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의 흥행 감독,박희준 감독
2012년 ‘주제사’는 문화영화 분야에서 활동한 이력을 가진 분들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박희준 감독은 문화영화, 특히 민간의 문화영화 제작 현장에서 40여 년을 활동한 감독이다. 박희준 감독은 1954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재학 중 군에 입대, 1961년 제대 후 국립영화제작소에 입사했다. 1964년, 잠시 국립영화제작소를 퇴사해 극장 상영용 장편 문화영화 <역도산의 후계자 김일>(1966), <극동의 왕자 김일>(1966), <허리케인의 대혈투>(1967), <황금의 이마> (1967)를 제작, 감독했다. 이후 국립영화제작소에 복직해 근무한 뒤 1971년 국립영화제작소를 퇴사하고 극장 상영용 문화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72년 <강산에 노래 싣고 웃음 싣고>를 시작으로 1973년에는 <노래 실은 금수강산>과 <노래 실은 관광여행>을, 1975년에는 <가요대행진>을 제작, 감독했다. 이들 작품 중 1972년에 제작, 감독한 <강산에 노래 싣고 웃음 싣고>는 당시 흥행에도 크게 성공해 이후 후속편을 제작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고 구술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극장 상영용 문화영화의 제작이 어려워지면서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영화라 할 수 있는 기업과 국가의 정책•홍보 영화 제작에 주력하게 된다.
문화영화의 또 다른 매력을 발굴하다
박희준 감독은 영화교육이 제도화되던 시기에 영화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처음에는 배우가 되려 했으나 국립영화제작소에 입사하게 되면서 문화영화에 몸을 담게 되었다. 문화영화는 주로 계몽, 교육에 목적을 두고 있는데 그는 스포츠와 가요, 콩트, 공연 등 당시의 관객들이 흔히 볼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문화영화를 제작했다. 아직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기 전인 1960년대 극장의 큰 화면을 통해 당시의 인기 스포츠인 레슬링을 보는 것이 관객들에게 큰 볼거리였다. 그는 좀 더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로 실제 경기를 촬영하고 인기 아나운서의 해설을 덧붙였다고 당시 제작과정을 설명했다. 1972년에 연출한 극장 상영용 문화영화인 <강산에 노래 싣고 웃음 싣고>는 이후 3편의 후속편이 제작될 정도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노래와 콩트로 구성된 이 영화는 관객에게는 당대의 인기 가수와 전국 팔도의 경관 그리고 워커힐 쇼 등 재미있는 볼거리를 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출연하는 가수들에게는 극장의 큰 스크린 위에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는 스펙터클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박희준 감독은 당대의 인기 가수들을 섭외하고 출연시키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이는 이러한 매혹의 순간들이 작용한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박희준 감독의 구술은 흔히 선전•홍보 영화로 인식되는 문화영화에도 다양한 장르와 시도가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 40여 년을 문화영화계에 몸담은 그의 구술은 극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한 문화영화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by.이정아(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