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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언젠가 존재했던 낭만의 도시, 뉴욕
영화 <맨하탄>(1979)은 주인공 아이작의 뉴욕 사랑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뉴욕을 흠모하고 숭배한다. 길거리에 인파가 넘쳐나고 차도가 자동차로 꽉 막혀 있어도 뉴욕을 사랑한다. “뉴욕은 나의 도시이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라고 끝을 맺는 절절한 사랑 고백 사이로 맨해튼의 다양한 풍경이 교차된다.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는 뉴욕 풍속화, 혹은 뉴욕의 인스타그램 같은 아름다운 화면에 중력을 더한다.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멜로디와 만난 맨해튼의 풍경은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진다.
우디 앨런의 뉴욕 사랑은 <애니 홀>(1977)부터 구체화됐다. 잘나가는 코미디언에서 영화감독 전업에 성공한 그는 개그를 압축한 정치 풍자 섹스 코미디를 만들다가 <애니 홀>부터 남녀관계가 중심에 놓이는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에 집중해왔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취향에 따라 뉴욕의 특정 공간을 드나든다. 예를 들면 <애니 홀>에서 앨비(우디 앨런)는 데이트할 때 예술영화 극장을 찾는다. 지금은 없어진 ‘비크만 시어터’와 ‘탈리아 시어터’에서 애니를 만나고 ‘링컨센터 필름 소사이어티’에서 줄을 서 있다가 유럽영화에 대해 큰소리로 떠드는 무례한 관객에게 시달리기도 한다. 둘이 시시때때로 언쟁을 하며 걸어 다니는 뉴욕 거리도 연인에게 어울리는 무대가 된다. 걷고 또 걷는 뉴욕의 일상은 늘 자동차로 이동하며 땅에 발 디딜 시간이 없는 캘리포니아의 일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캘리포니아에 정착해서 “뉴욕이 뭐 그리 대단해? 거긴 죽어가는 도시야”라고 말하던 애니도 결국은 뉴욕으로 돌아온다. 브루클린 다리의 야경을 보며 키스를 나눌 수 있는 도시의 낭만이 그리웠던 게 틀림없다.
<애니 홀>에서 데이트 코스처럼 다뤄졌던 뉴욕은 <맨하탄>에서 거의 주연의 자리를 차지한다. 등장인물들은 머무는 공간을 통해 아주 적극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 ‘맨해튼’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그들의 활동 영역은 센트럴파크 동쪽인 ‘어퍼이스트사이드’와 서쪽인 ‘어퍼웨스트사이드’로 한정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 대형 미술관과 오페라극장, 클래식 공연장 등 우아한 예술 공간이 인물들의 주요 동선이다. 우디 앨런에게 뉴욕을 대표하는 것은 지하철도 아니고 타임스 스퀘어도 아니다. 스쳐가는 뉴욕의 매혹적인 여자들과 사려 깊게 고른 클래식한 분위기의 공간들이 뉴욕이란 도시를 재정의한다. 마치 유럽 문화를 사랑하는 고상한 지식인들이 사랑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낭만적인 섬이자 망명지 같다. 그들은 클래식한 고급 레스토랑 ‘일레인스(Elain''s)’에서 와인을 곁들이며 저녁을 먹고 우디 앨런 밴드가 연주하기도 하는 재즈 클럽 ‘카페 칼라일(Café Caryle)’에서 음악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맨하탄>의 여러 아름다운 장면 중에서,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해 2.35대 1로 촬영한 뉴욕의 풍경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매리(다이앤 키턴)와 아이작이 새벽 산책을 하다가 맨해튼 동쪽 강변의 벤치에 앉아 퀸스보로 다리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맨하탄> 영화를 안 본 사람들조차 포스터를 통해 기억하는 이 장면은 ‘뉴욕의 낭만’을 대표하는 한 컷이 되었다. 강변을 산책하며 현학적인 어투로 실컷 떠들던 아이작은 앞에 보이는 풍경에 압도되어 짧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와우, 여긴 정말 멋진 도시야.”
그러나 우디 앨런이 경배했던 유럽풍의 뉴욕은 점차 모던 도시로 변모한다. <한나와 그 자매들>(1986)에 등장하는 건축가는 뉴욕에 새로운 건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와 동행한 홀리(다이앤 위스트)는 어퍼웨스트사이드 서쪽 끝에 있는 튜더 양식으로 지어진 역사적 아파트 단지 ‘포맨더 워크(Pomander Walk)’를 산책하며 좋아하지만 다른 공간에선 재개발이 한창이다. 변모하는 뉴욕의 풍경이 우디 앨런의 향수를 건드렸던 것일까? 1980년대 말 그는 자신의 브루클린 유년기를 회고하는 <라디오 데이즈>(1987)를 완성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민자 서민 동네에서 벌어지는 정겨운 에피소드와 함께 뉴욕이 화려한 세계적 도시로 거듭나던 시기를 묘사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라디오 시티홀에 들어서며 “천국에 들어간다”라고 말했던 브루클린 꼬마와 우디 앨런은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 집에서 45분 거리에 있는 맨해튼에 갈 때마다 그 황홀한 외양을 보고 놀랐다는 감독은 자신이 받았던 문화 충격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맨해튼의 삶을 갈망하는 외부인의 시선을 알기에 이렇듯 탁월한 솜씨로 뉴욕을 묘사하는 건지도 모른다.
1990년대 작품인 <중년의 위기>로 넘어가면 영화 속 뉴욕은 더 이상 <맨하탄>의 뉴욕이 아니다. <한나와 그 자매들>에서 추수감사절을 지낸 센트럴파크 서쪽 아파트에 비하면, <중년의 위기>에 등장하는 현대식 어퍼이스트사이드 아파트는 황량하기만 하다. 모피 코트로 무장한 상류층 여자들은 미용실에서 첨단 시술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매디슨 애비뉴의 명품 숍에서 쇼핑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앨리스가 정신 건강을 위해 찾는 곳은 번잡한 차이나타운이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도착한 이국적인 장소에서 앨리스는 유럽풍 대신 동양풍의 신비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도시의 변화를 재치 있게 포착해내는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뉴욕은 점차 클래식한 분위기를 잃어간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1년에 한 편씩 부지런히 뉴욕에서 영화를 만들었지만 초기작만큼 뉴욕이 부각된 작품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를 돌면서 발전시킨 낭만적 이야기가 찬사를 받았다. 모처럼 뉴욕으로 돌아와 완성한 <블루 재스민>(2013)은 파크 애비뉴에 살던 상류층 뉴요커가 서민의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출신지를 물을 때 ‘뉴욕’에 ‘파크 애비뉴’를 덧붙이는 그녀. 재스민이 우아하려고 노력할수록 그녀의 모든 행동은 코미디가 된다. 우디 앨런의 상류층 지식인 캐릭터가 뉴욕의 업타운 요새를 벗어나니 동시대성을 상실한 구닥다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조적 태도가 느껴진다. 실제로 우디 앨런 또한 파크 애비뉴에 살고 있지만 더 이상 뉴욕을 경배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신작 <이레셔널 맨>(2015)도 아트 커뮤니티로 유명한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가 배경이다. 우디 앨런이 뉴욕에서 촬영을 하지 않는 표면적 이유는 뉴욕 시가 촬영 수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에 앞서 재개발 붐이 한창이고 관광객들이 장악한 뉴욕은 더 이상 우디 앨런의 문화적 관심을 만족시키는 도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색창연한 존재감을 떨쳤던 과거의 뉴욕은 우디 앨런의 옛날 영화들을 통해 영속성을 획득한다. 영화 속 뉴욕은 이제 노스탤지어의 대상이다. 뉴욕을 가본 적 없는 사람조차 영화를 보며 그리움에 사로잡힌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가 지극히 고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낭만적 사랑을 찾아 헤매던 남자들,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던 독립적인 여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과거의 화려한 삶을 그리워하며 길을 잃은 재스민처럼, 도시인들은 언젠가 도시에 흘러넘쳤던 낭만을 그리워하며 우디 앨런의 옛 영화를 본다. 그리고 이뤄질 수 없는 주문을 되뇐다. “이 도시는 나의 도시이고 언제나 그러기를.”
by.
홍수경(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