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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영화를 말하는 모든 것, 소품
영화에서 소품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실제로 영화 제작과정에서 그 경계를 딱잘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미술팀과 소품팀, 의상팀이 나뉘어 있지만 긴밀하고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영화 촬영 현장의 특성 상,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을 소품의 테두리 안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소품은 크게는 대도구와 소도구로 구분된다. 자동차나 대형 가구 같은 대도구부터, 엑스트라가 건네는 종이 한 장과 같은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오고가는 영화 소품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카페에서의 한 장면에도 벽에 걸린 그림, 테이블의 모양, 배우가 마시는 음료가 무엇인지까지도 감독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으니 스크린에 등장하는 모든 오브제가 영화의 소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 ‘영화 소품’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영화촬영 전 프로덕션을 위한 모든 준비를 꾸리는 프리 프로덕션, 본격적으로 촬영 단계에 접어드는 프로덕션, 영상 편집이나 색보정, 음악과 음향을 추가하고 시각적 시각적 특수효과, 상영용 필름 프린트 제작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마지막 단계인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소품의 수급은 영화 제작의 가장 첫번째 단계인 프리 프로덕션에서부터 결정된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 예산을 짜고 미술감독과 감독은 로케 장소와 세트를 그려나간다. 그리고 이때 소품과 의상의 리스트업이 꾸려진다. 스태프들은 감독이 요구하는 분위기에 맞는 소품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수소문을 하며 본격적으로 분주해진다. 영화의 기획 의도에 맞는, 혹은 배우에게 걸맞은 세트를 꾸리기 위해서는 소품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좋은 소품은 영화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매튜 본, 2015)에 등장하는 검은 우산이 영국 신사의 매력과 무기로서의 긴장감을 동시에 발산한 것처럼. 감독과 스태프들은 영화를 말하는 좋은 소품을 끊임없이 찾아 나설 수밖에.
협찬에서 대여, 구입과 제작까지
협의를 거쳐 어떤 소품을 사용할지 결정되면 협찬이나 대여, 구입에 들어간다. 이때 최적의 경로를 탐색하고 정리하 는 것은 소품팀의 몫이다. 그 외에 앵글 안에서 미적인 장식이 필요한 소품은 미술팀이 관리한다. 촬영 현장의 모든 소품은 소품팀에서 관리하기보다는 물건의 중요도, 용도, 크기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간혹 협찬을 받은 소품의 경우는 제작팀에서 별도로 관리하기도 한다. 협찬 제품의 노출 정도라든지, 제약 조건이 까다로운 경우는 영화제작자 가 직접 관리하기도 한다. 대여의 경우는 작품이 사극인지 현대극인지에 따라 경로가 달라진다. 사극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소품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대부분 남양주종합촬영소 소품실에서 조달한다. 개인 수집가나 업체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직접 제작하는 일도 많다.
현대극일 때는 경우의 수가 조금 더 다양하다. 직접 소품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기술자들>(김홍선, 2014)의 경우 영화 초반에 지혁(김우빈 분)이 입상을 훔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소품은 김홍선 감독이 원하는 구체적인 형태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소품을 구하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내외를 수소문한 끝에 한 일본 작가와 연락이 닿았는데, 끝내 협찬이 성사되지 않았다. 작품을 구입하려고 하자 이번엔 항공 운반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에는 미술감독이 직접 소품을 제작했다. 스태프의 입장에서는 예산 내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방법이 가장 편리할 것이다. 그렇지만 감독이 원하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고 영화의 흐름에 꼭 필요하다면 직접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영화감독 대부분은 소품이 영화미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소품에 민감한 경우가 많고, 스태프 역시 영화의 모든 소품이 영화와 잘 어우러지기를 바란다.
사실 영화 소품을 다루면서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차별화에 있다. 영화의 정체성, 기획 의도에 맞는 소품인 동시에 새로워야 한다. 최근 사극영화에서도 이전에는 보지못했던 화려한 색감의 의상과 소품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 영화를 둘러 싼 고민은 아주 작은 소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보관에서 기증까지, 영화 이후의 소품들
촬영이 끝나면 협찬이나 대여한 소품은 반납 절차에 들어간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구입하는 소품의 권리는 투자사에 있다. 그러나 여러 영화에 투자하는 회사의 경우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권리를 제작사에 이관하는 일이 흔하다. 제작사나 감독이 특별히 원하는 소품의 경우 소장할 수 있도록 제공하기도 한다. 폐기처분하는 일도 부지기수. <기술자들>을 촬영하며 구입한 소품은 벤츠와 롤스로이드 자동차 두 대였다. 영화에서 꼭 필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구입 후 사고 장면을 촬영하고 부득이 폐차했다. 대개는 소품이 너무 고가이거나 부피가 큰 것들은 구입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소품일 경우 더욱 그렇다. 보관도 쉽지 않거니와 재활용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기술자들>의 경우 한국영상자료원과의 연이 닿아 일부 소품들을 기증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더 많은 소품을 확보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그저 쓰고 버려지는 영화 소품이, 어딘가에 그 가치 그대로 보관되는 것이 소중한 위안이고 큰 의미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영화 소품이 한국영화박물관에 보관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by.
육경삼(영화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