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포터즈 4인이 본 영상자료원 창립 40주년 기념 영화제 ②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들려오는 종소리는 왠지 맑고 경쾌하기보다는 우울하고 음울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허욱과 지연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가진 게 없어 지연의 임신 소식에 낙태를 결심하고 수술비를 걱정한다. <휴일>에서는 주인공 외에도 1960~70년대 고도의 압축성장이 빚어낸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부를 축적한 규제라는 인물과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으면서 취직이 안 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술로 세월을 허비하는 억만. 이들은 마치 무한 경쟁 사회에 내팽개쳐진 현 세대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또한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섭게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이 암시하듯 위태롭고 무기력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만희가 그나마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활기찬 일요일을 왜 이토록 어둡게 그려냈을까 궁금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68년 당시, 프랑스에서는 학생과 노동자가 주축이 된 68혁명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국내에선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으로 촉발되는 노동운동이 태동하고 있었다. 흔히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대부라 불리는 이만희에게 이러한 현실은 <휴일> 같은 작가주의의 영화를 만들 좋은 기폭제가 됐을 거라 짐작된다.
결국 돈을 훔친 대가로 규제에게 실컷 얻어맞은 허욱은 이윽고 분노해 규제를 벌벌 기게 만들고 굴종시키기에 이른다. 기득권층으로 대변되는 규제를 각성과 분노를 통해 전복시키는 허욱의 저항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의 백미를 전차에서 시작되는 엔딩 시퀀스로 꼽고 싶다. 지연의 죽음 이후, 지연과 함께한 아름다운 나날을 반추하며 목적지도 없이 전차에 올라탄 허욱을 쫓는 카메라가 실의에 빠진 허욱의 심정을 강렬하게 포착함은 물론, 종점에 도착한 후 내일 다시 만나자는 차장의 말을 뒤로하고 휑한 밤거리에 우두커니 선 허욱의 발을 잡는 로 앵글(law angle)의 처연함이 가슴 먹먹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허욱의 독백이 시작된다. 독백 중에 “머리부터 깎아야지”라는 대사는 당시 검열 단계에서 허욱이 머리를 깎고 군대에 들어가는 것으로 결말을 바꾸면 상영을 허가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이만희가 일종의 풍자로 삽입한 것처럼 보인다.
여담이지만 사실 앞서 나온 “내일 다시 만나자”는 차장의 대사는 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결코 실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휴일>의 시나리오를 쓴 백결에 의하면 원래는 허욱이 익사체로 발견되어 그의 입을 통해서 구술되는 프롤로그와 세 친구 모두 부패된 허욱을 알아보지 못하고 신원 미상으로 기록되는 에필로그가 있었지만 검열관에 의해 이야기가 지나치게 어둡다는 이유로 삭제되었다고 한다. 나에게 <휴일>은 이만희식 리얼리즘에 접근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작품이다.
by.이호준(영화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