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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최은희]신상옥 최은희를 추억하며 ④
어릴 적 내 놀이터의 대부분은 영화 촬영 현장이었다. 그렇게 가정적이지만은 않으셨던 아버지였지만 나와 누나를 촬영 현장에 자주 데리고 나가셨다. 카메라 앞에서 배우들에게 호통치시는 모습이 어린 나이의 내게 어찌나 멋있어 보였는지 나도 이다음에 크면 영화감독이 되겠노라고 결심했다.
그 영향으로 나는 지금 영화감독을 하고 있다. 신상옥 감독의 이름에는 훨씬 못 미치는 영화감독이지만.
항상 영화만을 생각하시는 아버지는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화 편집을 집에서 하느라 온 집 안에 필름 조각들을 걸어놓고 작업하시고, 때론 집 안의 식탁이나 옷장들도 들고 나가 영화 소도구로 쓰시는 아버지, 그러기에 어머니와의 마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영화배우이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평범한 가정주부이기를 원했지만 아버진 그걸 용납 못하셨던 것 같다. 어린 나에게 아버지로서 신상옥의 존재감은 별로 없었다. 단지 영화감독 신상옥만 존재할 뿐이지.
돈이나 재산에 대한 개념, 가족이나 가정에 대한 개념이 없으셨던 아버지 신상옥. 어쩌면 그렇게 하셨기에 지금 한국영화사에 큰 업적을 남겼는지도 모르지만 그 곁에서 자란 나는 사실 아버지에 대한 정이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함께 보낸 시간이 별로 없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은 북한에서 탈출하시고 미국에서 생활할 때가 전부인 것 같다. 특별히 할 일이 없으셨던 그때 2~3년이 평범한 아버지와 어머니로 생활 한 유일한 시간이었으니까.
어머니는 하루 세끼 식사를 준비하시거나 청소를 하시고, 아버지는 집안 정리나 화단을 가꾸고 집 앞 호수에서 자식들과 낚시도 하고 보낸 시간, 그 시간이 나와 아버지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유일한 시간인 셈이다.
아버지는 그 시간이 아버지 인생에서 제일 무료한 시간이었지만….
난 지금도 기억하며 추억한다. 촬영 현장에서 쩌렁쩌렁 호령하시는 영화감독 신상옥을.
보고 싶습니다.
by.
신정균(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