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모스트 페이머스 Almost Famous>(캐머런 크로, 2000)
영화업계에 종사하던 시절, 이 영화를 보며 대본을 필사했다. 그땐 내가 음악을 하게 될지 몰랐고 이 한몸 한국영화계에 바치자 마음먹었을 때였기에 이 영화는 저 다른 세계에 있었을 법한 내 이야기였다. 밴드 영화 대부분은 오글거림을 동반한다. 밴드가 성장하는 과정이든, 밴드가 붕괴되는 과정이든. 유명한 밴드 이야기든, 안 유명한 밴드 이야기든.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게 없다. 오글거릴라치면 그 순간 상황을 엎어버린다. 웃기지 마, 아직 오그라들 때 아니야! 그런 게 좋았다. 좋아 미칠 거 같았다. 그래서 필사했다. 이런 영화를 쓰고 싶었다.
이 영화는 ‘거의 유명해질 뻔한’ 한 밴드의 성장담이자, 그 밴드를 따라다니며 음악평론가의 꿈을 꾸는 한 소년의 성장담이자, 그 밴드와 사생활을 함께한 그루피의 성장담이다. 음악, 청춘, 성장, 사랑을 담은 수많은 영화가 있지만 유독 이 영화와 궁합이 잘 맞았던 건,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때 (자칭) 그루피여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20대 초반의 나는, 인디 쪽에서는 ‘거의 유명해진’ 모 밴드를 따라다니며 밤새 술을 먹고 혹시 ‘껀수’ 가 생기지 않을까 홍대 거리 바닥에 줄줄 흘리고 다녔다. 혹시나 그가 공연 중에 우리만의 사인을 보내지는 않을까, 이 미친 술자리가 끝나고 그와 단둘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지 않을까, 그가 나에 대한 노래를 만들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에게 나는 그저 수많은 그루피 중 하나였고 나 역시 그다지 순정파는 아니었기에 그와의 관계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은 순간, 그 세계를 떠났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그루피는 그야말로 그루피가 갈 수 있는 ‘끝판왕’을 보여준다. 그 이름부터 너무나 상징적인 페니레인(케이트 허드슨 역)은 ‘스틸워터’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빌리 크루덥 역)의 그루피이자 애인. 유부남인 그(왜 항상 뮤지션들은 책임지지 못할 결혼을 해버리는 것일까?)에게 처참하게 버림받을 때까지 스스로 자신이 그 밴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노브라로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는 패기, 밴드 투어를 같이 다니며 지쳐버린 주인공이 집에 가고 싶다고 하자 “여기가 집이야”라고 속삭이는 자유로운 영혼, 결국 자살 시도를 하고 위세척을 받으면서도 청순함을 잃지 않는 맑디맑은 눈빛. 그런 그녀를 나는 부러워하고 질투했지만, 현실 속 나는 그야말로 너무 현실적이었던 거다.
수많은 명배우가 조연으로 나오고, 수많은 명곡이 바람에 스치듯 끊임없이 나온다. 하나만 꼽자면 주인공인 꼬마 음악평론가의 멘토로 나오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지적 허세 연기가 압권이고, 주인공의 누나인 조이 디샤넬이 집을 떠날 때 나오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America’는 작은 감동이다.
by.작은미미(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