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영화 최초의 천연색(天然色) 전발성(全發聲) 호화판
발굴, 복원을 거쳐 지난 4월 공개된 영화 <이국정원(異國情鴛)>(전창근•도광계, 1958)은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컬러 극영화’ 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영화는 홍콩 쇼브라더스와 한국연예주식회사의 합작으로 당시 일본의 컬러영화 기술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만들어진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토키 컬러영화는 안철영의 <무궁화 동산>(1948)이다. 그뿐 아니라 이 영화는 한국 최초의 해외 기행영화(travelogue)로 하와이 동포의 생활상을 묘사한 민간 영화사(서울영화주식회사)의 기록/문화영화(documentary/culture film)이다.
상영 광고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이 영화는 ‘자연미와 인공미’가 교차하고 ‘무궁화가 찬란한’ ‘태평양의 낙원’이자 ‘극미의 도원경’인 태평양 복판의 ‘세계의 낙원’ 하와이의 전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 하와이는 백의동포가 오랫동안 기거한 ‘제2의 고향’이자 ‘선구(先驅)의 혈한(血汗)’으로 개척한 ‘무궁화 동산’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감독 안철영이 하와이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호놀룰루 시가지를 둘러본 후, 동포들의 생활상(학교, 교회, 농업, 상업 등)을 소개하고, 하와이의 지리와 자연, 본토민의 풍속, 기념행사, 알로하 축제 등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대한인국민회 소속 동포들의 생활을 소개한 다음, 하와이를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하와이의 디아스포라, 조선에 편지를 띄우다
영화를 연출한 안철영은 1930년대 중반 독일 백림(伯林)공과대학에서 사진화학을 공부하고 온 조선 최초의 해외 유학파 영화 전문 인력이었다. 귀국 후 <어화>(1938)를 만들고 광복이 되자 미군정청 문교부 예술과장 신분으로 할리우드 시찰 길에 오른다. 안철영은 하와이에 머물며 <무궁화 동산>을 촬영했는데, 이 영화는 안철영의 아버지인 목사 안창호가 몸담고 있던 대한인국민회의 물적, 심적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인들은 대부분 대한인국민회 소속이다. 안철영의 아들 안형주의 증언에 의하면 이 영화가 시공관에서 개봉하자 김구는 두 번이나 관람하면서 상해 임시정부의 활동자금을 보내준 동지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무궁화 동산>은 노동 이민을 떠나 조국의 독립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조선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하와이 재유동포의 삶을 근대적이고 이국적인 하와이의 풍경 속에 담아 해방 조선에 있는 동포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영화는 1947년 11월에 촬영, 1948년 6월에 후반 작업을 마쳤다. 제작 전 과정을 하와이에서 완료한 <무궁화 동산>은 1949년 3월 3일부터 9일까지 <자유만세>(최인규, 1946)와 함께 동시상영 되었다. 또 안철영이 할리우드를 시찰하고 이를 기록한 기행문 ‘성림기행(聖林紀行)’(1949)에는 이 영화의 촬영 후기가 있어 제작 과정의 일부를 엿볼 수도 있다. 당시 이 책은 영화기술자이자 영화감독, 영화행정가를 겸하고 있어 영화에 대한 식견이 그 누구보다 깊은 안철영이 미국 할리우드와 일본 영화계의 면면을 소개한 ‘갈망(渴望)의 호저(好著)’였다. 이 책은 곧 할리우드의 소식에 목말랐던 학생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영화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인기를 얻으며 팔려나갔다.
당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컬러영화가 모두 외화였던 가운데 이 영화가 제공하는 화면의 천연색 질감은 과연 당시 관객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이 최초의 컬러영화가 보여주는 화면은 매우 아련하며 몽환적이다. 이국적인 자연 환경 속에서 파인애플 농사를 짓고, 교외의 2층집에서 살고, 근대화된 호놀룰루의 시내에서 가구점을 운영하고, 고등교육을 받는 재유동포들의 모습은, 실제의 공간에서 동포들의 현실을 체감하게 한다기보다 이를 더욱 허구적으로 감각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게다가 이 영화는 안철영이 하와이를 무궁화 동산으로 호명하는 데에서, 이국적 1세계(미국 하와이)를 여행자인 동시에 내부자의 시선으로 포착해 이상적인 공간으로 국내화(대한민국의 일부로 영토화)하는 독특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이 전략은 컬러 화면의 가상적 현실감으로 인해 하와이를 지리적 실제로 인식하기보다 대한민국의 일부 공간,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 대한민국의 우방으로서의 미국이라는 심상지리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한다.
사상 최초 우리 손으로 제작된 총천연색 영화
‘최초 컬러 영화’로 <무궁화 동산>을 언급하는 데에서 혹자는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여성일기>(홍성기, 1949)를 떠올렸겠다. 이영일의 <한국영화전사>를 비롯해 기존 한국영화사에서는 최초의 컬러영화로 <여성일기>를 언급한다. 물론 <여성일기>는 “우리 영화사 사상에서 최초로 우리의 손으로 제작된 총천연색 극영화”(‘조선일보’ 1949년 6월 5일 2면) 다. 이 문구를 두고 안철영과 홍성기의 컬러 영화 시도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최초의 컬러 토키영화는 안철영의 문화영화 <무궁화 동산>이며, 극영화로 컬러는 홍성기의 <여성일기>다. <이국정원>처럼 해외 현지에서 스태프, 기자재를 임차해 촬영과 후반작업 일체를 완료한 <무궁화 동산>은 남아 있으나, 우리 영화 기술로 만든 컬러영화 <여성일기>는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은 연구자에게 여러 고민점을 시사한다. 한국영화와 세계영화계와의 관계, 한국영화 기술의 해외 의존 문제, 합작을 둘러싼 한국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을 말이다.
최근 들어 해방기/미군정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냉전문화론의 지형 속에서 초국적 관점으로 영화사를 재구성하려는 흐름이 있다. 덕분에 문화영화나 뉴스영화 같은 비극(非劇)영화로 한국영화 연구의 장이 확대되면서 영화사 연구의 지형이 두꺼워지고 있다. 이에 영화 <무궁화 동산>과 그 짝패인 기행문 ‘성림기행’은 문화영화, 해방기 영화사, 영화기술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화연구자들뿐 아니라 해방기 기행문, 코리안 디아스포라, 재미한인의 독립운동사, 하와이 이민사, 한미관계 등을 연구하는 문학, 인류학, 신문방송학, 역사학, 사회학, 한국학 연구자들에게도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것이다.
by.심혜경(영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