4K로 바뀌는 시기를 대비하는 준비가 한창이다. 과거 제작된 영화를 4K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것인데, 이는 간략하게 애초 필름으로 제작된 영화를 4K로 스캔하는 방법, 그리고 2K DSM(Digital Source Master)을 4K로 변환하는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존에 제작된 영화를 고화질의 4K로 대량생산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러한 작업을 단순하게 ‘화질 변환’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기존의 영화를 4K 콘텐츠로 재생산한다는 것은 최신 환경에서 관객(시청자)들이 최상의 화질로 관람(시청)할 수 있게 만들 뿐 아니라 디지털 영구 보존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CJ 파워캐스트는 지난 2014년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2005)를 4K 콘텐츠로 재생산했다. 작업의 최종 결과물은 4K UHD 콘텐츠, 2K 디지털 시네마, 블루레이 콘텐츠, 영구 보존용 아카이브 파일이었고, 작업 과정에서 기존 영상의 마스터링과 먼지 제거, 색 보정 작업을 병행했다. 1편의 (필름 혹은 2K) 영화를 4K로 만든다는 것은 이렇듯 상영과 보존을 염두에 둔 일종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8월 기준으로 CJ 파워캐스트는 70여 편의 영화를 UHD로 변환했고, <주먹이 운다>(류승완, 2005)를 시작으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 2000), <살인의 추억>(봉 준호, 2003)은 현재 재개봉을 준비 중이다. 이렇게 제작된 콘텐츠는 4K UHD를 준비하는 영화와 방송 시장에서 충분히 매력 있는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으며, 실제로 4K 시대에 가장 먼저 활용될 수 있는 (가장 구매력 있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규로 제작되는 콘텐츠는 4K 작업이 가능할까?
이러한 변화는 현재 제작 준비 중인 콘텐츠의 4K 제작을 유도하기도 한다. TV 시장이 4K UHD로 전환되면서 앞으로 2K 영화는 스크린 이외에는 유통이 힘들다고 봐야 한다. 드라마 <처용 2> 등 사전제작률이 높은 드라마들이 4K로 제작되는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생성되는 콘텐츠라고 4K 작업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앞서 4K 시장이 정착되려면 제작과 상영이 4K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제작 부분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프로덕션 부분에서는 4K 카메라와 4K DIT(Digital Image Technical), 후반작업 부분에서는 4K VFX와 4K DI가 이뤄져야 한다. 이 중 4K VFX를 제외하고는 현재 모든 과정의 4K 작업이 가능하다. 카메라나 디지 털 색 보정의 경우 독립된 4K 장비로 전체 콘텐츠를 다루기 때문에 4K 장비만 있으면 가능한 반면, VFX는 수십, 수백 명의 스태프가 하나의 짧은 영상을 (공동) 작업하기 때문에 그들의 장비가 4K로 전면 교체되려면 많은 투자 자본이 필요하다.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는 4K 후반작업에서 디지털 색 보정 진행 시 촬영본은 4K, VFX 부분은 2K를 4K로 Blow-up(Re-size)하여 삽입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작업용 워크스테이션이 4K로 전환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이니, 빠른 시일 내에 제작 전반에 걸친 4K 콘텐츠 작업이 정착되리라 믿는다.
영화 제작, 4K로 눈을 돌리다
필름은 디지털이 범접할 수 없는 화질을 가진다. 여기서 화질은 사이즈와 색심도(Color Depth)를 의미하는데, 어떤 사이즈로 스캔 받느냐에 따라 4K, 8K, 혹은 그 이상의 디지털 사이즈를 구현할 수 있고, 스캐너의 성능에 따라 풍부한 색심도를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영화가 디지털로 제작되면 사이즈와 색심도는 고정된다. 다시 말해 화면의 사이즈는 2K, 4K, 8K 등으로, 색심도는 10bit, 12bit, 16bit 등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기술 변화에 맞춰 화질을 더욱 풍부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화질을 구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4K로 오면서 필름의 매력은 사라지게 된다. 사실 서두에 언급한 디지털의 장점, 즉 편의성과 경제성은 물론 제작자나 창작자에게 중요한 요소이지만, 화면의 ‘룩’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디지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편의성과 경제성은 물론 화질에 대한 장점까지 갖춘 4K 기술이 도입되면서 지난해부터는 제작을 4K로 진행하고, 그 촬영 4K 원본을 보존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사실, 영화 산업 내에서의 관심은 4K보다 ‘UHD의 원론적인 화질’인 8K를 향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극장에서 4K로 상영한다 해도, 그것이 UHD TV를 뛰어넘는 화질이라고 자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화가 8K, 즉 초당 100프레임의 영상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때 TV와는 차별되는 시각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산업이 TV 산업처럼 단계적인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는 이유는 방송에 비해 제작 편수가 적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변화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 구조적으로 힘든 산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매체이며, 영화계에서도 화질을 개선할 수 있는 4K를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는 추세인 만큼, 영화가 어느 시점에서 8K UHD로 향할 것임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설국열차>를 마지막으로 필름 제작은 끝났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은 다시 필름으로 제작된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모든 아날로그 방식을 완벽하게 대체했다기보다, 영화 산업에서 영화 제작을 위한 하나의 재료가 늘어났다는 것을 시사한다. 영화 제작의 편의성이 늘어났고, 작업을 위한 선택의 폭이 다채로워진 것이다. 4K는 분명 거스를 수 없는 기술이고 영화의 제작과 상영, 보존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신기술이 도입된다고 과거의 모든 기술을 배척하기보다는 영화의 제작과 배급, 상영과 보존 각각의 과정에서 관객에게 최고의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하고 풍성한 재료를 선별하고 조화하는 일이 4K, 나아가 8K와 그 이상의 기술 도입 시기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한다.
by.
옥임식(CJ파워캐스트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