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めがね>(오기가미 나오코, 2007)
소처럼 일만 하다 모처럼 떠나온 휴가. 눈이 시리게 파란 바다 앞에 서 있는데도, 매일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으로 떠나왔는데도, 좀처럼 그녀의 모드는 ‘휴식’으로 바뀔 생각을 않는다. 까만 뿔테 안경을 바짝 올려 쓴 그녀의 이름은 다에코. 여행에 필요한 온갖 물건은 물론, 일상 속 걱정까지 켜켜이 담아 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해변의 모래사장을 힘겹게 걸어가는 뒷모습이란…쯧쯧. 영락없는 나, 큰미미였다.
처음 ‘미미시스터즈’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나의 일상은 늘 긴장으로 가득했다. 한번 무대에 설 때 그래 봐야 한 곡, 많으면 두세 곡 공연할 뿐이었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을 위해서도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어야만 안심이 되었다. 분장, 가발, 의상, 벨트, 장갑, 선글라스, 하이힐, 칼같이 딱 떨어지는 안무까지. 어쩌다 작은미미가 소품을 하나씩 빼먹고 오거나, 실수로 가발을 바꿔 들고 오는 날에는 짜증이 불같이 솟구쳤다. 가끔 정해놓은 안무를 틀리거나, 사전 의논 없이 무대에서 조금이라도 콘셉트에 어긋나는 돌발 행동을 할라치면 그야말로 작은미미는 나에게 ‘혼’이 나기 일쑤였다.
아는 이들 사이에서나 알려졌을 듯한 한적하고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다에코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고 색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맞닥뜨린다.
모든 이가 멍 때리는 것을 즐기는 동네에서, “사색이라는 게 이 마을의 풍습 같은 건가요?”라고 질문하던 다에코. 그녀를 서서히 물들인 것은 바로, 매년 봄이 되면, 아주 작은 손가방 하나만을 들고 날아와 바닷가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빙수를 나눠주는 수수께끼 여인 사쿠라였다. 그리고 나의 사쿠라 씨가 되어준 작은미미 씨는, 올해로 8년째 몸소 나에게 ‘셀프로 나사 빼는 방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사쿠라 씨와 작은미미 씨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두 번 권하지도 않는다. 또한 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집중하고, 순간에 솔직하고, 매일 말도 안 되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너무 진지해서 기이한 ‘메르시 체조’ 같은 유머를 꾸준히 전파한다. 빙수에 들어갈 팥을 경건하게 졸이고 있는 사쿠라 씨에게 다에코가 다가와 말을 걸자, 숨죽이며 속삭이는 한마디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것. 초조해하지 않으면…언젠간 반드시.”
작은미미와 함께 오랜 시간 일상과 무대를 공유하면서, 나는 ‘실수의 묘미’를 깨달았다. 농담과 웃음이 많아졌고, 잃어버리는 물건이 더 많아졌다. 낮술을 즐기는 날이 많아졌고, 까먹는 가사가 더 많아졌다. 평소에도, 공연 중에도 사이좋게 실수를 주거니 받거니. 그래도 아랑곳없이 뻔뻔스럽게 활어처럼 날뛰며 관객들과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이제는 그 우연의 순간이 선물해주는 쾌감을 조금은 즐기게 된 것 같다. 여름이 끝날 즈음 다시 마을을 떠나는 사쿠라 씨에게, 다에코는 휴가 내내 떠놓았던 빨간 목도리를 선물한다. 그리고 다에코의 안경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바람에 실려 날아가버린다.
나는 올여름, 내게 안경 대신 선글라스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해준 작은미미를 위해 특제 맥주 빙수를 준비하기로 했다. 미미가 함께라면 가까운 한강에서도 바다를 느낄 수 있을 테니!
by.큰미미(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