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3D 영화의 기술적 원리
2009년 <아바타>가 3D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이후로 거의 매년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진일보한 3D영화가 속속 등장하면서 영상 혁명을 선도해나가고 있다. 일례로 <아바타>를 포함해서 이후에 나온 <휴고>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래비티>는 모두 아카데미 촬영상과 시각효과상을 휩쓸었다. 이런 사실들은 지난 5년 동안 가장 비주얼하고 기술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영화들의 상당수가 3D영화라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기술적인 성취도가 높은 반면 그에 따른 고비용과 흥행 위험이라는 상업적 공식에 맞물려서 더 많은 3D영화가 제작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3D영화는 평면이 아닌 Z축으로의 깊이감과 돌출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2D영화에 비해 볼거리가 좀 더 많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다보니 초기에는 ‘왜 꼭 3D여야 하나?’라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3D가 더 좀 나은 관람 체험을 제공한다 할지라도 2D로도 무방하다는 느낌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래비티>의 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비티>는 3D 포맷이 아니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경지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관람이기보다는 체험’이라는 3D영화만의 장점을 극한으로 경험케 하는 것이었다. 가령 <아바타>는 2D로 봐도 재밌지만 <그래비티>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3D영화가 직면한 위기를 정면 돌파한 작품아닌가 생각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안 감독을 포함한 많은 감독이 그 연장선상에서 ‘3D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3D영화의 발전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두 대의 카메라, 입체감을 만들다
먼저 3D 구현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이 어떻게 입체를 인지하는지 알아보자. 우리의 눈과 뇌가 입체감을 느끼는 요인은 크게 양안에 의한 입체감(생리적 요인)과 단안에 의한 입체감(경험적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양안에 의한 입체감은 말 그대로 사람의 눈이 두 개이고, 두 눈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하는 시차에 의해 입체를 지각한다는 것이다. 이 시차를 패럴랙스(Parallax)라고 하며, 좌우의 눈이 다른 피사체를 봄으로써 생기는 각각의 다른 2개의 영상을 뇌에서 결합해 공간의 깊이감과 물체의 양감(덩어리감)을 지각하게 된다. 만약 누군가 사고로 한쪽 눈을 다치게 되어서 단안으로만 본다면 양안에 의해서 생성되는 입체감을 지각할 수 없게 된다.
3D영상 구현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사람의 시각 체계를 응용한 가장 기본적인 원리만 소개하겠다. 사람의 눈이 두 개이기 때문에 입체감을 인지할 수 있듯이 현장에서도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을 한다. 이렇게 각각 촬영된 좌우 영상이 후반 작업을 통해 스크린에 함께 영사된다. 만약 관객이 3D 안경을 착용하고 있지 않다면 스크린에서 좌우 영상을 한꺼번에 보게 되며, 이 이미지들은 좌우 영상이 겹쳐 있기에 선명하지도 않고 어떤 입체감도 주지 않는다. 사람의 뇌가 좌우 눈으로부터 각각 획득된 2개의 영상을 결합해 입체를 지각할 수 있도록 3D 안경은 스크린에서 한꺼번에 보이는 좌우 영상을 안경의 편광 필터에 의해서 분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왼쪽 카메라에서 찍힌 이미지는 왼쪽 눈으로만 보이며, 오른쪽 카메라로 촬영된 이미지는 오른쪽 눈으로만 보이게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3D 안경에 의해서 2개의 영상을 각각 보고 분리된 시각 정보가 뇌에서 융합 과정을 거쳐 입체로 지각되게 된다. 3D TV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광학적 요인에 의한 입체감
이번에는 단안에 의한 입체감에 대해 알아보자.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운전을 하면서 차간거리를 유지하거나 탁자모서리에 유리잔을 떨어뜨리지 않고 놓을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우리가 단안의 2차원 정보로부터 많은 3D 정보를 얻어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안에 의한 입체감은 경험적이고 심리적인 부분에 기인하고 있는데 물체의 크기, 높낮이, 중첩, 형상 등의 기하학적인 요소와 명암, 해상도, 채도, 색상 등의 광학적 요인에 의해서 입체를 지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3D영화 제작에서 아직도 중요하게 생각되는 이유는 한 세기 동안 2D 영화 촬영의 중요한 부분으로 2D에서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쾌감과 영화적 리얼리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3D영화 제작에서도 입체감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사용될 중요한 시각적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3D 영화계에 기대하는 기술적 변화들
3D영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관객에게 접근한다. 그중 하나는 3D 특성을 최대한 이용해 관객의 오감을 좀 더 공격적으로 자극하려는 방향으로 스크린 앞으로 ‘튀어나오는 효과(돌출효과)’같이 입체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접근이 있다. 또 다른 방향은 수동적인 입체 사용을 통해서 편안한 입체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서 입체적인 효과보다는 영화의 스토리나 캐릭터에 더 집중하게 하려는 방향이다. 이 두 가지 방향성은 양날의 칼날같이 자극성과 몰입감이라는 영화에서 모두 필요한 요소로서 우선순위에 따라 자리바꿈을 할 수 있다. 우선순위는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만들 것인지와 감독이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구현할지에 따라서 좀 더 구체적인 순위가 정해진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3D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로 3D의 D로 시작하는 ‘Dimension(차원)’ 이 아니라 ‘Difficult(어려운, 힘든)’라고 한다. 3D는 기본적으로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을 해서 두 배의 정보량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두 대의 카메라로 인해 무거워진 현장 상황과 두 배로 늘어난 정보량을 처리해야 하는 후반 과정 때문에 시간과 비용의 상승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어려움과 과부하를 수반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많은 할리우드 3D영화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3D 카메라로 촬영하는 방식보다는 2D로 촬영한 다음에 후반에서 이를 다시 3D로 컨버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하지만 컨버팅하는 비용도 꽤 비싸기 때문에 한국영화 규모에서는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 그래서 3D카메라를 사용해서 진행하는 촬영과 컨버팅을 적절히 섞어서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3D 촬영장비에도 많은 기술적 개선이 요구된다. 두 대의 카메라를 연결해주는 ‘리그’라는 장비가 있는데, 무게가 약 15kg으로 카메라 무게까지 도합 30kg 정도 나간다. 현장에서 특별한 장비의 도움 없이 사람의 힘으로만 30kg의 장비를 이동하는 데에는 많은 주의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아바타>같이 거의 모든 촬영이 스튜디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영화라면 문제가 크지 않겠지만 다양한 공간으로 이동해야 하는 영화 현장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2D 현장같이 기동성 있게 현장을 운용하려면 현저히 가벼운 리그의 개발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리그 없이 한 대의 카메라로 3D를 구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3D 카메라의 출현이 요구된다. 또한 3D 컨버팅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으나 현실성 있는 시장가격이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3D가 아니면 안 되는 장르로
입체영상의 기본적인 개념과 기술은 이미 1830년대 확립되고 발전해온 꽤 유서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오래된, 그렇지만 산업화에 실패한 기술들이 디지털 시대와 다시 조우하면서, 기술적 발전은 과거의 결함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새로운 시각적인 자극에 대한 관객들의 요구로 인해 자연스럽게 3D영상은 당당히 재등장했다. 3D영상으로의 전환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그리고 다시 흑백영화에서 컬러 영화로의 전환에 비견되며, 영상 산업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꿔놓았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은 단순히 현장에서 ‘마이크와 녹음기’란 하드웨어들이 추가되어 소리를 담아내고 이를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정도의 변화가 아니고 영화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일대 변혁이었다. 내러티브의 구조, 캐릭터의 묘사, 소리를 통한 감정의 전달과 조절 등의 영화 문법을 완전히 다른 플랫폼에서 만들어나갔으며,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진행되었다.
3D영화 제작은 단순히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해 사물과 공간을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달성되는 것은 아니고 기획 단계부터 입체에 걸맞은 장르와 스토리를 개발해야 하며, 스토리안에서 적절하게 디자인된 입체감 레이아웃을 통해서 오감의 자극은 물론 인물의 심리와 정서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스토리텔링 도구로서의 입체 연출은 효과적인 내러티브 전달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며, 이것은 감성적 측면을 전달하기 위해 오케스트레이션되는 영화음악의 방법론과 유사하기도 하다. 영화 속 적절한 상황에서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음악감독이 음악을 사용하는 것처럼 입체감 역시 이야기의 내용을 반영해 감정을 전달하는 스토리텔링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지금은 3D 영상 혁명의 태동기를 지나서 보다 성공적인 한국적 3D 영상 산업으로 진입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과거에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그리고 흑백에서 컬러 영화로 성공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했듯이 지금 3D영화 산업의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 혁신적인 하드웨어의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3D가 아니면 안 되는 장르와 차별화한 내러티브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by.김영노(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