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수상한 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
수상한 영화제가 있다. 이곳은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도시. 이곳에서 지역 영화와 작은 영화들을 함께 보는 영화제가 14년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시민들이 모여 자신들이 만든 소소한 영상들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가정에서 추억을 남기기 위해 담아두었던 영상들이,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이 삼아 만들었던 영상들이, 미래의 영화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만든 영화와 함께 상영되고 함께 즐기는 영화제가 그렇게 시작됐다. 14년전 이런 마음에는 정부의 지원도, 지자체의 공적자금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화 상영 시설이 완벽한 극장과 관객몰이를 할 만한 그럴듯한 이벤트 또한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즐기는 마음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시민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작은 어울림이었다.
수상한 영화제에는 알만한 감독들의 그럴듯한 개막작도 없다. 그저 영화를 하겠다고 모인 지역의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함께 만든 짧은 영화, 자기 지역뿐만 아니라 자기들과 같은 꿈을 품고 살아가는 타 지역 젊은이에게 제작을 지원한 짧은 영화가 매년 개막작으로 상영된다. 이런 좀 모자랄 법한 영화들을 보겠다고 개막식장을 가득 메운 관객도 수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영화제 경쟁부문에는 장편영화와 단편영화의 구분이 없다. 으레 장편은 장편들끼리, 단편은 단편들끼리 모아 심사하고 시상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는 영화를 가르는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키가 크든, 작든 모두 사람인 것처럼 장편이든 단편이든 모두 영화이니까.
더 수상한 것은 경쟁부문 예심에서 탈락한 지역 영화들을 모두 상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 상영할 바엔 왜 심사를 하나하는 생각도 들게 마련이다. ‘살롱 데 르퓌제’라는 섹션인데 그 이름의 유래는 프랑스 살롱전에서 거부당했던 화가들이 모여 스스로 만든 전시회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마네, 모네, 피사로 같은 인상파를 등장시킨 전시회라고 한다. 이 낙선자들의 상영섹션보다 더 이상한 것은 이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2시간이 넘는 ‘영화 수다’가 이어진다는 것. 예선에 탈락한 영화들을 가지고, 그 영화들을 만든 감독들과 논쟁하듯, 싸우듯 2시간 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야말로 지치도록. 이 광경은 아마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관객과의 대화(GV)와는 또 다른 풍경일 것이다. 이 영화들이 상영되는 공간도 이상한 것은 매한가지다. 당신이 이 수상한 영화제에 찾아온다면 극장도 아닌 곳에서 바닥에 누워 영화를 보는 사람, 삐딱하니 쿠션에 기대고 영화를 보는 사람,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영화를 보는 사람, 참으로 다양한 자세와 모습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취할 수 있는 모든 자세의 전시장 같기도 할 것이다. 누가 옆에 눕든, 누가 일어서 나가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해가 지면 극장은 영화제를 찾은 사람들의 뒤풀이 자리가 된다.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한 감독과 스태프, 몇 년째 영화제에 맞춰 휴가를 내고 서울에서 오는 관객과 영화 제작 현장에서 촬영을 잠시 미뤄두고 스태프들과 영화를 보러 온 이상한 유명 감독이 한자리에 모여 새벽이 되도록 영화 얘기를 한다. 그냥 술이나 먹지, 왜 영화제의 미래를 자기들이 계획하고, 자기들이 해보고 싶은 걸 굳이 여기에서 해보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참 수상한 영화제가 있다. 거기에는 영화감독이니 영화제 관계자니 하는 구분도 없다. 오로지 우리가 함께 볼 영화만이 있을 뿐이다. 이곳은 전북독립영화제다.
by.전병원(전북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