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정원>, 영화와 결합된 라이브 공연을 기획하며
1957년 4월 30일자 경향신문에는 ‘천연색 이국정원’이라는 제목의 단신 기사가 실립니다. 한국의 연예영화주식회사 사장 임화수씨가 홍콩의 쇼브라더스 유한공사와 한중합작 영화를 추진 중인데 시나리오 작가 김석민 씨가 쓴 <아시아의 여명>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유두연과 정강의 각색으로 <이국정원 異國情鴛>이라는 제목으로 바꾸고 여배우와 조연배우를 모집 중이며 감독은 전창근 씨가 맡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덧붙여 ‘총천연색’ 한중합작영화 <이국정원>의 기술과 기자재는 쇼브라더스에서 제공하고 5월에 국내분 촬영을 마치는 대로 6월 중순경부터 홍콩에서 전반적인 촬영에 착수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한국・홍콩 합작영화이자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었던 총천연색 영화기술을 전면에 내건 <이국정원>은 이렇듯 안팎의 기대와 함께 김진규, 윤일봉, 최무룡 등 당대 최고의 한국 남자 청춘 스타들과 홍콩의 아름다운 여배우들을 기용해 달콤한 멜로영화로 태어나게 됩니다.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국정원>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야심찬 프로젝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기획 당시부터 90%이상의 홍콩 촬영을 염두에 두고 홍콩영화계의 큰 손인 쇼브라더스와 합작한 영화였습니다. 단순히 로케이션 지원과 배우를 빌려쓰는 형태가 아니라 기획과 스토리부터 연출과 촬영의 기술적인 측면까지 합의를 통해 영화를 완성해냈다는 점입니다. 정창화 감독이 쇼브라더스의 대표 런런쇼의 부름을 받아 홍콩으로 건너가 액션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말이고 이 또한 합작이라기보다는 정창화 감독 개인의 역량을 홍콩쪽에서 수입한 형태였으니 그보다 10여 년 전에 진행된 이와 같은 전면적인 합작 프로젝트는 당시 한반도에 갇혀 있던 충무로 상상력의 한계를 넓히려는 도전적인 시도로 보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야심만만함은 두 번째로 기술적인 측면에 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당연시되었던 흑백영화의 고답스러운 한계를 벗어나 ‘총천연색’ 영화를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1949년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 영화인 홍성기 감독의 <여성 일기>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10년 가까이 화면의 ‘암흑기’를 보내던 충무로는 1950년대 후반에 가서야 스크린에 색을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이국정원>은 그 흐름의 선두에 선 작품으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홍콩의 이국적인 풍경과 색채를 고스란히 드러내어 영화의 환상성을 높이고 색의 진경을 통해 감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려는 시도가 빛을 발합니다. 어쩌면 스크린 위에 ‘총천연색’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인 야심이 먼저였고 이를 위해 그 효과가 극대화될 만한 스토리와 배경을 찾아 홍콩으로 건너간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스토립니다. 한국의 유명 작곡가가 음악회를 열기 위해 홍콩으로 건너가서 자신에 대한 열렬한 팬심을 갖고 있던 아름다운 홍콩 여가수와 단박에 사랑에 빠지고 어릴 때 헤어졌던 어머니와도 해후한다는 해피엔딩은 지금의 시각에서야 흔하디 흔한 멜로드라마이자 한편으로는 게을러빠진 기획 시나리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폐허가 된 도시를 위로하는 화려한 환상
그러나 1950년대 말은 일제 강점기와 곧 이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한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 전쟁의 내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정권은 부패했고 역사는 치욕에 다름 아니었으며 잿더미를 뒤지는 것조차 순서를 기다려야 했던, 그리하여 일상적인 폭력에 폐허로 내몰린 개인들이 마음 둘 곳이 어디에도 없었을 이런 시절에 <이국정원> 같은 사치스러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이국정원>에는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유명 작곡가라는 근사한 직업의 잘생긴 한국 청년이 있고 그를 연모하는 꽃 같은 홍콩 처녀가 있습니다. 둘의 사랑을 도와주는 홍콩영사관의 한국 직원은 오픈 카를 타고 홍콩 도심을 질주합니다. 둘은 마카오에서 결혼식을 올리려 하고 마카오에 사는 한국인 동창생의 집은 거의 펜트하우스처럼 보입니다. 이렇듯 <이국정원> 안에는 당시 지린내 나는 뒷골목에서 찌그러진 주전자로 막걸리를 기울이던 한국인들에게 꿈같은 일들이 일상으로 벌어집니다. 마치 지긋지긋한 한국 사회의 남루함을 작정하고 탈색하려는 듯한 열망들이 넘쳐납니다. 이런 풍요에 대한 열망이 <이국정원>의 가장 근본적인 ‘영화의지’이자 무의식적 동기인 셈입니다.
한국영화사의 1950년대를 장식했던 작품 중 하나였지만 이제까지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이국정원>이 반세기를 지나고 나서야 홍콩의 한 영화 창고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비록 당시의 영화팬들을 매료시켰을 화려했던 색감은 탈색되고 사운드가 유실되어 대사는 물론 극 중 여주인공이 부르는 노래인 ‘내 마음의 태양’조차 들을 수 없어 너무나 아쉽지만 그 시대 충무로인들의 어떤 ‘풍요에 대한 열망’을 증거하는 강렬한 영화의지는 아직도 스크린 위에서 살아 숨쉽니다.
침묵하던 영화, 무대에서 입을 열다
영화 상영과 결합된 ‘공연’ <이국정원>은 무엇보다 반세기를 지나 이 시대로 다시 소환된 이 과묵한 영화에 사운드라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당시의 배우들이 어떻게 말했고 ‘내 마음의 태양’의 원곡은 어떠했는지 도저히 알 길은 없지만 그래서 그 시대의 공기를 고스란히 재현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배우들의 입을 통해, 연주자들의 음악을 통해, 폴리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통해 이 영화의 욕망을 대신 말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당대의 좌절이 역설적으로 투사된, 허영으로 가득한 기름진 욕망이라 할지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최선을 다해 무대 위에서 번들거려볼 작정입니다. 이것이 이 영화를 만든 제작진에 대한 저와 공연진의 경의이자 현재의 관객에게 이 영화의 매력을 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by.전계수(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