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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열악한 필름보존 환경, 오히려 잘됐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그의 저서 <문화가 중요하다>에서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헌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보수의 진리는 이런 것이다. 사회의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다.”
필자가 한국영상자료원의 비상임 이사장으로 재직할 때는 이 책이 나오기 전이다. 그러나 세계의 석학들이 이 문제를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하며 여러 곳에서 발표했다. 따라서 나는 한국영상자료원을 자리 잡게 하며 관계자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데 위와 같은 이론을 적용할 것이라 마음먹었다.
열악한 보존 환경, 기회는 위기 속에서 찾아온다
1997년의 일이다. 나는 호현찬, 최무룡, 신우식 이사장에 이어 영상자료원 비상임이사장에 부임했다. 당시 영상자료원은 내가 운영국장 겸 총무국장으로 재직하던 예술의전당 미술관 지하에 아주 조그만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창문도 없고 공기도 나쁘고. 수장고와 영사실은 바로 옆에 있는 자료관 지하. 이런 열악한 환경은 나의 오기를 자극했다. ‘오히려 잘됐다. 여기서 도약하라고 나를 보낸 것이 아닐까.’ 우리가 기댈 곳은 문화부밖에 없다 여기고 쌀 창고 드나들 듯이 다녔다. 영화인들을 계속 만났다. 그리고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에도 빠짐없이 다녔고 국회에 가서 자료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다녔다.
결국 얼마 후에 영상자료원은 같은 건물(한가람디자인미술관) 2층으로 이사했다. 이사하는 날 나는 속으로 울었다. 아마 직원들도 가슴 벅찼을 것이다. 이어서 예산을 5배, 6배 늘리고 직원을 4배 더 뽑고. 신규 사업도 만들고.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FIAF 서울총회, 그리고 영상자료원의 발전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일은 한국영상자료원의 위상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취임하자 얼마 안 되어서 국제영상자료원연맹총회(FIAF)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 체코의 프라하. 처음 참가하는 것이라 서먹서먹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들 편하게 대해주었다. 그다음 해에 스페인의 마드리드 총회에서 나는 집행위원(이사) 선거에 출마해서 덜컥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2002년에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나와 동행한 영상자료원 자료운영부의 김봉영도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비상임 이사장 임기 3년이 끝나면서 상임으로 바뀌었다. 내가 초대 상임 원장이 된 셈이다. 내 자랑을 장황하게 하는 것은 쑥스럽지만 그래도 기록은 정확하게 남겨야 하니까 내가 원장으로 있을 때 이뤄낸 몇 가지 일을 열거하지 않을 수 없다.
1. 국제영상자료원연맹 부회장 겸 집행위원 (부회장 4년, 집행위원 6년)
2. 상암동 신청사 건립기금 확보 및 설계 완성(이거 하느라고 정말 고생 엄청 했다)
3. 수장고 항온항습 장비 기본 시설
4. 영화인(감독 및 배우) 회고전 개설과 활성화
5. 찾아가는 영화관 사업 신설
6. 영화의 고향을 찾아서 사업 신설
7. 2002년 FIAF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 (아직까지 최고의 총회로 인정받고 있음!)
8. 유실된 극영화 필름과 <순종황제 인산습의> 등 희귀한 다큐 필름 발굴
9. 모스크바, 베이징, 런던, 도쿄 등에서 필름 다수 발굴
10. 음악 디스크 및 영상 비디오 등 수 1만 점 확보 (영상물등급위로부터 기증받음)
11. 영상자료원 인터넷 계정 변경 (KFA → KOFA)
물론 이 모든 것이 나 혼자 한 일이 아니다. 모든 임직원의 노고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정말로 아쉬운 일이 있다. 하나는 나운규의 <아리랑>을 가져 오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실패한 것이고, 또 하나는 훼손된 필름을 복원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기술자를 영국과 독일에서 간신히 초청했는데 내 임기가 끝나는 바람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약속을 어긴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든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에 대한 애정은 영원할 것이다.
by.
정홍택(한국영상자료원 전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