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2009년 ‘전주국제영화제’의 보석 같은 기억들
벌써 5년 전이다. 필자는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로 참여했다.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고 영화과 입시를 방불케하는 치열한 선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처음엔 합격에 대한 뿌듯함과 활동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냥 들떠 있었다. 사전 교육을 받기 전까진 말이다.
돌이켜보면 영화제 측은 관객평론가를 일회성 이벤트보다는 일종의 인재 양성 과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높은 수준의 글을 요구했고 우리가 쓴 글은 담당 평론가와 영화제 담당 스태프에 의해 난자당했다. 한 분은 묵직한 도(刀)법을, 한분은 날랜 검법을 선보였다. 뿌듯함은 자괴감으로 바뀌었고 기대감은 부담감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전주로 내려갈 때 마치 훈련소에 입소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영화제가 시작되자 전주라는 공간의 매력과 영화제의 들뜬 분위기로 말미암아 그간 위축되었던 마음이 서서히 풀렸다. 글 쓰는 일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중반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축제였다. 그래서 최고의 순간을 한둘만 꼽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인터스텔라>(크리스토퍼 놀란, 2014)가 유행이니 우주적으로 표현하자면, 영화제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경험들이 합쳐지고 화학작용을 일으켜 JIFF 은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에서 몽타주 신을 쓰는 것처럼 이 은하의 주요 항성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감독님들과 인터뷰에서 나눴던 이야기들. 첫 인터뷰 정리 기사를 쓸 때 인터뷰이의 말을 왜곡하면 안 된다며 필요 이상으로 녹음 파일을 듣고 또 들었던 기억. 영화를 보고나서 수다를 나눌 때의 흥분. 마감을 앞두고 텅 빈 워드 프로그램 화면에 떠 있는 커서의 일정한 깜빡임이 줬던 긴장감. 유명 맛집도 아닌 골목에 있던 허름한 백반집에서 먹었던 푸짐하고 맛깔 나는 음식들. 역시 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만들어 준 유명 맛집의 콩나물국. 고층 건물이 거의 없는 소박한 전주 시내의 전경. 덥기 직전까지 따뜻했던 햇볕 아래에서 산책하며 보았던 남부시장과 한옥마을의 풍경들. 그리고 그 와중에 사진을 찍어달라며 나의 한가로운 산책을 끊임없이 방해했던 커플들에 대한 분노. <반두비>에서 배우 백진희를 처음 발견했을 때 떨었던 호들갑. 관객평론가상 수상작 선정을 했던 치킨집의 어두침침한 조명과 탁한 공기. 관객평론가상을 결국 <반두비>에게 준 우리에게 농담조로 누가 주동자냐며 묻던 영화제 관계자의 말에 주동자라서 뜨끔했던 기억.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영화배우 백진희는 모 방송국의 노예로 활동하며 브라운관 스타가 되었고, 나는 이 경험을 계기로 연출 지망생에서 현재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과거를 너무 미화한 감이 있는데 태연의 고향인 전주까지 가서 태연 부모님의 안경점 성지순례를 하지 않고 온 것은 분명 치명적인 옥의 티다.
by.정현욱(영화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