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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심야영화
지난 명절, 대입 준비에 한창인 조카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연히 시작된 수다는 고3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보낼 것인가’라는 다분히 현실적이고 냉혹한 주제로 시작됐다. 자리에 함께한 몇몇 친척의 훈수가 이어졌고 조카의 얼굴이 벌게질 무렵, 누군가 자신의 청소년기 흑역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뜻밖의 반전이 반가웠다. 나 역시 ‘이 땅에서 수험생이란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나의 그 시절은 정동극장에서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를 새벽까지 보던 시간이었다. 완전한 전략 부재로 대입에서 처절하게 실패한 후 재수의 길을 걷게 된 1998년. 무력감에 몸부림치던 어느 날, 나는 당시 정동극장의 공격적인 마케팅 수단의 일환이었던 심야영화 할인권을 손에 넣게 됐다. 개관을 한 지는 한참 되었겠지만 그동안은 신분이 신분인지라 차마 닿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찾아간 그곳은 신세계였다. 최신 영화 세 편을 묶어 한 편 가격에 상영하던 정동극장은 밤에도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에게 맞춤인 장소였다. 웃음과 수다가 곳곳에서 들려왔고 박스오피스는 분주했다. 수도승 마냥 늘 즐거움을 자제해야 하는 외톨이 재수생에게 그 밤의 활기는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다. 낯모르는 무리 틈에 섞인다는 것조차 즐거웠다. 그 후로 나는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 밤이면 후드 티셔츠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을 나와 걸었다.
그러나 다분히 감정적으로 이뤄지는 행차라 미처 영화에 대한 정보를 챙길 수 없었던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공포영화의 습격을 당하기 일쑤였다. 미남 배우(조지 클루니)가 나오는 서부극인 줄로만 알았던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보고 질겁하고(한동안 셀마 헤이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나이트 플라이어>(1997)를 보고 나서는 극장 문을 나서질 못해 끙끙거렸다(결국 두서너 시간을 더 버티다 집으로 왔다). <퇴마록> <미술관 옆 동물원> <약속> 등을 보며 황금 같은 수험생의 시간을 야금야금, 알차게도 까먹었다. 밤새 영화를 보거니 자거니 하다 나오면 새벽의 청명한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고, 그럴듯한 변명으로 무장했던 나는 결국 재수를 하나마나 한 성적을 받고 재수를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학교의 학과에 보무도 당당히 입학했다. 결과적으로 심야영화 때문에 망한 수험생 이야기다. 이 얘길 조카에게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날 밤 나는 한참이나 고민했던 것 같다.
by.
송순진(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