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기술 발전의 역사는 인간 감각의 한계를 극복해온 역사라고도 한다. 또한 방송과 영화의 기술은 불가분의 관계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는 세계 디스플레이 가전 산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디지털 HD 방송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였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HD TV 방송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로 인해 디지털시네마 기술과 산업 역시 빠르게 보급되었다. 그리고 이제 방송과 영화 산업에서 우리는 UHD 기술을 논하고 있다.
화질을 높이기 위한 TV와 영화 기술 연구의 역사
필름이라는 이미지 기록/재생 매체가 개발된 뒤, 그것을 전자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텔레비전 기술이 뒤따라 개발되었다. 영화와 텔레비전 기술 분야에서 화질을 높이기 위한 연구의 역사는 매우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송의 경우, 1939년 미국의 앨런 듀 몬트(Allen B. Du Mont)가 수평주사선 약 800라인의 고화질 흑백 텔레비전을 최초로 개발했으나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제약으로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영화 기술 역시 다양한 필름 규격을 통해 화질을 더욱 좋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왔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미국의 파라마운트사에서 고안했던 쇼스캔 방식의 경우, ‘그래왔기 때문에 익숙해짐’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24프레임의 35mm 필름 형식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60프레임의 70mm 필름 규격을 사용하자고 했으나, 역시 비용의 문제로 산업에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일본은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 방식인 NTSC 방식을 그대로 도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시청해야만 하는 미국의 NTSC 방식은 (상대적으로 좁은) 일본의 주거 환경에는 맞지 않다는 문제점이 분석되었고, 그것을 개선하고자 더 가까운 거리에서도 세밀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고화질 텔레비전(Hi-Vision)을 1959년부터 연구•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은 이 새로운 영상 기술을 전 세계의 차세대 텔레비전 기술표준으로 만들고자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1980년대 초 미국의 방송 산업은 케이블 텔레비전 보급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고, 무선통신 산업의 성장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의 입지는 산업에서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일본의 고화질 텔레비전 방식을 그대로 도입하고자 했으나, 검토와 연구 과정에서 몇 가지 수정 사항이 제기되었다. 특히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 기술이 본격 등장함에 따라 디지털 (지상파 전송 방식의) HD TV 형태로 완성되었고, 1996년에 차세대 고화질 텔레비전 방식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로 인해 오랜 기간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어 개발했던 일본의 방식은 사실상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전 세계 차세대 텔레비전 방송 기술 방식의 표준화’ 추진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일본은 여기서 중단하지 않고, 미국이 만든 디지털 HD TV보다 더 높은 기술 수준의 텔레비전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95년, 일본은 그렇게 슈퍼 하이비전(UHD TV)의 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최적의 시청 화각을 확보해 최고의 시각적 경험을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연구가 있다. 일본의 NHK기술연구소는 1964년에 처음 고화질 텔레비전을 개발할 당시 다양한 화면 크기와 시청 거리, 해상도, 화각 등의 변인 조건을 가지고 인간의 시청각적 경험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920×1080픽셀에 15:9 화면 비율이라는 규격을 도출한 바 있다(일본에서 도출한 최초의 와이드 스크린 텔레비전의 규격은 15:9였지만, 미국의 HD TV에서 16:9로 변형되었다).
일본에서는 본격적인 슈퍼 하이비전(UHD TV)의 개발에 앞서 과거에 했던 그 실험 연구를 다시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화면 비율을 16:9로 고정한 상태에서 시청 화각 변화에 따른 시청자의 몰입도 변화를 분석하는 인지심리학적 연구를 진행했다(연구의 결과는 ‘UHD TV의 규격을 결정하 기 위한 휴먼 팩터 연구; Research on Human Factors in Ultrahigh-Definition Television(UHD TV) to Determine Its Specifications’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나와 있다).
성인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 실험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화각이 넓어질수록 영상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도가 증가하는데 화각이 100도에 이를 때 그 몰입도가 정점에 달하고 그 이상으로 넓어지면 오히려 몰입도가 급감하는 것으로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 아이맥스(IMAX) 극장에서 확보되는 화각이 100도 정도라는 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UHD TV를 소개하고 설명할 때 ‘가정용 아이맥스 버전의 텔레비전’이라고 말한다.
화면 비율이 16:9로 고정된 상태에서 시청 화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시청 거리를 단축해야 하는데, 화면 가까이로 다가가면 사람은 텔레비전 화면의 픽셀을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도 개별 픽셀이 식별되지 않는 수준으로 픽셀의 크기를 작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화면의 픽셀 밀도, 즉 해상도를 증가시켜야 하는 것인데, 시청 화각을 100도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도 픽셀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고해상도가 바로 8K(7680×4320)이다. UHD 영상 기술에서 8K라는 규격은 이러한 실증 연구를 통해서 도출된 결과다. 그리고 일본은 현재도 8K UHD TV 상용화를 목표로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일본의 개발 계획에서 4K UHD 규격은 8K UHD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이자 8K UHD 영상 제작에서 사용할 일종의 프록시(Proxy) 개념의 규격이다.
하지만 방송영상 기술의 국제표준화기관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의 최근 입장은 일본의 목표와 다소 차이가 있다. UHD 영상의 가장 큰 특징은 화면의 대형화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거실 소파에서 TV까지의) 텔레비전 시청 거리를 대략 2~3m의 조건으로 봤을 때, 제대로 된 4K UHD TV의 화질을 느끼기 위해서는 약 110인치의 제품이어야 하고, 제대로 된 8K UHD TV 화면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약 230인치의 제품이어야 한다. 일반적인 주거 환경 조건에서 100인치대 텔레비전의 크기는 문제없지만, 200인치를 넘어가면 가로 폭의 길이는 어떻게 가능할지라도 세로 폭의 길이(높이)는 천장고의 한계로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서 최근 국제표준화 기관에서는 4K UHD 영상은 가정용 규격으로 정의하고, 8K UHD 영상 규격은 가정용이 아닌 강의실, 회의실, 시사실, 옥외광고용 규격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요즘 UHD TV에 대한 소개를 보면 대부분 ‘UHD TV는 기존 HD TV보다 4배 더 선명한 영상을 제공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일본의 개발 연구나 국제기술표준 규정집 등 그 어느 자료를 보더라도 이렇게 설명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대신, ‘기존의 HD TV보다 더 넓은 시청 화각을 확보함으로써 시청자가 더 높은 수준의 시각적 경험과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는 TV’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해상도 요건은 요구되는 시청 화각에서 깨끗한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필요조건일 뿐 그 자체로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아이맥스 극장에서 관객이 더 높은 수준의 시각적 경험과 몰입감을 경험하는 것은 아이맥스 영상의 높은 해상도 때문이 아니라 시야 범위의 상당 범위를 차지하는 이미지 정보, 즉 넓은 화각 때문인 것이다. 2.35:1 화면 비율인 시네마 스코프 규격의 영화를 볼 때 (실제로는 더 낮은 해상도임에도 불구하고) 더 역동적인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와 매체에 따른 표현 기법 함께 고민해야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하면서 미디어 산업의 기술 변화 역시 숨 가쁘게 바뀌고 있다. 처음 텔레비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사람이 극장 산업의 침체를 예상했지만, 영화는 와이드 스크린과 서라운드 음향 기술을 내세우며 발전했고, 텔레비전이 전하지 못하는 경험과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텔레비전은 대형 화면의 와이드 스크린에 5.1채널 입체음향을 제공하는 HD TV로 발전했고, 영화는 깨끗하고 선명한 디지털화뿐만 아니라 3D, 4D로 나아갔으며 비용의 문제로 잠시 대중영화 산업에서 뒤로 밀려났던 아이맥스가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가정의 텔레비전이 UHD TV로 발전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개발의 시작은 8K 규격을 목표로 만들어진 것이나, 가정에서의 8K UHD TV는 현실성 측면에서 상용화까지는 아직 거리감이 있고, 4K UHD TV 수준에서 안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8K UHD 규격이 사장되는 것은 아니고, 아이맥스 규격의 디지털 극장이 힘을 받아 더 활성화되고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35mm 필름 영화가 2K~4K급 디지털 규격으로 환산된다고 볼 때, 70mm 필름의 아이맥스 영화는 4K~8K급으로 환산된다).
또한 최근에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4K UHD TV 방송 서비스는 한국 영화 산업에 또 하나의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6월 1일에 방송을 시작한 스카이라이프 UHD 서비스의 경우, 유료가입자의 증가율이 매우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다. 볼거리가 있으면 사람들은 기꺼이 선택과 소비를 한다는 명제가 입증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변화의 동인 중 하나가 바로 UHD 영화 콘텐츠다.
이처럼 영상 산업 시장의 지형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영상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현업인들이 습득해야 할 지식의 양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고민해보고 연구해야 할 지식 정보는 단지 기술뿐만이 아니다. 고해상도와 넓은 화각의 스크린이 등장하면 그 화면 공간을 채우고 구성해나가는 표현 미학의 방법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미디어를 소비하는 행태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두 매체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