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해운대 시네마키드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나다
때는 2005년. 장래 희망이 영화감독인 부산 해운대 소재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영화계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영화제에 참여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혼자만의 애먼 오해가 풀린 순간, 나는 주저 없이 교실 창문 밖으로 책가방을 던졌다. 그길로 야간자율학습 감독관의 눈길을 피하며 10여 분을 달려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영관 중 하나였던 해운대 메가박스에 다다랐다. 영화제 카탈로그와 시간표를 살피며 흥미가 당기는 영화들을 모조리 섭렵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일. 당시의 나는 헉헉대는 숨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무작정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영화를 고를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학교 가서 맞을 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를 보러 왔다는 사실에 우쭐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영화제 기간이 아닐 때에도 가끔 찾던 집 근처 평범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그날따라 유난히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익숙한 매표소와 엘리베이터 그리고 복도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설치물들 덕분에 마치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공간처럼 보였으며, 그때까지 그들의 성역에 발 디딜 자격이 없던 내가 비로소 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은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린 내가 그저 우스울 따름이지만, 아무튼 그 순간에는 비상시 대피 안내 영상마저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렇듯 부산국제영화제와 나의 첫 만남은 급작스럽고도 서툴렀지만, 다음 날 맞을 매를 걱정하며 보았던 라자람 반쿠드르 샨타람 감독의 <두 개의 눈동자와 열두 개의 손>(1957)이 마음에 들었던 덕분에 다음 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조퇴증을 손에 들고 당당히(?) 부산국제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이 정도면 그래도 우리 만남의 첫 단추는 어느 정도 잘 꿰어진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잘 꿴 첫 단추의 인상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내내 부산국제영화제와 시네마테크 부산에 드나들게 되었고, 타 지역의 대학 영화과로 진학하고 나서도 매년 연례행사처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고 있다. 이후 10여 년의 시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의 시민평론단 1기 멤버가 되어 영화제의 웹진과 데일리에 비평을 쓰고, 시민평론가상의 심사에 두 번이나 참여하는 등 부족한 깜냥에 비해 과분한 혜택을 받았지만 그 어떤 특혜도 이 기억만큼 강렬하지 않다. 영화를 탐닉하는 행위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영화과 동기들과 티켓 카탈로그들 뒤져가며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를 고민하던 순간들에 비하면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쭈뼛거리며 혼자 돌아다니던 모습이 더 초라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그때 그 순간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기왕이면 좀 더 멋진 순간에 대한 얘기를 꺼내보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기억에 대해 써야 할 것 같다. 아마 내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빠지게 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by.한동균(영화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