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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로맨틱 코미디의 등장 <청춘쌍곡선>
1950년대 후반, 한 해 1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되던 한국영화계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장르는 멜로드라마였지만, 제작 총량의 거의 80%에 가까운 멜로드라마의 지분을 제외하고 남는 영화 중 그래도 가장 많이 만들어지고 사랑받은 장르는 코미디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영화계는 단 한 편의 코미디영화(<멍텅구리 헛물켜기>(이필우, 1926))의 제작 기록과 스틸 사진만을 남겼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코미디영화의 제작붐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온 몇 가지 우연적이고 필연적인 요소들의 교차 속에 탄생한 결과였다.
먼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그리고 전쟁을 거치는 긴 시간 동안 한국영화계에서 코미디영화의 제작 자체는 부진했으나 ‘코미디’와 ‘웃음’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할리우드 코미디영화가 있었다. 영화가 경성을 비롯한 도시인들의 중요한 오락거리로 손꼽히기 시작한 1910년대 후반부터 찰리 채플린, 로스코 아버클, 버스터 키튼, 해럴드 로이드 등이 출연하는 할리우드의 코미디영화는 극장 상영 프로그램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조선의 영화팬들은 채플린의 독특한 분장과 걸음걸이 등에만 익숙했던 것이 아니라 ‘로이드 안경’이나 ‘키튼 모자’의 유행을 즐기기도 했다. 광복과 미군정, 심지어 전쟁을 겪는 동안에도 이들의 단편영화는 메인 프로그램에 덧붙여지는 프로그램으로 다수 상영됐으며 다양한 코미디영화의 하위 장르들, 이를테면 뮤지컬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 남성 듀오 코미디 등이 인기를 끌었다. 또,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가장 인기 있는 대중 연예였던 악극에서도 코미디는 적극 차용됐다. 악극단의 희극배우들은 채플린, 키튼의 슬랩스틱을 흉내 내거나 이들의 영화를 대중극 혹은 버라이어티 쇼로 각색해 선보이곤 했다. ‘조선의 채플린’이나 ‘조선의 키튼’으로 불린 배우들의 존재가 이를 증명한다. 악극단의 희극배우들이 할리우드 코미디만을 차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재담과 만담, 스케치와 난센스 같은 우리 고유의, 혹은 일본 유입 코미디의 언어적 코믹함도 적극 활용해 각자의 개성에 맞는 코미디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할리우드 코미디영화를 통해서, 혹은 악극을 비롯한 대중연예를 통해서 코믹함과 웃음의 감각을 잃지 않았던 1950년 대 한국영화계는 1956년 <시집가는 날>(이병일)과 <청춘쌍곡선>(한형모, 1956)을 필두로 코미디를 본격적으로 영화화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광복과 전쟁을 거치면서 악극이 잔여 문화로 스러지는 동안 지배 문화로 부상한 영화에서 코미디 배우들은 가장 먼저 매체 전환에 성공하면서 스크린의 총아가 됐다. 영화는 악극단의 배우들과 레퍼토리 및 관객층을 대거 흡수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대중오락이 됐고, 그 과정에서 코미디는 부동의 관객층을 보유한 고정 장르가 됐다. 특히 <시집가는 날>이 제4회 아시아영화제 특별희극상을 수상하고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되면서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대외적으로 증명한 이래, 한국영화사에서 다소 낯선 장르였던 코미디영화는 비평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로맨스부터 슬랩스틱까지, 화려하게 꾸려진 성찬
<시집가는 날>이 국내외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지만 국내 흥행에서는 고전했던 반면, <청춘쌍곡선>은 1957년 국내 영화 흥행 순위 5위를 기록하고, 그해 흑자를 기록한 영화 세 편 중 한 편으로 꼽히며 대중적 관심과 흥행 면에서 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할리우드 뮤지컬 코미디와 로맨틱 코미디의 관습, 그리고 악극단 출신 배우들의 장기를 적극 활용한 <청춘쌍곡선>은 가벼운 풍자와 산뜻한 웃음, 배우들의 춤과 노래를 적절히 안배함으로써 세련된 코미디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악극단 출신의 인기 배우들, 황해와 ‘뚱뚱이’ 양훈, ‘홀쭉이’ 양석천을 비롯해 이 영화로 스크린에 첫선을 보인 김희갑, 인기 악극 작곡가 박시춘과 미국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김시스터즈 등 화려한 출연진의 면모는 당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박시춘의 화려한 기타,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선보인 김시스터즈의 춤과 노래, 현인과 고복수, 남인수 등 당대 인기 가수들의 모창으로 유명했던 김희갑이 메들리로 들려주는 ‘신라의 달밤’과 ‘타향살이’ 등의 모창 그리고 여배우 지학자의 노래 등은 이 영화의 공연적 성격을 충분히 살려주었다. 특히 이 영화는 당대 최고의 인기 코미디언이던 뚱뚱이와 홀쭉이의 출연으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이들은 영화 개봉 당시,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실연(實演)’ 무대를 통해 코미디 공연을 선보임으로써 관객몰이에 일조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양훈과 양석천의 슬랩스틱은 <청춘쌍곡선>의 웃음을 책임지는 중요한 볼거리였다.
또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충실하게 이 영화는 두 커플의 성적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장르적 성취를 이룬다. 당시 관능적 여배우로 부각되고 있었던 이빈화와 황해의 송도 해수욕장의 수영복신이나 저돌적인(?) 포옹 장면, 좁은 방을 옷과 빨랫줄로 구획짓고 함께 누워 신체 접촉을 유도하는 양훈과 지학자의 모습, 결국 ‘겹사돈’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설정 등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관습에 충실하면서도 당대 한국 사회와 문화, 정서에 맞닿아 있는 이 영화의 영리함을 보여준다. 전후 도시 빈민들의 생활고와 빈부 격차의 문제,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풍자는 이 영화의 일상성이 드러내는 일종의 ‘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춘쌍곡선>의 성공 이후, 한국영화계는 코미디영화의 상업적 가능성과 대중과의 소통 가능성에 눈뜨기 시작했고 이후 다양한 하위 장르의 코미디들이 등장했다.
<청춘쌍곡선>은 거의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1950년대 코미디 영화 중에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화이면서, 당대 코미디영화의 독특함,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코미디영화 붐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에 더, 가치 있다.
by.
박선영(고려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