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걸 무술영화 전문상영관, 피카디리극장
나는 1977년생이다. 무협영화 계보에 따르면, 77년생은 뭐랄까, 약간은 비켜 난 세대에 속한다. 이소룡은 너무 멀었고, 성룡은 아주 조금 앞섰으며, 그래서 당대의 무술 영웅을 찾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 명이 불쑥 등장했다. 잘생긴 훈남 외모에 수많은 무술 대회 수상 경력까지, 나와 친구들은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매료되어 그가 출연한 영화를 모조리 챙겨 봤다. 그의 이름, 바로 ‘이연걸’이다.
어디에서 그를 처음 봤더라. 내 기억에 종로 피카디리극장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당시 매일같이 종로에 있는 학원엘 다녔는데, 거기에서 만난 승택이와 나는 피카디리극장에 가서 당대의 무협영화를 함께 섭렵했다. 작품 대부분에 이연걸이 등장했는데, 그중에서도 <황비홍> 시리즈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황비홍>에서 이연걸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절대 강자를 연기하면서 기품을 잃지 않는 그의 무술 실력에 나와 승택이는 그만 홀리고 말았다. 이외에도 <동방불패> <방세옥> <이연걸의 정무문> 등 이연걸이 출연한 수많은 무술영화를 피카디리극장에 서 보고 또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피카디리극장은 나에게 ‘이연걸 무술영화 전문 상영관’으로 남아 있다.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 역시도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무술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건 어린 시절의 호기가 선물해주는 어쩔 수 없는 심적 현상이다. 그러나 이연걸을 비롯한 무술의 고수들은 사람들과 더불어 유(柔)하게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와 일체가 되기 위해 무술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결국에는 타인들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한 몸짓이지 않을까. 음악을 듣고 그 기쁨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음악 글쟁이들의 직업 역시 따지고 보면 굉장히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니 2015년에는 음악을 더 듣고 글을 더 열심히 써야겠다. 그러다보면 이 비천한 재능의 살리에리 역시 언젠가는 극의(極意)에 다다를 수 있겠지 하는 소망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서.
by.배순탁(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