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외인구단>이 끌어낸 만화방 극화의 영화화
1980년대에 접어들며 만화 환경이 변화했다. 이현세, 박봉성, 고행석, 허영만 등 젊은 작가들은 만화방을 통해 장편 서사만화를 발표했다. 특히 1983년 출간된 <공포의 외인구단>은 전국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신문, 잡지에도 만화가 빠지지 않았다. 만화 원작 영화의 분수령은 1986년 8월 2일 개봉된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다. ‘공포’라는 수식어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개명되어 개봉해 서울 기준 28만여 명을 동원했다. 당시 불투명한 관객 집계 상황을 감안하고, 전국 관객을 염두에 두면 100만 명은 족히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싶다. 때마침 1980년대 만화 생태계의 변화한 2개의 축인 만화방과 성인매체(스포츠신문 등) 연재 만화를 영화 관객과 동일한 어른들이 소비했다. 먼저, 만화방 만화의 스타 작가인 이현세, 박봉성, 허영만 작가의 대표작들이 모두 영화화되었다. <이장호의 외인구단> 이후 박봉성 작가의 <신의 아들>이 같은 제목으로 1986년에, 이현세 작가의 <지옥의 링>이 1987년, 1988년에는 허영만 작가의 <카멜레온의 시>가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어떤 작품도 <이장호 외인구단>의 신드롬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영화 <매춘>(유지선, 1988) 이후 불어닥친 성인영화 붐과 잡지, 스포츠신문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던 성인만화가 절묘하게 결합하며 강철수, 한희작, 배금택 등의 성인만화를 원작으로 한 성인영화 시대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대개 완성도가 떨어졌고, 당연히 흥행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성인만화 원작 성인영화는 배금택 원작을 영화화한 <변금련>(엄종선, 1991)에서 ‘강리나’ 원톱의 활약으로 6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러나 <서울손자병법>(김현명, 1986), <가루지기>(고우영, 1988), <사랑의 낙서>(심재석, 1988), <들병이>(유진선, 1989), <발바리의 추억>(강철수, 1989), <돈아돈아돈아>(유진선, 1991), <한희작의 러브러브>(유석태 외, 1991), <변금련2>(엄종선, 1992), <애사당 홍도>(장성환, 1992)로 이어진 성인만화 원작 영화는 원작의 가치를 무색하게 한 영화로 만화팬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 시기 <가루기지>와 <발바리의 추억>은 직접 원작자인 고우영과 강철수 작가가 감독을 맡기도 했는데, 만화가가 만든 영화 정도의 화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절묘하게도 강철수-한희작-배금택으로 이어지는 성인만화의 계보를 성인영화가 함께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현세 작가의 <카론의 새벽>은 다시 만화 원작 영화화의 결정적 계기가 된 <테러리스트>(김영빈, 1995)를 낳는다. 만화 원작의 저예산 성인영화 시대를 끝내고, 당대 최고의 액션 스타였던 최민수가 주연을 맡고, 이경영・독고영재・염정아 등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인 김영빈 감독의 <테러리스트>는 서울 기준 32만 명을 동원하며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기록을 뛰어넘는다. <테러리스트>의 성공은 영화화하기에 적합한 완성도 높은 극화의 영화화로 이어진다. 허영만의 도박만화 <48+1>이 1995년 개봉되지만 완성도나 흥행은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1997년 당대의 청춘 스타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비트>(김성수)는 예전까지 주로 성인만화가 영화화되는 기본 공식을 깨고 <영챔프>에 연재되던 청소년용 만화를 영화화해 서울 기준 34만 명을 동원한다. 대본소의 인기 극화, 스포츠신문의 인기 성인만화 등 유사성을 보이던 만화 원작 영화는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김혜린의 순정만화 <비천무>(김영준, 2000), 방학기의 액션극화 <바람의 파이터>(양윤호, 2004), 사극 <형사 Duelist>(이명세, 2005, 만화제목은 <다모>), B급달궁의 웹툰 <다세포소녀>(이재용, 2006), 허영만의 성인도박극화 <타짜>로 이어졌다.
웹툰의 시대
마치 운명처럼,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되자 우리나라에 ‘웹’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했다. 새로운 플랫폼에 적당한 만화의 길을 찾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1990새롭게 해석한 웹툰은 출판만화와 다른 생태계를 통해 제작, 유통, 소비되며 한국 만화가 21세기에 새롭게 발명한 매체로 떠올랐다. 출판만화에 이어 웹툰도 영화의 원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첫 웹툰 원작은 2006년 B급달궁의 도발적 웹툰을 영화화한 <다세포소녀>다. 하지만 웹툰 영화화의 폭발적 확산은 강풀에 의해서다.
웹툰의 가장 상징적 작가인 강풀은 2006년 <아파트>(안병기)를 시작으로 2008년 <바보>(김정권), <순정만화>(류장하), 2011년 <그대를 사랑합니다>(추창민), 2012년 <26년>(조근현), <이웃사람>(김휘)에 이르기까지 무려 6편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강풀 웹툰 영화화 첫 작품인 <아파트>에서 <바보>와 <순정만화>에 이르기까지 세 작품이 모두 100만 명을 넘기 못하고 흥행에 참패하자 2009년에는 웹툰 원작의 영화가 단 한 편도 개봉되지 못한다. 주춤하던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2010년 330만 명을 동원한 윤태호의 웹툰을 강우석 감독이 영화화한 <이끼>다. 연이어 2011년 강풀 원작을 영화화한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164만 명, 2012년 <이웃사람>이 240만 명과 <26년>이 296만 명으로 강풀 웹툰 원작 영화도 연이어 흥행에 성공한다. 2013년에도 웹툰의 영화화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4월 10일 이종규, 이윤균의 웹툰 <전설의 주먹>이 강우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개봉했다. 영화 <전설의 주먹>은 ‘강우석’ 감독의 신작이며 황정민, 유준상, 윤제문 등 선 굵은 남자 배우들의 출연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6월 5일 HUN 작가의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었고, 글의 첫머리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만화 원작 영화의 흥행 기록을 경신하기에 이른다. 대중적 시각 서사 매체인 만화와 웹툰은 탄생하면서부터 영화와 교류했다. 한국 만화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작품들은 대부분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장호의 외인구단> <테러리스트> <비트> <타짜>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끼>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사례에서 보듯 검증된 만화의 이야기는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만화 같다’는 수사가 있다. 예전에는 ‘유치하다’ ‘어설프다’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지금은 ‘만화 같다’는 수사는 ‘창의적이다’ ‘새롭다’ ‘독특하다’는 의미가 되었다. 만화가 지닌 독특한 이야기를 한국의 영화가 제일 먼저 발견했고, 또 지금도 계속 만화의 이야기를 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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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웹툰, 그래픽노블의 차이?
만화와 그래픽노블은 인쇄되어 출판 유통된다. 따라서 만화의 기본 단위는 페이지다. 반면 웹툰은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을 통해 유통된다. 기본 단위는 모니터의 화면이고, 스크롤되며 연속된다. 만화와 그래픽노블은 대부분 유료로 소비된다. 웹툰은 대부분 무료로 소비되며 트래픽을 만든다. 하지만 최근에는 웹툰의 유료 모델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네이버나 다음의 경우 완결작이나 미리보기 등의 형태로 유료 모델이 시도되고 있으며, 레진코믹스 등의 독립된 웹툰 서비스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래픽노블은 주로 서구의 만화를 부르는 별칭이다. 미국의 만화는 디시(DC)와 마블 양대 출판사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데, 이들 출판사는 히트한 슈퍼히어로의 시리즈물을 계속 출간한다. 1964년 리처드 카일(Richard Kyle) 이후 여러 작가가 사용했지만 특히 윌 아이스너(Will Eisner)가 사용해 일반화되었다. 그래픽노블은 만화와 비교해 어른을 대상으로 하고,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며, 개성 있는 그림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