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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의 악당> 결국, 사람의 이야기
짐작건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손재곤 감독의 <이층의 악당>이 ‘저주받은 걸작’이나 ‘잊힌 명작’ 같은 지위를 얻지는 못할 것 같다. 사회 비판적이지도 않고 충격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논란 따위와는 거리가 먼, 내 기준에선 착하고 사려 깊은 영화란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나는 <이층의 악당>을 좋아한다.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친절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영화는 성실하다. 숨겨진 물건을 찾는 사기꾼과 신경쇠약에 걸린 집주인이 얼기 설기 엮인다. 이야기의 핵심은 두 사람의 거짓과 진실이 교차되는 것이지만, 그 와중에 왕따를 당하는 여중생과 옆집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이웃, 짝사랑에 빠진 경찰, 그리고 철없는 재벌 2세와 그가 고용한 키 작은 조폭, 그 조폭이 불만인 엘리트 조폭 같은 인물들이 촘촘하게 배치돼 있다. 이들의 욕망과 콤플렉스가 제 나름의 방식대로 드러나고 충돌하다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는 구조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파편적으로 흩어놓은 농담과 협박, 적의와 호의가 마침내 하나로 응집되는 순간은 자살하려던 성아(지우)와 마주친 창인(한석규)이 얘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곧 잠에 빠진다. 이때 카메라는 두 사람이 잠든 방을 스르륵 빠져나와 주변 인물들의 그저 그런 일상을 뒤쫓는다. 배경으로는 낮고, 조용하고, 상냥한 음악이 흐른다. 이진희 음악감독의 ‘지친 사람들’이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사는 게 힘들다”라는 대사도 떠오른다. 카메라는 건너편 집 2층 베란다에서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괴팍한 할머니의 걱정과 욕망도 건드리고, 조폭들의 시시한 일상도 스치듯 지나간다. 덕분에 그저 무섭고 기분 나쁜 이웃에 불과했던 사람들의 삶을 조금 엿보게 된다.
그러니까 모두가 피로한 것이다. 이런 삶을 위로하는 음악은 꼼꼼한 바느질처럼 장면을 이어 붙인다. 스릴러와 스크루블 코미디를 오가던 영화는 그제야 유사 가족 드라마로 전환된다. 이 신은 마지막 장면, 고급 아파트로 이사한 연주(김혜수)를 찾은 창인이 거실 바닥에 웅크려 잠드는 장면과도 호응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창인은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진다. 지친 삶은 어디서 위로받는가. 그건 결국 관계의 지속성, 그저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의 안온함에서 위로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좋아한다.
차우진 대중음악 평론가
1999년부터 잡지에 글을 썼고 2001년부터 음악 웹진
운영에 손을 보태고 있다. 〈씨네21> 〈한겨레21> 〈 GQ > 〈나일론> 등의 매체에 음악 및 방송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여전히 ‘대중음악평론가’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비겁해지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음악 산업과 온라인 생태계에 특히 관심이 많다.
by.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