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웹툰]PC에서 스크린 그리고 모바일까지 콘텐츠는 진화한다
영화학을 전공하는 이라면 영화라는 매체를 일컫는 데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유료로 서비스되어야 한다는 점, 집단적 관람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미생 프리퀄>은 모바일을 통해 관람하도록 제작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요소를 보기 좋게 위배한 경우였다.
따라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특별히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단적인 예로 모바일 무비의 경우 영화의 길이가 길면(길이가 길다는 것은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수용자의 데이터 이용료 부담 문제가 발생하고, 극장에서의 관람과 달리 이탈이 용이하기 때문에 몰입도가 저해될 위험이 있다. <미생 프리퀄>이 10분 이내의 짧은 단편영화로 여러 편이 제작되어 서비스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영화 유통 경로가 제작 방식 및 형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처럼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제작진은 언제나 새롭게 경험하는 난관들을 맞닥뜨려가며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논란 속에서 시작된 모험, 원 소스 멀티 유즈
모바일 무비는 수년 전 ‘June’이라는 서비스 채널을 통해 상영이 된 바 있지만, 지금과는 몹시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미생 프리퀄>이 참고할 수 있는 선례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촬영과 후반작업은 물론 전체적인 예산을 짜고 배우들을 납득시키는 일도 녹록지 않았음을 물론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이러한 난관을 앞두고 보다 높은 홍보 효과 및 관객의 몰입도 향상을 위해 두 가지 선택을 했다. 영화가 유명한 원작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과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만 관람이 가능하다는 것. 두 가지 모두 수용자의 능동적인 관람 태도와 기본적인 충성도를 고양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 결과적으로 다음에서 선택한 것이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이었다. <미생>은 현재 서비스되는 웹툰 가운데 가장 많은 고정 독자를 거느린 히트작이자 영상 콘텐츠에 입각한 멀티-유즈의 수요가 높은 작품이었다. 원작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이라도 영화를 통해 역으로 유입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려 있었다.
그러나 원작의 높은 인기는 2차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에겐 고스란히 부담이 되어 다가오는 법이다. <미생>의 방대한 분량을 단편영화 포맷에 적용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새로운 창작을 바탕으로 한 ‘프리퀄’ 방식을 차용했지만 원작의 팬들에겐 그것이 오리지널 플롯이든, 창작 플롯이든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끼는 <미생>을 토대로 2차 제작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탐탁지 않은 사실이다. 결국 제작진은 프로덕션에 돌입하기도 전에 각종 게시판에 게재된 각종 비난과 우려의 글들을 보아야만 했다.
<미생 프리퀄> 제작 과정에서 또 하나의 난관은 부족한 시간이었다. 모든 영화 현장에서 예산과 시간은 부족한 법이지만, <미생 프리퀄>은 제작을 위해 주요 스태프들이 소집되고 그다음 주에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다음 주에 캐스팅을 완료해야 하며 그다음 주에 크랭크 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가 시나리오의 틀을 잡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작가는 본인의 작품을 토대로 한 프리퀄 시나리오임에도 창작의 수준과 한계를 무한히 존중해주었고 캐릭터들을 만들 때 설정했던 사항에 대해 수시간에 걸쳐 해설해주었다. 민예지 작가와 김태희 감독, 그리고 필자는 윤태호 작가의 조언을 토대로 프리퀄 시나리오의 뼈대를 구성하고 오목교의 한 레지던스에서 2박3일간 합숙을 해가며 초고를 써 내려갔다.
레지던스에서 합숙하는 동안 촬영감독이나 라인프로듀서같은 주요 스태프들도 숙소에 찾아와 이후 프로덕션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다.스태프 구성의 권한은 전적으로 연출자를 포함한 제작진에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이 기회를 빌어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동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사담이지만 영화 공부와 제작을 계속해오면서 연출을 대가로 돈을 받은 작품은 처음이었고(현장에서 어떤 스태프는 “감독님, 상업 ‘단편’으로 입봉하셨네요.”라는 농담 같은 진담을 던지기도 했다), 동료들과 함께 이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힘든 촬영 과정이었지만 인건비가 지급되는 작업을 아는 이들과 함께 힘을 모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미생 프리퀄>의 전체 과정을 통틀어 가장 보람된 일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프리퀄’의 미덕, 원작과의 연계성 그리고
촬영감독은 ‘프리퀄’의 미덕이란 원작과의 연계성에 있다고 했기 때문에 프로덕션 과정에서 미장센, 로케이션, 의상, 분장에 이르기까지 원작의 요소를 철저히 구현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경이 쓰였던 것은 이 작품을 모바일이라는 디바이스, 그 작은 화면으로 관람할 관객을 염두에 두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촬영 과정 내내 ‘이 정도 사이즈로 촬영하면 작은 화면에서 충분히 보일까?’ ‘이 정도 밝기로 조명을 치면 어둡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수시로 했다. 첫 작업인 <장그래 프리퀄>의 경우 기존의 영화 작업보다 훨씬 더 밝은 조명과 타이트한 쇼트 사이즈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촬영을 진행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실제 기기에서 영화를 보았을 땐 예상보다 어두웠고 화면 사이즈도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특히 사운드의 문제는 심각했다. 믹싱 스튜디오에서 들렸던 디테일은 대부분 뭉개져버렸고 볼륨도 충분히 유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마저 충분하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특히 관객의 관람 환경이 비특이적이라는 점을 모두 고려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결단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애초의 의도 그대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기준을 상정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극장의 경우와 달리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관람할 경우 각 기기에 따라 영상의 채도와 명도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일례로 ‘장그래 프리퀄’의 경우 필자가 소유하고 있던 삼성의 갤럭시 휴대폰을 표준 모니터로 삼아 색보정 작업을 거쳤는데, 이를 완성한 뒤 애플의 아이폰을 통해서 보니 채도가 많이 과장되어 보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장그래 프리퀄’은 서비스 직전에 색을 수정하는 작업을 한 번 더 거쳐 최종 완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장그래 프리퀄’이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색이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후에 진행된 작업들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촬영, 조명 그리고 색보정 작업에서 관습적인 기준들을 버리고 모바일 기기에 적합한 새 기준을 찾아가며 진행되었다.
영화와 웹툰의 진화, 새로운 진화를 기대하며
<미생 프리퀄>은 제작의 모든 부분에서, 기존 콘텐츠의 멀티-유스라는 특성과 기술 발달에 따른 새로운 상영 환경의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이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영화라는 매체의 기본적 요소도 위반하고 극장의 환경과도 판이한 상황에서 관객을 만나지만 수용자의 개념 속에 존재하는 ‘영화’라는 관념적 척도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영화보다는 광고나 뮤직비디오의 호흡을 닮은 편집 방향을 주지하던 회사 측에 맞서 기존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호흡을 놓치지 않으려 회의를 지리하게 거듭했던 과정도 있었다. 러닝타임이 애초에 상정했던 5분에서 10분으로 늘어난 것도 이러한 회의를 통해 제작진이 의견을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감독이라면 새로운 콘텐츠와 기술 발달에 눈과 귀를 크게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재의 상영 환경과 몹시 다른 환경을 통해 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영화를 스펙터클의 신화를 간직한 공간으로부터 보다 경제적이고 편의적이며 간편한 접근성을 보유한 또 다른 공간으로 관객을 안내할지도 모른다.(개인적으로는 지금의 극장 문화가 점차 쇠퇴하는 방향으로 변모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해본다.) 이미 해외에서는 수십년간 우리에게 익숙한 극장 상영용 영화를 만들던 감독들이 TV드라마나 기타 다른 매체에서 색다른 영상을 만드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생 프리퀄>은 어쩌면 이와 같은 발걸음에 신호탄이 되는 작품일 수도 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시대의 변화가 관람의 접근성뿐 아니라 제작의 접근성도 높이는 방향으로 산업을 발달시켜 나가는데 일조하기를 소망해본다.
by.손태겸(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