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스 티오세코의 라브 디아즈 감독론
“이 세계의 구원은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에, 성찰하는 힘에, 온화함과 책임감에 달려 있다.” - 바츨라프 하벨
장편 데뷔작의 첫 부분 - 도스토옙스키에게서 영감을 얻은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1998)를 여는, 들판에 쪼그려 앉아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롱숏 - 에서부터 가장 최근에 연출한 <필리핀 가족의 진화>(2004)의 마지막 부분 - 이 영화를 닫는 ‘두 어머니 이야기’라는 제목의 에필로그 - 에 이르기까지, 라브 디아즈는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을 짓누르는 죄의 무게를 가늠해왔다. 디아즈의 영화는 여러 점에서 현대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어떤 것도 필리핀의 사회, 문화, 영화의 규준 및 역사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7년 동안 (곧 완성될 <에레미아스>를 포함해) 7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그는 형식적으로나 주제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추구하면서, 그리고 거장 리노 브로카가 남긴 유산에 도전하면서 동시대 필리핀영화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할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하나의 국가로서 필리핀은 대단히 힘든 과거를 통과해왔다. 한때는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되기 위해 투쟁했고, 독립을 얻은 지금은 정체성과 방향을 찾느라 씨름하는 중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계엄령 시행(1972년)으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는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거의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마르코스가 남긴 유산은 자신의 명성과 부(富)만이 아니었다. 족쇄와 침묵, 즉 무력감 또한 유산으로 남았던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 가장 혹독한 상태에 처해 있을 때 종종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가 쏟아져 나오곤 한다. 이슈마엘 베르날과 마이크 드 레온에서 페케 갈라가에 이르는 많은 필리핀 감독들은 마르코스 집권기에 자신들의 최고작을 내놓았다. 영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 시기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이는 다름 아닌 리노 브로카였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브로카는 저항의 영화를 내놓았다. 그의 영화는 현 상황에 도전하는 한편 극도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필리핀 사회의 끔찍한 모습을 그려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영화산업과 엄격한 검열 제도 한복판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싸우면서, 브로카는 제대로 된 한 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러 편의 상업영화를 제작하곤 했다.
디아즈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한편 그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계엄령과 리노 브로카였다. 디아즈가 처음으로 영화의 힘을 깨닫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에 접한 브로카의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1975)를 통해서였다. 2002년에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영화는 영화에 대한 나의 관점을 바꿔놓았다. 나는 영화라는 매체가 대단히 강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그들의 조건을, 그들의 관점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란 걸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필리핀 사람들을 위한 좋은 예술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1998년에 발표되어 비평적 주목을 받은 데뷔작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는 중요한 재능의 출현을 알림과 동시에 필리핀영화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브로카가 개인에게 미치는 사회의 영향을 탐색한 곳에서, 디아즈의 영화는 개인의 행동이 그의 양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과거에 죄를 지었으나 이제 구원을 갈망하는 과묵한 사내, 러시아 문학으로부터의 영향(이 영화는 <죄와 벌>에서 따온 인용구로 시작한다)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디아즈의 주인공은 도스토옙스키적 인물에 가깝지만 이는 필리핀영화에서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를 통해 디아즈는 그의 영화의 원형적 인물을 제시하고 그만의 미학적 경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1999년에 디아즈는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의 제작사였던) 리갈 영화사(Regal Films)에서 두 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했는데, 하나는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 이전에 촬영이 시작되었으나 그보다 늦게 완성된 소극(笑劇)인 <버거 보이즈>이고, 다른 하나는 <달빛 아래 벌거벗은>이라는 작품이다. 은행 강도를 모의 중인 일군의 청년들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인 <버거 보이즈>는 별난 구석이 있는 영화로, 디아즈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례적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클로즈업, 빠른 편집, 의식적인 카메라 앵글, 기이한 의상 디자인 및 괴짜 같은 인물들로 가득한 이 영화는 반(反)장르적인 영화감독의 장르 실험으로 간주한다면 흥미롭게 읽힐 수도 있다.
<달빛 아래 벌거벗은>에서 디아즈는 한결 익숙한 영역으로 돌아온다. 환속한 사제이자 실패한 가장(조엘 토레)인 주인공은 현재의 삶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동안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고 자신이 내린 결정들을 곱씹는다. (신인 여배우 클라우디아 코로넬이 연기한) 그의 딸은 강간의 기억에 사로잡혀 벌거벗은 채 배회하는 몽유 증세를 보인다. 다시 한 번, 과묵하고 내성적이며 사색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베를린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지만 제작자의 명령으로 (디아즈가 없는 상태에서 촬영된) 섹스 장면이 추가로 삽입되고 재편집되었다.
디아즈가 자신의 미학을 온전히 실현시키고 간접적이나마 계엄령이라는 주제를 처음으로 건드린 영화는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웨스트 사이드 키드>(2001)로서, 이는 동시대 필리핀영화의 첫 걸작이라 할 만하다. 러닝타임이 다섯 시간에 달해 그때까지 제작된 가장 긴 필리핀영화인 이 작품은 (짧지만 강렬한 꿈 시퀀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서 촬영되었는데, 디아즈 자신과 필리핀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주제라 할, 해외에 거주하는 필리핀 디아스포라 문제를 다루었다. 이 주제는 이전에도 (로리스 길렌의 <아메리칸 아도보>(2001) 같은 작품에서) 다루어진 바 있지만, 디아즈의 영화에서 주제와 인물은 멜로드라마와 캐리커처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다루어졌다. 탁월한 캐스팅과 묘사로 스크린 상에 완벽히 구현된 인물들은 앉고, 일어서고, 숨을 들이쉬고, (마지막 장면을 비롯해 영화 전반에 걸쳐 주요 모티프가 되고 있는) 숨을 내쉬는 등의 동작을 하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들 -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 사촌, 연인 혹은 할아버지 - 에 대한 영화적 등가물이 된다. 디아즈의 차분하고 절제된 카메라는 미국 각계각층의 필리핀인들의 삶 구석구석을 기록해나간다. 매 순간을 꼼꼼하게 다루면서 각각의 장면들, 분위기 그리고 관계들에 배우들뿐 아니라 관객 또한 깊이 젖어들게 함으로써, 영화의 긴 러닝타임을 최고의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십분 활용하고 있다. 뉴저지의 길목에서 죽은 채 발견된 한 청년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웨스트 사이드 키드>의 플롯은 오늘날 필리핀인들의 상태에 대한 메타포로 기능한다. 어두운 과거를 감추고 있는 경찰관 미하레즈는 살인범을 찾아, 진실을 찾아, 비난받아 마땅한 이의 얼굴을 찾아 필리핀 공동체 전체를 돌아다니며 탐문한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미하레즈의 조사는 막바지에 이르지만 청년의 죽음에 대한 어떤 결론도 확실하게 내려지지 않는다.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계속 밀고 나간다면, 난 많은 필리핀인을 죽이게 될 거야.”라고 미하레즈는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릴이 다 돌아갈 때쯤, 우리는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웨스트 사이드 키드> 이후, 디아즈는 리갈 영화사에서 한 편의 영화를 더 제작하는데 <혁명가 헤수스>(2002)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과거와 그리 다르지 않은 미래(2011년)를 배경으로 한 야심찬 SF영화다. 역사의 순환적 성격에 대해 읊조리는 록밴드 ‘The Jerks’의 노래가 주제곡으로 반복해 들리는 가운데, 디아즈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움을 얻지 못한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근심과 어두운 망상을 투사하고 있다. 이 영화의 복잡한 스토리는, 주요 등장인물 셋 - 미구엘 대장(로니 라자로), 사이먼 소령(영화감독이기도 한 조엘 라망간), 혁명가 헤수스(마크 안토니 페르난데즈) - 이 펼치는 행동과 말의 상호작용에서 볼 수 있듯, 미래를 배경으로 한 전통적 스릴러보다는 심리적인 마인드 게임으로 향한다. 평론가 노엘 베라가 쓴 리뷰의 제목인 ‘Future Tense’(‘미래 시제’와 ‘긴장감 어린 미래’라는 뜻을 모두 지님)는 이 영화의 무드를 적절히 요약하고 있다.
2003년 4월, 디아즈는 9년 동안 묵혀두었던 미완의 작업에 다시 눈을 돌린다. 제작 초기에 활용했던 16mm 필름을 예산 부족으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자, DV 카메라를 사용해 계엄령 시행 직전부터 그 이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사려 깊은 시대극을 완성하는 일에 착수했다. 아름다우면서도 혼란스러운 작품인 <필리핀 가족의 진화>의 거의 11시간에 달하는 최종 편집본은 2005년 1월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여기서 디아즈는 과거 농촌의 삶을 재구성하고 이를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시기에 실제로 촬영되었던 무시무시한 역사적 기록 영상과 병치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제시된 역사적 기록 영상과 영화 속 인물들의 삶 사이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떠오르게 된다. 공포로 가득한 상태가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함의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 둘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처럼 보이며 디아즈가 제시하고자 하는 요점을 알아차릴 만한 단서 또한 없다. 한 나라의 역사에서 그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다룬 영화라면 굵직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리라 기대하기 마련이다. 대담하게도 디아즈는 그의 카메라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과거의 독재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환원주의적 진술을 제시하는 대신, 사회적 힘에 직면한 개인의 선택이 초래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극화하는 쪽을 택한다. 필리핀인들이 짊어져야 했던 짐에 연민을 표하면서도 그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사회에 돌리는 것은 헛된 일이라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 제시된 역사적 사건과 디아즈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삶 사이에 그러한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역사의 주요한 순간들이 인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미친 영향을 보여주기보다는 인물들 자신의 선택이 그들 삶의 경로를 결정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대지의 풍요로움과 교육의 중요성을 믿는 푸링의 강인함, 선한 본성을 지닌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잘못된 일을 벌이는 카됴, 가족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레이날도, 영화를 마감하는 ‘두 어머니 이야기’라는 제목의 감동적인 에피소드 등을 통해서 말이다. 이러한 삽화들은 모두 하나의 커다란 콜라주로, 억압에 직면한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또 권한을 부여하는 한 편의 예술작품으로 통합된다. 구원이란 스스로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 선언하면서.
한 편의 라브 디아즈 영화의 매 프레임에서, 당신은 역사의 무게를, 과거의 무게를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인물들 얼굴의 깊은 주름살 위에, 그들의 더듬거리는 말 속에, 그들의 주름진 이마에, 무엇보다 그들이 침묵하는 순간에 새겨져 있다. 이것이야말로 디아즈 영화의 핵심이며 그의 영화가 힘과 중요성을 끌어내는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당대에는 적절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은) 리노 브로카의 영화와 말에서 배우고 또 영향을 받은 많은 필리핀 영화감독들이 그가 밟았던 길을 모방하려 애써온 반면, 디아즈는 필리핀이라는 국가와 그 국민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년 전, 독재자의 지배 아래 있을 때, 우리는 누구의 손목을 비틀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쉽사리 판단하고 비난을 돌리는 일이 다반사인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는, 따져 물어야 할 유일한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흔들림 없이 확고한 디아즈의 카메라는 표면 아래에서만 발견되는 진실을 드러내면서, 우리에게 구원으로 향하는 길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