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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계의 ‘희극지왕’ 가와시마 유조 특별전
4월 19일부터 27일까지 시네마테크KOFA에서 한국영상자료원, 일본국립필름센터, 일본국제교류기금 공동 주최로 가와시마 유조 감독 특별전이 열린다. 메이지 학원 대학에서 가와시마 유조 감독을 주제로 논문을 쓴 구민아의 글로 국내에 아직 낯선 감독 가와시마 유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일본 희극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막말태양전>(1957)의 감독이자 일본영화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가와시마 유조 감독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그런 그를 가장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그가 <나라야마 부시코>(1982)와 칸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가와시마와 이마무라의 인연은 그들이 처음으로 몸담은 쇼치쿠 시절부터 시작해, 가와시마가 닛카쓰에 머무른 3년간 이마무라는 가와시마의 조감독으로 제작에 참여하며, 특히 <풍선>(1956)과 <막말태양전>에서는 가와시마와 공동으로 각본 집필에도 참여한다. 이마무라는 만년에 가와시마와 함께한 시간이 자신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 바 있는데, 실제로 이마무라의 초기 작품에 보이는 유머는 ‘경조부박’한 가와시마의 작품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후 이마무라는 스승과는 매우 대조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간다.
아오모리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가와시마가 세련되고 도회적인 감각을 추구한 것에 반해, 도쿄에서 태어난 이마무라가 토속적인 정념에 집중해간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가와시마는 1918년 아오모리에서 상가의 삼남으로 태어난다. 근친혼에 의한 유전장애로 인해 형제들도 어린 나이에 연달아 숨을 거두고, 가와시마도 이후 루게릭병으로 몸의 한쪽이 마비돼간다. 그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를 증오했으며, 문화시설이라고는 영화관밖에 없는 시골 마을에서 문학청년이 되고, 영화광이 되는 것으로 이에 저항했다. 고향을 떠난 이후 45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 가와시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자신의 몸이 왜 마비돼가고 있는지 털어놓지 않았다고 한다.
희극이라는 가면 뒤의 어두운 표정
가와시마는 쇼치쿠에서 1944년 <돌아온 남자>로 데뷔한 후 19년간 4곳의 회사를 전전하며 51편의 작품을 제작한다. 데뷔작인 <돌아온 남자>는 전시 중에 개봉한 유일한 작품으로, 전장에서 귀환한 청년의 1주일간 여정을 그린 희극이다. 1944년이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시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작품은 그러한 역사적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 하지만 암울한 전시기에 굳이 경조부박한 작품으로 완성한 점,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익센트릭한 인물은 그의 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1954년 닛카쓰로 이적한 이후 가와시마는 3년간 9편의 작품을 남긴다. 특히 아이를 ‘짐’에 비유해 당시의 전후 베이비 붐을 풍자한 <사랑의 수화물>(1955), 가와시마 스스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손꼽는 <스자키 파라다이스>(1956), 일본의 전통 예능 라쿠고를 제재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코믹하게 그려낸 <막말태양전>(1957)은 어느 작품이고 그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는 걸작이다. 특히 <막말태양전>의 사헤이지는 가와시마의 초상이라고 일컬어지곤 하는데, 원인 모를 병에 걸린 사헤이지가 거창한 기구를 들여놓고 약 만들기에 몰두하는 모습은, 병으로 몸이 점점 마비돼가던 가와시마가 매일 수십 알의 약을 복용하며 자신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에 맞서 싸운 치열한 저항을 연상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유곽을 쉴 틈 없이 뛰어다니는 사헤이지는 등장인물을 중개하며, 유곽이라는 공간에 모인 인간들의 근저에 있는 욕망을 폭로해가는데,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을 향한 사헤이지의 차가운 시선은 가와시마가 현실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의 발로다. 이렇듯 희극이라는 가면 뒤에 존재하는 어두운 표정은 가와시마의 희극을 특징짓는 요소다.
일본영화계의 이단아, 끊임없이 탈주하는 영화의 문법
<막말태양전> 이후 도호 산하의 도쿄영화사로 이적한 가와시마가 닛카쓰에서 선보였던 뛰어난 재기를 발휘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도쿄영화 재직 중에 다이에이에서 찍은 3편의 작품(<여자는 두 번 산다>(1961) <기러기의 절>(1962) <정숙한 짐승>(1962))은 일본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그중에서도 <정숙한 짐승>은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단지의 일실에 살고 있는 4인 가족의 사기, 횡령 등의 ‘비일상적’인 만행을 지극히 ‘일상적’인 터치로 그려낸 블랙코미디인데, 단지의 일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다채로운 앵글로 담아내고 있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전후 일본의 인간상을 그려낸 이 작품에서 단지는 물질과 욕망이 가득한 ‘현대’의 공간으로 변모해간다.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을 참고하자면, 단지의 일실은 ‘역사의 장치’에 의해 가공된 공간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익센트릭한 인물은 ‘역사의 장치’에 의해 ‘타락’한 인물이다.
<막말태양전>의 사헤이지를 비롯해, 가와시마의 인물들은 자신이 머무르던 곳에서 종종 어디론가 떠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와시마의 영화를 ‘도주’의 영화라고 한다. 그들은 대체 어디를 향해 떠나는 것일까? 만년에 가와시마는 지금까지 자신이 희극의 형식으로 그려왔던 것이 ‘적극적 도피’라고 단언한다. 가령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라’는 전진훈의 한 구절은 전쟁 중 병사들이 미덕으로 삼은 규율로 일본인은 그 규율에 순종했지만, 천황을 위해 명예롭게 목숨을 바치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는 완전히 대립된다. 이와 같이 ‘역사의 장치’에 의해 가공된 공간에 놓인 가와시마의 인물들은 마침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바꿔가는 ‘역사의 장치’의 기만을 발견한다. 즉 ‘적극적 도피’란 ‘역사의 장치’에 의해 ‘타락’한 인간들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감추는 위선에 대한 저항이며, ‘역사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인 것이다.
다수의 상업영화를 만들어온 가와시마의 작품에서 이마무라의 작품과 같이 어떤 일관된 주제나 작가성을 발견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의 권위와 위선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가와시마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를 만들어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희극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슬픔을, ‘경조부박’ 뒤에 숨겨진 무거움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의 영화에서 한층 더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by.
구민아(메이지 학원 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